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굿은 민중의 비판적 정서를 표현한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굿은 민중의 비판적 정서를 표현한다"

[탈춤과 나] 1980년대 제주지역 마당극운동과 그 생성미학적 배경 ②

민족미학연구소와 한국민족미학회가 주최하는 '2023 춘계 학술발표회'가 '1970, 80년대 민속극 부흥운동의 전개 양상과 그 사회문화사적 배경, 그리고 생성미학적 접근'이라는 주제로 지난 6월 29일 부산대학교 인덕관에서 열렸다.

학술발표회 자료집 가운데 문무병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의 발제문을 세 편으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Ⅱ. 제주 신화와 굿에서 찾은 슬픔의 미학-한(恨)

1. 예술광대의 신 '영감 도깨비'와 <영감놀이>              

(1) 영감 도깨비

제주의 신화에서 영감 도깨비는 축제의 신, 예술광대의 신으로

영감 도깨비 본풀이(神話)가 있고, 도깨비를 모시는 본향당[神堂]과 신앙하는 마을이 있다.

가정에서도 장사나 운수업을 하는 집, 어업에 종사하는 집안에서

도깨비를 '조상'으로 모신다.

제주도의 도깨비 신화는 한국 본토의 도깨비와 그 관념과 내용이 일치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본도의 것은 신의 내력담인 <본풀이> 즉 신화로서 존재하는 반면에

한국 본토는 단편적인 잔존 민간설화로서 남아 있다.

도깨비를 제주도에서는 '도채비'라 하며,

'영감' '참봉' '야채', '뱃선왕'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도깨비를 신으로 모시고 제사하는 방법도

큰굿의 <영감놀이>에서부터 어부들이 고기잡이 나가기 전

매달 초하루 보름에 하는 <뱃코(뱃고사)>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형태로 연행된다.

예를 들면, 마을의 당굿에서나,

한 집안의 조상신으로 모셔서 하는 <갈매하르방‧갈매할망 코(告祀)>,

어촌마을 생업수호신인 '뱃선왕[船王]'으로 모셔 어업의 풍어를 가져다주십사 기원하며

배를 진수했을 때 하는 <연신맞이>,

어부들이 매달 초하루 보름에 해신당에 가서 하는 당제,

배의 이물과 고물 등에 제물을 올리고 하는 <뱃코(船舶告祀)>,

안덕면 덕수리 등 대장간에서 '솥불미또'라는 야장신(冶匠神)에 제사하는 <불미코>,

공장이나 철공소, 방아간 심지어는 운수업을 하거나 자가용을 운전하는 집안에서도

무사고 운행을 위하여 도깨비를 위한 고사를 지낼 뿐만 아니라,

집안에 미친 환자가 있을 때도,

도깨비 신을 놀리는 <두린굿>을 하여 영감신을 놀리고,

함덕리 등지에서는 멸치를 몰아다 주는 신으로 '말퉁이 영감'이라는

도깨비 신을 모시고 하는 <그물고사> 같은 것도 있어서

제주도의 도깨비 신앙은 당굿∙풍어제 등의 마을제 이외에도

광범하게 분포되어 있다.

신화는 도깨비가 무역 장사 다니는 제주 상인에게

"나를 잘 대접하고 제주까지 실어다 주면, 부귀영화를 시켜준다"하고 제주도에 들어왔다.

그러므로 도깨비는 외래신이다.

그리고 섬에 들어온 이유는

장사가 잘 되게 해주는 부신(富神)‧무역신(貿易神)의 직능이 있었던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도깨비는 인간을 패망시키기도 하고 재앙과 질병을 불러 준다.

도깨비는 외래신으로 남‧여 양성을 구유한 선‧악 양면성을 지닌 신이며,

'불의 신', '선박의 수호신', '기계의 신', '야장신', '부의 신', '목축신', '산신'이며,

춤 잘 추고, 술 잘 먹고, 노래를 잘 부르며 놀기를 좋아하는 '천하 오소리 잡놈'이니,

좋게 말하면, 예술을 아는 광대의 신, 축제의 신, 술의 신이다.

(2) 도깨비 굿

제주도의 놀이굿 가운데 <영감놀이>는 널리 알려져 있고,

쉽게 구경할 수 있으며, 누구나 그 놀이방식에 대하여 구구한 설명을 하여왔던 바,

그 놀이굿의 내용인 즉 도깨비탈(=종이탈)을 쓰고,

영감으로 차린 도깨비들이 제장 안으로 들어와 한바탕 수선을 떨고,

영감상에 차려놓은 진상물들을 잘 대접받고, 제장을 떠나는 풍자적인 놀이굿이다.

<영감놀이>는 유감주술의례임과 동시에 연희요, 연극이다.1)

<영감놀이>는 영감신이 여인의 미모를 탐하여 범접했기 때문에 앓는 병을 치료하려는 경우,

어선을 새로 짓고 선신(船神)인 선왕(船王)을 모셔 앉히려는 경우,

또는 마을의 당굿이 행해질 경우 등에 실연된다.

그러나 현재 실제 현장을 조사 기술한 보고로는 <칠머리당굿>과

병을 치료하는 굿으로 행하는 것만이 있다.2)

그리고 <두린굿>의 막판에 환자에게 범접한 영감신을 쫓아 보내는 <영감놀이>를 하고,

짚으로 만든 배에다 많은 진상품을 실어 바다에 띄워 보내는 <배방선>으로 끝난다.

<서우젯소리>를 부르는 곳에는 '영감신'이 있다.

춤을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신,

'천하 오소리 잡놈' 도깨비 7형제 중 막내 동생이 환자와 더불어 춤을 춘다.

현실과 비현실의 극점에서 춤은 격렬해지고,

신인동락의 춤의 절정에서 신은

인간과 분리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굿은 끝나고

모든 게 현실의 건강한 삶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서우젯소리>의 기능을 환자의 몸속에 빙의한 신을 춤추게 하여

놀리고 떠나보내는 치병의 기능이라 한다면,

<영감놀이>의 연극적 기능과 '바늘과 실'의 관계에 있다.

[도깨비굿 사례]

이 자료는 1984년 3월 14일부터 17일까지(4일간)

고향을 떠나 서울 왕십리 구슬공장에서 일하던 19세 처녀가 정신병이 들어 제주시 함덕리로 낙향했는데, 병의 원인은 제주도서 '영감신'이라 부르는 도깨비의 범접 때문에 얻은 것이라 했다. 굿의 진행은 환자가 '언제, 어떻게 하여 정신 이상이 되었는가'하는 연유를 닦아가는 <초감제>로부터 시작하여 '서우젯소리' 장단에 맞추어 환자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는 <춤취움>, 환자가 정신없이 춤을 추다가 쓰러져 환자로부터 범접한 귀신이 누구라는 자백을 받는 <대김받음>, 귀신을 달래어 쫓아 보내고 <영감놀이>를 하여 끝을 맺는다.

① 연유닦음

오늘은 신자들은 하강일을 고르고, 생인들은 생기복덕 제맞이 날을 골라 하는

큰굿, 작은 굿이 아닙니다.

답답하고 갑갑하고 칭원하고 원통한 원액으로서,

하늘 님 전에 등장들자 하되,

청청 높은 독수공방 청하늘 못내 들고,

지하 님 전 칭원한 원정을 들자 하되

백사장 너른 땅 못내 들어,

불쌍하고 적막한 아비 그린 애기,

스물 한 살 이 애기,

돈 벌어 어리고 미혹한 동생들 공부나 시키자고,

땅(태 사른 땅) 떠나, 경기도라 서울 객지에 나가,

공장생활로 밤엔 밤대로 고생,

낮엔 낮대로 고생하여,

아침밥은 점심 삼고, 점심밥은 저녁 삼아,

시간 잠, 시간 일 하다 보니, 무정한 세월은 다 흘렀습니다. (요령 소리)

인간의 삼 넋 중에 한 넋만 없어도 검뉴울꽃(시들어가는 꽃) 되는 법 아닙니까.

우리 인생, 토란잎에 이슬 같은 인생이 아닙니까.

어리고 불쌍한 이 아이,

설운 어멍 놓아두고 고향산천을 떠나 있어

어느 누구 넋들이고, 혼 들여 줄 사람 없어,

온갖 잡귀, 허튼 넋 다 붙었으니,

이 모든 허튼 넋 거두어다 넋 한번 못 들여 줘

이 불쌍한 아이, 넋이 나고, 혼이 났습니다.

지치도록 공장일 하다 정신없고, 정신 이상까지 되어지니,

불쌍한 이 아이 먹던 밥 멀리 두고,

자던 잠 멀리 두어,

그리운 건 고향산천 그리운 건 저 어멍 하나.

배고파 울던 내 그리운 동생들.

고생하는 김에 늙으신 어멍 고생시키지 말고,

나대로 돈 모아 시집도 가야지 하며

죽도록 일만, 일만 하다가 이 아이 넋이 났습니다.

밥이 없고, 옷이 없어 하는 원정이 아닙니다.

옷과 밥은 얻어서도 밥, 빌어서도 옷입니다마는

이 불쌍한 정녀(貞女) 아비 없는 자식들,

남들처럼 키우려고 아침에 동이 트면

남의 일품 팔려고 평대로, 한동으로, 세화리로

동지섣달 설한풍 흰눈 위에 더운 밥 싸 가서 식은 밥 먹으며,

발 시리고 손 시리며, 한 푼 두 푼 모아 아이들 공부시키고,

일가방상에 착하단 말 듣고, 옛말하며 살려고

세경 너른 들판으로 새벽 잠 설치며 동틀 무렵 밭에 나가

해와 동무하던 저 정녜(貞女),

한쪽 손엔 골갱이 들고, 입은 옷은 산에 안개 두르듯 하여

낮에 나가 밤에 들던 불쌍한 정녜(貞女)

(심방이 울고, 어머니 변씨 부인도 운다)

② 서우젯소리

<서우젯소리>는 춤의 신명을 부추기는 민요조의 무가다.

이 노래는 한의 가락에 맞추어 신명으로 부르는 민요인 것이다.

<서우젯소리>를 '내 냉김 소리'라고도 하는데

'내'는 '물살' 또는 '파도'를, '냉김'은 '넘김'을 뜻하니

파도를 타고 넘듯 삶의 극한적 어려움(=병)을 극복해 나가는

한(恨)의 가락이라 할 수 있다.

환자는 심방이 부르는 '서우젯소리'에 맞추어 춤을 춘다.

춤은 고난을 극복하는 수단이며, 춤의 신명으로써 삶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서우젯소리>에 의한 '한풀이'인 것이다.

어기여차 살장고로 일천간장을 다 풀려 놀자.

천금상에 대왕이 놀면 백금상에 요왕(龍王)이 노네.

설운 애기야, 스물한 살아 설운 애기야,

놀다나 가자. 설운 애기야,

널 낳던 날은 해도 달도 없는 날이던가.

예수나 믿었으면 천당 갈걸,

불교나 믿어서 극락 갈걸.

설운 정녜야, 불쌍한 아기야,

총각머리 등에 지고, 초전생 팔자를 다 그르쳤구나.

(딸과 함께 춤추던 어머니 운다. 환자는 요란한 무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소무(小巫)는 환자의 몸에 술을 뿜어 뿌린다. 환자가 부끄러워 춤을 그만 둔다. "땀이 나게 춤을 추어야 병이 낫는다"고 소무는 춤추기를 타이른다.)

돈아, 돈아, 말 모른 돈아,

개를 주어도 아니 뜯어먹는 금전,

돌고 도는 금전,

이놈의 돈이 무정하구나. 이놈의 금전 벌러 갔다가,

내 일 망쳐라 내 일 망쳐, 설운 정녜 스물 한 살아.

일천간장 다 풀려 놀자. 스물 한 살 울어가니,

느네 어멍도 잘도나 우네. …(생략)…

어머니 : (환자 곁으로 다가가서)

             이처럼 지린내, 똥 내 팡팡 나는 데 오래 살 필요가 없어. 어서

             와장창 놀다 떠나. 좋은 데 찾아가.

심방 : (달래며) 예, 예.

어머니 : 다섯 식구 다 살리는 애기 아닙니까!

             어머니, 두 달만 돈 보내라 말고 기다리면 반지해서 보내겠다

             더니……그렇게 인정이 많아요.

심방 : 병은 그런 것에 붙는 거라.

어머니 : 달이 그물어 가면 "행여 우체부나 올까?" 편지마다 "어머니,

             남의 일 그만 다닙서, 나 돈벌어 보낼 테니" 어머닌 집만

             지키고 있으라던 애기, 집에 오니…..

             아이고, 망할 놈이 이 집구석에 들어 내 신셀 망치네!

             삼촌, 저 애기 막 시원하게 울게 해 줍서.

             울어야 속이 편안합니다. 내가 저 아이 열일곱 살에 육지 보낸 후, 옷 한 번 제대로 사 입히지 못했수다.

             공부나 시켰으면 저 공장에 가서 병을 얻어 왔겠습니까?

심방 : 제 팔자 제 복이지. 이러구 저러구 간에…

         냉수나 한 그릇 떠 와.

(환자, 어머니 모두 운다)

산도 넘어 물 넘어 가자. 영자야 화장아 배 단속하라.

명주바다에 실바람 났다.

나는 간다, 나는 간다. 스물 한 살 다 울려두고.

스물 한 살 맺힌 가슴,

오장간장 다풀리고, 너도 이별,

나도 이별, 땅 가르고 물 갈라.

닭은 잡아 '훼양놀이', 돼지 잡아라 '장저맞이' 별고사,

배고사 다 놀리고, 아기놀이, 참봉놀이, 영감놀이 하자.

(빠른 악무에 춤을 추다 환자 쓰러진다)

이상과 같이 '서우젯소리'는 환자가 춤을 추고 쓰러질 때까지 몇 날 며칠까지라도 계속된다.

이 <두린굿>에서 환자의 병은 영감(=도깨비)의 범접에 의한 것이다.

신을 놀리는 것은 춤이요, 생인 환자를 놀리는 것은 눈물이다.

눈물은 고통스러운 현실의 삶에 대한 처절한 직면이다.

환자는 자기가 직면한 비극적 상황을 긍정하고

눈물을 통하여 삶의 맺힘(恨)을 풀고 신명을 획득한다.

③ 대김 받음

(갑자기 심방은 버드나무를 들고 쓰러져 있는 환자에게 달려간다)

심방 : (위협조로) 어째서 춤을 추는거냐? 어떤 마음으로 춤을 추느냔

          말이다.

환자 : (흐느낀다)

심방 : 이것 봐라, 이거 또 기둥굽을 보려는 거……

환자 : 그냥, 막 병을 고치려고 췄수다.

심방 : 뭐? 병을 고치려고? 춤을 춘다고 병이 고쳐지나?

         어디서, 어째서?

환자 : 서울 마장동에서

심방 : (이 말을 놓치지 않고) 마장동 어디?

         그 귀신 갈 꺼, 안 갈 꺼?

         (버드나무로 때리며) 어디로 갈 거냐?

환자 : 가겠습니다.

심방 : 그럼, 그거 어디로 갈꺼냐?

환자 : 가고 싶은 데로 갈 겁니다.

심방 : 네게 의탁해 춤추는 귀신들 어디로 갈꺼냐니까?

환자 : 서울로

심방 : 정말? 굿을 마치고 가버리면,

         또 "어디 아프다, 어디 아프다" 할 거 아냐?

         이 집엔 너 하나 믿고 밧갈쉐부리듯 하는데, 내가

         가버리면, 드러누워 나자빠질 것 아니냐?

환자 : 아닙니다.

심방 : 그럼 약 안 먹어도 좋고, 주사 안 맞아도 괜찮고?

이게 또 거짓말 할려네. (매를 때린다)

환자 : 아닙니다.

심방 : 정말이냐? 그럼 막석풀이로 너대로 노래부르면서 춤을 춰.

(무악에 맞춰 빠른 도랑춤(회전무)을 춘다)

(넋을 찾았으니 넋상을 차려놓고 넋들임과 푸다시굿을 한다. 이를 <막푸다시>라 한다.

④ 영감놀이

<두린굿>의 막판은 환자에게 범접한 영감신을 쫓아보내는 <영감놀이>를 하고,

짚으로 만든 배에다 많은 진상품을 실어 바다에 띄워 보낸다.

이 굿에서 <영감놀이>는 환자의 주술적 치료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영감신(도깨비)은 원래 미녀를 좋아하는 호색신이며,

이 신이 범접하여 병을 앓는 경우,

이 영감을 잘 놀리고 쫓아냄은 병의 치료를 위한 주술적인 한 방법인 것이다.

▲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영감놀이(令監놀이)>  ⓒ문화재청 국가유산포털

(3) 제주굿, 한의 미학

① 한풀이의 방식 '영개울림'3)

굿은 서양예술이 제주도에 들어오기 이전의 민족예술이며,

제주 민중예술의 원천이며 실제다.

그러므로 굿의 아름다움은

도민이 생활 속에서 맺힌 것을 굿을 통하여 풀어왔던

'한풀이'의 정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심방은 신을 대신하여 죽은 조상의 말을 들려주기도 하고,

신앙민은 심방의 말을 죽은 조상에게서 직접 듣는 것처럼 듣는다.

그리고 맺힌 한(恨)을 푼다. 맺힌 한을 풀어내는 한풀이가 영개울림이다.

굿은 내용 면에서 볼 때, '맺힘과 풂의 연쇄'로 구성되어 있다.

맺힘은 굿을 해야만 할 사연이다.

굿의 내용 구성은 단골(=祭主)의 문제(=맺힘)를 심방이 굿을 통하여 푸는 것인데,

심방이 하는 역할에 따라 굿은 신을 신명으로 살려낼 수도 있고,

그냥 형식적으로 끝내 버릴 수도 있다.

굿을 할 수밖에 없는 딱한 사연이 있을 때,

단골은 심방을 찾아가 굿을 의뢰하게 되고,

심방은 단골의 연유를 잘 닦아 신에게 아뢰고

신의 의사를 알아내어 단골들에게 '신의 분부를 사뢰는 것'이다.

그러므로 굿은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푸는 내용을 가진다.

죽은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는 굿,

<시왕맞이>를 하여 죽은 영혼들의 길을 닦아주고

'저승 상마을'로 보낼 때,

심방의 입을 빌어 말하는 '분부사룀'을 '영개울림'이라 한다.

이는 죽은 영혼이 그 서러움을 울면서 말하기 때문에 '영개울림'이라 한다.

'영개'는 영혼의 뜻이고, '울림'은 '울게 함(泣)'의 뜻이다.

심방은 이 '영개울림'을 할 때, 죽은 영혼을 청해 놓고,

"심방의 입을 빌어 말한다."라고 하면서

영혼의 생전의 심회, 죽어 갈 때의 서러움, 저승에서의 생활,

근친들에 대한 부탁의 말들을 울면서 말한다.

그러면 그 근친들은 영혼이 직접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

이때 심방은 사령(死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심방이 곧 죽은 사령이다.

그러므로 신과 직접 대면한 인간과 신과의 비극적 상황에 대한 아이덴티티가 이루어져

서로 울면서 한을 풀어 나가는 것이 '영개울림'이다.

이때 심방이 사용하는 '눈물수건'은 영혼의 울음, 해원(解寃)의 증거물이다.

이처럼 젖어버린 눈물수건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여

과거와 현실을 통하게 하고 그 교감이 민중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죽은 영혼이 흘린 눈물 자국은 과거이며 역사다.

굿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살아 남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과 과거의 오해를 풀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통하게 하는

역사적 만남과 소통이라는 굿법의 이치를 담고 있다.

② 한의 미학적 전개-[제주인의 삼한(三恨)]

삼무(三無)의 섬 제주사람의 삼한(三恨)은 '태땅', 탯줄을 묻은 땅과 심방의 '눈물수건', 그리고 'ᄄᆞᆷ든 의장', 망자의 땀 배인 노동복 갈옷이다.

제주도의 굿에는 눈물이 많다. 인정이 많다. 젖어 있는 마음을 몰라줄 때 칭원하고 원통한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젖어 있는 것은 아름답다'라는 미의식을 지니고 있다. 굿을 하면 사람이 젖는다. 많이 운다. 인정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제주사람에게 인정은 현실세계에 살아 있는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정이기도 하지만, 망자와 산 사람, 이승과 저승에 주고받는 돈 거래도 인정이라 한다. 저승 열두 문에 인정을 걸어야 저승문이 열리고 망자는 저승으로 떠난다. 이승에 미련을 버리고 저승 상(上)마을로 가 나비로 환생하라고, 저승 열두 문에 돈을 건다.

제주인 젖게 만드는 삼한(三恨) 중 하나는 '태산 땅'이다.

제주 사람은 고향을 본향(本鄕)이라 한다. 본향이란 의미에는 자기의 탯줄을 태워 묻어 둔 땅, 태 사른 땅(태땅)이란 의미가 있다. 제주의 어머니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어머니의 태반에서 아이에게 영양을 공급해주던 아기의 탯줄[胎]을 태운 검정을 항아리에 담아서, 새벽녘에 탯줄처럼 세 줄로 감겨 있는 길, 세 길이 만나는 삼도전거리(세거리), 어머니만 아는 비밀한 곳에 묻어두었다가, 아이가 피부병에 걸리면, 태를 태웠던 검정을 아픈 부위에 발라주었다. 태(胎)의 원초적인 생명력과 생명의 뿌리를 저장하고 있는 땅이 지닌 생명의 복원력으로 병든 아이의 피부를 소생시킨다는 영적인 주술이며 치료였던 것이다. 제주 사람은 아이들에게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뿌리를 내린 본향(本鄕), '태 사른 땅(태 땅)'이라 가르쳤던 것이다.

삼한 중 또 다른 한은 '눈물수건'이다.

심방은 죽은 사람을 대신하여 '눈물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죽은 망자의 영혼이 하는 이야기를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많은 눈물을 흘리고 한을 풀어야 망자는 저승에 간다고 믿는다.

실컷 울고 저승으로 떠나는 망자는 울지 않는다.

생전에 마음에 맺힌 한을 풀었기 때문이다.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여 중음에 버려진 망자들만 흐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구름이요 바람이다.

한풀이는 눈물을 통하여 죽은 자와 산 자가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영개울림'이며, 이때 심방이 사용하는 '눈물수건'은 영혼의 울음,

해원(解寃)의 증거물이다.

눈물수건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여

과거와 현실을 통하게 하고 그 교감이 민중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죽은 영혼이 흘린 눈물 자국은 과거이며 역사다.

굿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과 과거의 오해를 풀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통하게 하는

역사적 만남과 소통이라는 굿법의 이치를 담고 있다.

굿은 과거의 억울함을 푸는 한풀이이며 역사적 해원이다.

난리에 억울하게 죽은 자를 '군병' 또는 '잡귀'라 하는데,

주인이 없는 귀신이기 때문에 배고프고, 의지할 데 없어 구천을 떠돈다.

구름 길 바람 길을 떠돈다.

억울한 죽음인데 물 한 그릇 밥 한 그릇 주는 이 없다.

따라서 해원의 의미는 바람을 잠재우듯이 억울한 죽음을 정당화 해주고,

'의로운 죽음'으로 자리매김하여 위령하고 영혼을 저승 상마을로 보내는 의식이다.

제주 사람들은 굿을 통하여 울고, 눈물을 통하여 과거를 정리하였다.

그러므로 귀신과의 만남을 증거하는 눈물수건은 역사적 해원의 의미를 지닌다.

삼한 중 마지막 한은 죽은 망자의 혼적삼 'ᄄᆞᆷ든 의장'의 한이다.

혼을 부를 때는 죽은 사람이 생전에 입었던 속옷을 들고 혼을 부른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땅에는 차가운 육신만 남는다.

영혼과 육신이 분리는 죽음의 의식에 의미가 없다.

혼을 불러 차가운 육신에 혼을 씌우고

저승옷을 입히고 짚신을 신고 노잣돈을 가지고야 저승에 가서

새로운 삶을 살 것이다.

혼을 부를 때는 죽은 사람이 생전에 입었던 속옷을 들고

혼을 부른다. 이 속옷은 생전에 일을 하며 땀이 배인 옷,

'ᄄᆞᆷ든 의장'이라 한다.

죽은 자의 몸에 생전에 입던 땀 배인 옷을 덮는 의식은

영혼을 씌우는 재생의 의미를 지닌다.

제주 사람들은 눈물수건에 잃어버린 과거의 삶을 그려보고,

땀 배인 옷을 통하여 망자의 생전의 삶을 재생하며

살아있는 생전에 모습으로 저승으로 보내는 굿을 해왔다.

따라서 굿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의 통로이면서

제주 사람만이 지니는 인정,

제주정신의 토대가 되는 미의식,

정서를 만들어 왔던 것이다.

③ 제주정신의 토대

제주정신의 토대는

'역사 체험의 정서', '생산 노동의 정서', '비판적 변증법적 정서'를 통하여 완성된

공동체 의식이었다.

굿은 민중의 역사 체험의 정서를 표현한다.

경험적 정서를 표현한다.

민중은 삶의 경험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같은 시대에, 같은 정치적 상황에서, 같은 생산 활동을 하기 때문에

의식구조나 행동 양식이 동일하며,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가,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사상과 느낌이 일치한다.

이는 제주 사람들의 탯줄을 사른 '태 땅'으로의 자연회귀성(自然回歸性),

삶의 위기의식에서 오는 냥정신, 노동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이여도'의 낙원사상,

자손의 번영을 위한 무덤 자리와 새 땅을 찾으려는 '풍수신앙' 들도

모두 생활경험에서 나온 사상 체계였다.

이러한 역사 체험의 정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역사적 체험을 공유하는 굿을 통하여

'저항정신'의 뿌리를 계승하여 왔던 것이다.

굿은 민중의 생산적 정서를 표현한다.

생산적 정서란 노동을 통하여 삶의 참맛,

생산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일을 하면서 춤을 추어, 노동의 고통을 덜고,

노동 그 자체를 강화하는 '노동의 신명'을 말한다.

노동이 생산 활동이며 삶의 연장 수단이라면,

노동의 고통을 더는 휴식이나 삶의 긴장을 푸는 놀이,

그리고 노동 그 자체를 강화시켜 주는 일노래들은

육체적인 노동의 고통을 극복하게 하고 삶의 의욕과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것이 바로 노동의 정서다.

노동의 정서는 서로 어울려 일하는 수눌음 정신으로부터 발현되는 집단신명이다.

공동의 생산과 분배, 그리고 두레 노동을 중심으로 한 '수눌음 정신'은

노동현장 또는 지역현장을 집단화하여,

계(契)나 접(接)을 조직하고, 노동을 함께 하면서

'미(美)=노동', '미(美)=생산'이 되는 생산적 일노래와 생산적 굿놀이를 통하여

공동체의 일체감과 집단신명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의 정서는

“넉넉하고, 푸지고, 건강하며, 살판나는 아름다움”이며,

'ᄄᆞᆷ든 의장'에서 베어 나오는 땀내 나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굿은 민중의 비판적 정서를 표현한다.

비판적 정서는 부정(否定)과 저항과 싸움을 통하여 얻게 되는 변증법적 정서다.

민중의 현실 인식은 삶의 압제에 대한 저항성,

삶의 태도의 진지성, 생존의 치열성, 생의 인식의 비극성을 보인다.

진지하고 치열한 삶의 태도가 한계에 달했을 때 오는 생의 인식의 비극성은

민중의 비판적 정서를 풍부하게 한다.

생의 인식의 비극성을 극복하게 하는 굿의 기능으로

'한풀이'를 들 수 있다.

'한풀이'는 체념적인 정서가 아니다.

모순된 현실의 비극성을 딛고 일어서는 비판적 정서다.

민중의 한 많은 삶은 '눈물수건'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눈물을 닦음으로써 엄청난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의 비극적 인식은 삶의 체념과 포기가 아니라

저주와 독설, 풍자와 해학 속에 힘을 얻어내고,

부정(否定)을 통하여 현실을 극복해 내는 신명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는 비극적 상황에 정면으로 대응하여 얻어내는 해방의 정서이며,

변증법적 정서인 것이다.

각주

1)玄容駿, 「영감본풀이와 영감놀이」, 巫俗神話와 文獻神話, 集文堂, 1992, p.247

2)玄容駿, 󰡔제주도 무당굿놀이󰡕(重要無形文化財 指定資料), 文化財管理局, 1965, pp.141-155

3)<시왕맞이>에서 '영개울림'은 죽은 망자의 영혼(靈魂)을 울리는 제차

*한글 표기 중 '가운뎃점'이 들어간 단어는 기술적인 문제로, 'ㅏ'로 표기하고 굵은 글씨체로 전환했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