지금 대한민국 영유아교육.보육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지난 6월6일자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50년된 국공립어린이집이 원아모집이 안되었다는 이유로 문을 닫았는데, 다니고 있던 영유아들은 해당 지역에 어린이집이 없어서 다른 구로 옮겨서 다니고 있다’고 한다. 이런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페원기사가 줄을 잇고 있다. 3월 한 달 동안 포털에 실린 이런 기사만 40건이다. 한국의 영유아교육.보육체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현재, 우리나라 만5세 유아의 수(35만5천)와 0세 영아의 수(23만9천)를 비교하면 1/3이 줄어든다. 6년 사이에 인구의 1/3이 줄어든다. 갈수록 폐원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고, 그 시설에 다니던 영유아들은 또 다른 시설을 찾아 헤맬 것이다.
교육·보육 이원화가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유보이원화는 영유아에 대한 국가의 통합되고 일관된 정책이 없다는 말이다. 가장 기본적인 통합된 기초통계조차 없다. 교육부는 ‘교육통계’, 복지부는 ‘보육통계’를 발표하고 있다. 이러면서 현실적인 수급 계획도 불가능하고, 장기적인 정책 수립도 불가능하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시설의 격감이 문제가 되는 것은 해당 지역의 수급 상황에 따라 계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리되지 않는 공급의 격감은 지역에 따라 교육과 보육의 공백을 만들어낼 수 있다.
대책을 통합해서 세워야 하나, 체계는 이원화되어 있다. 유보통합은 너무 늦었다. 지난 30년을 허비하면서 이제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영유아교육 ‧ 보육 체제가 붕괴될 상황이다. 22년 보육통계와 교육통계에 따르면 21년에 비해 어린이집 원아 수 8만9천명 감소하고, 유치원 원아 수 8천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점진적’ ‘연차적’이라는 단어는 사용할 수 없다. 단 5년만 지나도 영유아 수의 1/3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시급한 유보통합 – 종합상황실 만들기
지난 30년간 유보통합 논의과정을 살펴보면, 이해당사자가 모여 각 주체들이 ‘합의할 수 없는 주장’을 내어놓고 토론을 하다가,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보통합을 유보하는 일을 반복해왔다.
1995년 유보통합 논의에서도 연령별 이원화가 쟁점이 되었다. 사립유치원 쪽에서는 3세 이후는 모두 유치원이 맡는 것으로 제안하고, 어린이집에서는 만 5세아를 유치원이 맡는 것으로 제안했다. 서로의 영역을 넓히는 방식의 제안을 했던 것이다. ‘이익의 관점’에서 유보통합에 접근했다.
최근 유보통합 논의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유치원 중심 통합’이라거나 ‘어린이집 중심 통합’이라거나, 또는 ‘의무교육 실시’와 같은 주장은 ‘총론에서는 동의하나 각론에서 반대’라는 기존의 방식을 되풀이하는 셈이다. ‘유보통합이 안되었어도 우리 그동안 잘 해왔다’라는 주장 역시 ‘원론적 동의, 실질적 반대’라는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만5세, 또는 만4-5세 의무교육론은 매우 공공성을 띤 주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만5세만 의무교육을 한다고 하더라도 공사립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3, 4세 거의 대부분을 어린이집으로 전원해야 한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만5세를 유치원으로 옮기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실현 불가능한 주장이다. ‘실현할 수 없는 방안’을 내어놓는 것은 외견상은 유보통합의 한 방안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유보통합을 반대하는 셈이다.
지금 제기되는 많은 쟁점들을 합의하고, 합의한 쟁점들에 대한 입법안을 만들어내고, 입법 절차 등을 거쳐서 막상 실행되는 시점에는 이미 학령 영유아 수는 격감해서 많은 시설들이 폐원되어 사라져 버리면서 보육.교육체계는 완전히 붕괴될 것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선 교육부와 교육청으로 권한과 재정, 공무원 정원을 옮겨서 통합하는 부처통합이다. 유보통합은 하나의 ‘과정’이며, 통합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관리 부처를 통합하고, 산적한 문제를 하나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므로 ‘완전한 그림’을 그린 후에 부처통합을 하자는 것은 실제로는 ‘유보통합을 하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거 30년 ‘좌절의 과정’이 그러했다.
유보통합은 격차해소의 단계를 거쳐야
유보통합은 일정 기간의 과정이다. 부처 통합 이후 우리 영유아들이 누리고 있는 교육과 보육의 상황을 개선하면서 질을 상향평준화시켜가는 과정이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통합 가능한 것은 통합하고, 통합이 가능하지 않은 것은 병립하여 운영하면 된다.
예를 들어, 교원 정책에서 교원의 신분은 통합할 수 없다. 공무원인 국공립유치원 교사들의 신분과 일반 노동자인 나머지 교사들의 신분은 통합이 불가능하다. 대신, 현재 사립학교 교사들이 공무원은 아니나 사립학교법 제55조와 제56조의 규정 등에 의해서 보수, 신분, 복무에 있어서 공립교사들과 동일한 대우을 받도록 하고 있는 것처럼 통합법령 제정과정에서 국공립교사들은 공무원, 기타 교사들은 신분,복무,보수가 보장되는 법적 지위를 규정하면 된다.
이처럼 학령인구 격감기인 지금 당장 시급하지 않은 ‘통합기관의 명칭’, ‘교사 양성체계’, ‘시설 설립기준’, ‘교사 등의 법적 지위’ 등은 추후 과제로 미뤄야 한다. 현재 유아교육법과 영유아보육법의 체제를 유지한 채, 관할 부처만 바뀌는(보건복지부장관이 교육부장관으로, 시도지사가 교육감으로) 것이어야 한다. 부처를 통합한 상태에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두 시설과 영유아, 교직원, 학부모 등이 겪고 있는 격차를 찾아내고, 그 격차를 해소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수급 통계조차 통합되지 않아서 학급당 학생 수의 문제나 설립과 증설, 폐원 문제가 전혀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현재 학급당 원아 수가 너무 많다. 세종의 경우 초등학교 1학년은 학급당 20명을 기준으로 편성하는 반면, 유치원 만5세 학급의 편성기준은 22명이다. 타시도의 상황을 보면 만5세반이 25명을 넘는 곳도 많다.
학급당 학생 수 축소 문제는 교육과 보육의 질 높이기, 교사의 근무 부담 경감뿐 아니라 학령인구 격감으로 인한 교육‧보육 체제 붕괴를 연착륙시키기 위해 매우 필수적인 정책이다. 부처통합 이후 우선 손을 대야 할 부분이다.
학급당 학생 수 축소를 위해서는 사립유치원과 민간어린이집 등에 대한 지원방식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학부모를 통해서 지원하는 바우처 제도가 아니라 시설에 대한 직접 지원 등과 같은 지원방식의 개편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원기준을 학급당 기준액으로 지원하는 방식의 제도 개선이나 교사에 대한 직접지원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사립중・고등학교가 재정결함보조금을 통해서 교원의 인건비를 포함한 시설비와 운영비를 전액 지원하는 것은 사립중・고등학교가 법인이기 때문에 가능한데, 사인(私人)이 설립할 수 있는 유치원은 시설비 지원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교사에 대한 인건비는 직접지원이 가능하다. 향후 무상교육,보육이 되기 위해서는 비법인 시설의 경우, 시설비를 제외한 모든 교육.보육예산을 사립중고등학교처럼 재정결함보조금의 형태로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교사의 근무조건 개선 역시 시급한 문제다. 교사들에 대한 신분보장과 근무조건 개선, 처우개선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현장에서 교육과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필수요소다. 신분보장은 교사 스스로 전문성 신장의 동기를 부여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현장의 근무조건은, 교사들이 수업을 준비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요소이다. 영유아 한명 한명에게 집중하기 어려운 과밀학급, 다음 날 수업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부여되는 과다한 잡무, 누적된 피로로 건강을 유지하기 어려운 과중한 근무 시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영유아에게 집중하도록 교사들에게 요구할 수 없다.
근무조건의 개선을 위해서는 추가 교사 배치 등이 필요한데, 공립유치원처럼 교육과정과 방과후과정 교사를 각각 배치하도록 정원을 조정하고, 인건비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 휴가 등을 보장하기 위한 대체 교사의 경우, 교육청 단위에서 대체 교사를 배치해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대체 교사가 필요한 경우 대응하는 방식 등이 가능하다.
어린이집을 담당할 교육부장관과 교육감이 준비해야 할 일
지난 1월 30일 교육부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기존 보육 · 유아교육 예산(’22년 기준, 15조원) 등은 이관 · 유지하되, 추가 소요 예산은 지방교육재정에서 부담하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된다면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는 교육과 보육비용은 충당이 가능하지만, 새로 필요한 ‘격차 해소 비용’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지출해야 한다.
이 비용은 ‘격차 해소’의 수준, 예를 들어 학급당 학생 수 감축 수준, 교사처우 개선 수준 등 각 사업의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확한 비용추계가 필요하다. 현재 수준의 재정 규모를 유지한다고 할 때, 학령인구 격감에 따른 원아 감소, 시설의 감소, 교직원의 감소 등으로 줄어드는 소요 비용과 격차 해소를 위해서 필요한 비용을 함께 계산해서 정확한 비용을 추계하고, 이 정도의 재정 규모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유아교육특별회계에서 충당 가능한지도 살펴야 한다.
보건복지부와 시도청 그리고 시군구청에 배치된 보육업무 전담 공무원의 정원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시군구교육지원청으로 전환해야 한다. 부처통합 과정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중의 하나는 교육지원청의 행정능력이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보다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 교육지원청인데, 현재 유아교육 관련 인력은 매우 적고, 그 행정 전문성 역시 미약하다.
반면, 시군구청의 보육관련 행정조직의 규모는 크고, 하는 일도 교육지원청의 그것보다 많다. 더구나 두세개의 시군구청이 교육지원청과 대응되는 경우가 많아서 두세개의 시군구청의 보육업무를 하나의 교육지원청이 담당하게 되며 그 규모는 현재의 교육지원청의 행정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시청이 가지고 있던 보육업무를 이해하고 운영할 수 있는 준비를 교육청이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감 직속으로 추진 기구를 만들고, 교육감이 직접 지휘하며 교육청의 역할을 만들어가야 한다.
각 시도교육청에서 현재 유아교육담당자를 중심으로 통합준비를 해서는 안된다. 유아교육담당자는 교육과정에 관해서 부분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전반적인 통합준비는 교육감 직속으로 정책기획과 행정단위가 그 중심업무를 담당해야 한다. 각 시도교육청에 통합준비단을 구성하고,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을 지원하는 통합지원단을 구성해서 전문적이고 신속한 지원업무를 담당해야 한다.
25년에 부처통합이 되면 각 시도육청과 교육지원청에 새롭게 신설되고 배치되는 보육업무 담당자들은 현재 시도청과 시군구청에서 업무를 담당하는 자의 모두 또는 일부를 파견 또는 전입을 받아서 담당 부서를 구성해야 한다. 파견의 경우 2년 정도를 교육청에 근무하면서 업무의 인수인계를 담당할 수 있다.
교육청에 새로 신설되는 영유아 부서에는 보육행정직원 뿐 아니라 현재 어린이집에서 재직중인 보육교사중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공개선발을 거쳐서 유아교육 전문직과 함께 일한 보육전문직을 배치해야 한다.
25년부터 국공립어린이집이 교육청 관할에 포함되는데, 위탁기간이 만료하는 어린이집부터 위탁이 아는 직영으로 전환해야 한다. 위탁기간이 만료되는 어린이집부터 원장은 현재 공모교장 선정과정과 동일한 방법으로 원장을 공모 배치하면 될 것이다.
앞으로 남은 1년반은 그리 긴 기간이 아니다. 170만 영유아의 6년 학제를 새로 만드는 일이다. 교육부장관과 교육감은 긴장하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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