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자전거를 타고 병원으로 가던 길에 덤프트럭에 치어 사망한 아산병원 흉부외과 주석중 교수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애도의 목소리와 함께 안타까움을 표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어렵게 구해주고 정작 본인은 허무하게 떠났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안타까운 사고를 언급하며 글을 쓰는 이유는 이 사고가 자전거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고인은 자전거를 탄 채 횡단보도를 건너다 덤프트럭 뒷바퀴에 깔린 것으로 알려졌다. 자전거 사고에서 목격하게 되는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사고 유형이다.
오토바이보다 위험한 자전거
우리가 흔히 오토바이를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자전거가 더 위험하다. 2019년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교통사고 유형별 응급실 내원 현황'에 따르면 차량(48%)과 보행자(19.7%) 다음이 자전거(17.2%)였다. 오토바이는 자전거 다음(12.8%)이었다.
국내 자전거 인구가 12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다쳐본 사람은 안다. 자전거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특히 아이들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자전거 사고는 하루 중 오후 4시에서 6시까지 가장 많이 발생한다. 즉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온 이후 발생이 급증하는 것이다. 특히 소아·청소년 사고율(36%)은 성인(12%)의 세 배다. 그래서 자전거 사고 환자 중 19세 이하 소아·청소년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반에 가까운 43.1%다.
아이들 자전거 사고 발생률, 헬멧 착용률과 정확하게 반비례
자전거 안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헬멧 착용이다. 자전거 사망사고의 원인 중 77%가 두부 손상이다. 문제는 전체 자전거 사고에서 헬멧 착용 비율이 11.6%라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을 정도로 낮은 헬멧 착용률이다. 어른들이 헬멧을 우습게 보니 자식들도 헬멧을 우습게 본다. 한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 헬멧 착용률이 19%에 불과한데 부모들이 어릴수록 헬멧을 씌우지 않는 것인지 14세 미만 소아청소년 헬멧 착용률은 고작 9%다. 아이들 사고 발생 시 헬멧 착용률이 4.6%인 것을 보면 아이들 자전거 사고 발생은 헬멧 착용률과 정확하게 반비례한다.
고 주 교수는 사고 당시 헬멧을 착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몇 가지가 우리나라 치명적 자전거 사고의 특성을 보여준다. 우선 횡단보도를 자전거를 탄 채 건넜다는 점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면 보행자로 건너야 한다. 도로교통법 제2조 17항은 자전거를 '이륜차'로 분류한다. 횡단보도를 자전거에 탑승한 채 건너다 사고가 나면 보행자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차량끼리의 사고로 간주한다. 횡단보도에서는 자전거에서 하차한 후 손으로 밀고 가야 한다. "그게 말이 되냐"고? 쓰레기분리수거나 버스중앙차로제나 모두 처음엔 그게 말이 되냐고 했지만 지금은 당연한 문화로 자리잡았다. 의지의 문제다.
공포의 우측 뒷바퀴
두 번째는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덤프트럭 우측 뒷바퀴의 공포스러움이다. 고인도 여기에 당했다. 대형 차량이 우회전 하는 경우 뒷바퀴는 앞바퀴의 궤적보다 훨씬 안쪽으로 치고들어오게 마련이다. (급작스러운 후진이 어려운) 자전거도 위험할 뿐 아니라 교차로 횡단보도에 서있는 사람들도 위험하게 마련이다. 내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가 도심 한복판에서 그냥 서 있다 그렇게 세상을 떴다. 몇 년 후 아들을 잊지 못한 그 어머니도 결국 아들을 따라갔고. 그래서 교차로 횡단보도에서 대기할 때는 두 걸음 안쪽에서 대기해야 한다. 아이들은 세 걸음 안으로 들어가 기다려야 하고.
세 번째는 트럭 운전자가 고인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뉴스에 나온 사고 현장을 보니 당시 고인의 자전거, 헬멧, 신발은 모두 검은색이었다. 옷색깔을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안전을 고려한다면 밝은색의 옷과 장비가 필수적이다. 특히 우리 아이들을 보면 위험천만하다. 이 아이들도 분명 '백의 민족'일텐데 아이들은 한사코, 떼거리로 검은색을 선호한다. 그래서 등장한 게 이른바 '김밥말이 패션' 아니던가. 배트맨이 검은색 옷을 입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밤에 안 보이려는 거 아닌가? 한밤 중 헬멧도 쓰지 않은 채 검은 자전거에 검은색 패딩을 입고 도로를 질주하는 위험천만한 아이들을 보면 내 마음이 다 불안해진다.
'김밥말이 패션'은 이제 그만: 아이들을 밝게 입히자!
서울의 리라초등학교는 교복, 체육복이 모두 노란색이다. 학교 건물도, 스쿨버스도 노란색이고, 교화도 노란색 개나리고, 교가는 '병아리 행진곡'이다. 교복이라면 검은색이나 군청색 일색인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래서 '병아리 학교'라는 웃음 어린 지적도 있지만 아이들 안전을 위해서라면 대단히 훌륭하고도 용감한 결정이다. 설립자의 결정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언젠가 설립자의 손주가 어두운 밤 교통사고를 당해 밤에도 잘 보이는 노란색으로 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오래전 OECD 가입국이 됐고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고 자랑스러워 한다. 그러나 안전에 있어서 만큼은 한참 멀었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일본이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러 나올 때 아이들은 '로보캅'으로 변모해서 등장한다. 헬멧은 물론 손목보호용 장갑, 팔꿈치보호대, 무릎보호대는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도, 아이도 헬멧조차 쓰지 않는다. 어릴수록 헬멧을 쓰지 않는 게 우리나라다.
고민할 필요도, 헷갈릴 필요도 없다. 헬멧이 없으면 자전거도 없다. 아이들은 밝은 옷을 입혀서 내보내야 한다. 안전은 타협의 대상도 아니고,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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