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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에게 광장을

[인권의 바람] 퀴어문화축제와 집회시위의 권리

우리가 광장을 찾는 것은 타인과의 접촉, 관계 맺음을 원하기 때문이다. 광장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를 마주치고 알게 되며 삶의 다양성과 인간존엄성을 배워간다. 닫힌 광장에서 '사회적인 것'은 형성되기 어렵다. 특히나 광장이 누군가에게는 열려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닫혀 있다면 그 자체로 광장의 기능을 할 수 없다. 광장의 특성인 열림과 보편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광장은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의 장소였다. 권력자가 마음대로 휘두른 권력으로 짓밟힌 인권을 되찾기 위해 민중이 모이고 외치며 투쟁했다. 짧게는 2016년 국정농단을 일으킨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곳이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사퇴시켰던 곳도 모두 광장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를 싫어하고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고 싶은 특권층, 지배계급은 광장을 없애려 한다. 광장에 화분을 놓고 펜스를 놓고, 파라솔을 갖다 놓을지언정 사람은 못 모이게 한다. 사람들이 모이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교류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최근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과 경찰이 서울의 주요 광장에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광장를 펜스로 메웠다.

서울시의 주요 광장(광화문광장, 청계광장, 서울광장)을 이용하려면 집회신고만이 아니라 서울시의 사용 허가도 받아야 한다. 시장 마음대로 광장 사용 허가를 내지 못하도록 주민발의를 통해 서울광장 조례를 만들었지만, 편법으로 인해 시장 마음대로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광장 사용 여부를 심의하는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시민위원회)가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입맛을 따르는 사람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12명의 시민위원 중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 3명과 서울시 소속 공무원 2명이 서울시장과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이들이다. 위촉직 시민위원 6명은 과거 현 정부 여당을 후보로 출마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거나 선거캠프 사람들이다. 뿌리 지역단체 등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2021년 보궐선거로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은 광화문 광장 조례에서 집회를 뺐다. 서울시가 2022년 8월 6일 광화문광장을 재개장하며 발표한 조례에는 집회가 사라졌다. <서울특별시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는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등'을 위한 공간이라고 되어 있다. 서울시는 "집회·시위 목적의 행사는 최대한 사전에 걸러내 허가를 내주지 않을 예정"이라고 했다. 집회와 문화를 딱 잘라보는 인식의 한계는 둘째치더라도 헌법 상 보장된 집회 시위의 권리를 조례로 막겠다니 오만방자하다. 시민사회의 비판이 있자 서울시는 집회로 인한 소음 등 민원이 많아 만든 '공익적 차원의 조치'라고 설명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2년 국회 국정질의 때 집회를 막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아직도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는 열리지 못하고 있다.

퀴어문화축제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한 서울시

조례만 보자면 광화문광장과 달리 서울광장에서의 집회와 시위는 가능하다.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서울광장조례)>의 사용 목적에는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공익적 행사 및 집회와 시위의 진행 등'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편파적으로 서울광장에서의 집회를 막고 있다.

시민위원회의 정치적 편향성과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무지는 서울퀴어문화축제 행사 개최 불승인으로까지 이어졌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2015년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그러나 5월 3일 열린 제4차 시민위는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불승인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서울광장 조례에 따라 심의한 시민위원회는 "공공성이 저해된다",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좋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사용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의 개최를 승인했다. '회복'이란 말은 국제사회가 성소수자 인권침해로 판단하는 소위 '전환치료'를 내포하고 있기에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의 개최 승인은 심각한 인권침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서울시는 성소수자가 광장에서 집회시위할 권리를 빼앗았다.

시민위원회 회의에서 나온 말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로 가득하다. "(성소수자들이) 표현할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보지 않을 자유도 중요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성소수자를 보지 않을 권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성소수자나 장애인 등은 이미 소수여서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회적 권력관계에서 소수인 성소수자들은 사회적 권리를 박탈당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일상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성소수자를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취급하며 비가시화된 삶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성소수자를 '보지 않을 권리'를 운운한다면, 그것은 성소수자는 사회에서 사라지라는 뜻일 뿐이다. 이성애중심의 이분법적 성별 관계가 주류인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자신의 삶과 몸을, 사랑을 말하기 어렵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한 채 사는 현실에서 '보지 않을 권리'란 혐오의 다른 버전일 뿐이다. 주류의 눈에 띄지 말라는 뜻이니 배제일 뿐 권리나 자유가 아니다.

공공성과 다양성,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출현할 권리

앞서도 말했듯이, 광장에서 우리는 타인과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다양성과 인간존엄성을 배운다. 성소수자는 광장에 나와 다른 이를 만나지도 못하게 하는 결정이 어떻게 공공성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다른 존재를 만날 수 없는 광장, 다른 존재는 출현조차 못하는 거리에서 우리는 타인을 만나지 못하며 인간의 존엄을 사유할 수 없다.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공공성은 공공성이 아니라 다수성일 뿐이다. 소수자의 시민권을 부정하는 공공성이란 성립할 수 없다.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들>(2020, 창비)에서 주디스 버틀러가 말했듯이 "모든 신체는 여타 권리들을 실행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며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닫혀 있던 권리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얼마 전 발의한 가족구성권 3법(혼인평등법, 비혼출산지원법, 생활동반자법) 같은 소수자 인권법의 필요성을 체감할 것이다. 서로 다른 몸과 삶을 드러내는 그 물질성이 사회를 재구성하는 힘이다. 법이 보호하고 있지는 않지만 살아가고는 있는 다양한 파트너십의 동성 연인들을 볼 것이다. 소수자의 출현은 다른 사회구성원들의 좁은 인식을 깨치고 사회를 재구성하는 힘이다. 다양한 신체들이 참여하는 장소에서 기득권 중심의 사회를 넘어 다른 사회의 씨앗이 될 상상력과 힘을 비축할 수 있다.

7월 1일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을지로에서 열린다. 주류세력이, 권력이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삶이, 존재가 서울 한복판에서 웃음과 춤과 벅참으로, 간혹 눈물과 함께 출현할 것이다. 주류 세력과 다른 존재들은 "그저 거리를 걷는 것, 그런 사소한 자유를 실천하는 것이 때로는 특정한 체제에 대한 도전이 된다." 특정 장소에서 출현이 금지되어 온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이성애중심의 체제를, 성별이분법의 사회를 흔들 것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불평등의 체제에, 주류 중심의 특권사회에 이골이 난 사람들은 7월 1일 을지로에 모이면 좋겠다. 존엄과 평등을, 특권사회가 아닌 모든 이의 존엄을 바라는 이들이 모두 오면 좋겠다. 성적 지향이 무엇이든 간에 공적 공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비난받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모일 때 특정인의 출현을 가로막는 법적·제도적 조건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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