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밥줄을 따라
- 홍제리 학살 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며
1. 옥희의 밥줄
얼어붙은 청계천 위
하얀 머리빗 자국
못난이처럼 흔들거리는
팽이 속도보다 빠르게
곯은 배 채우려
따라 섰던 열 살 옥희의 줄은
썩은 동아줄
줄 잘못 선 죄는 죽을 죄라고
누구 하나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무악재 너머 홍제리
1차선 도로 위 깊게 파인
군용트럭 바퀴 자국 두 줄
앞으로 다시는 굶지 말라고
총살터로 향한 줄
시끄럽다고 귀 막아주는
일천구백오십년 십이월 된바람이
엄마 품 파고들며, 살짝
쳐다본 옥희의 밥줄
2. 부역자들
형무소장님이요
오늘 아침
우리 며늘 아기랑 손주 둘
트럭 태워 어디로 보냈습니까
서울 사수하라고
국군이 잘 막고 있다고
방송까지 해서 피란도 안 간
우리 식구들 아닙니까
애가 배고파
배급표 받으러 나간 게
인민군 부역자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애들 아빠가
국군 자원 입대했는데
며늘아기가 왜 부역잡니까
무악재 너머
난데없는 콩 볶는 소리
무섭습니다
형무소장님이요
3. 홍제내
홍제내에 몸 씻고 오면
환향녀 죄도 다 씻어준다는
임금은 어느 나라 사람이오
저희들 잘 살려
여인들을 오랑캐에게 보내놓고
대신 욕 본 아낙들이
무슨 죄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소
아 임금님이
홍제원에 꽃같이 고운 색시들
대령시켰다고 하오
청나라 사신 수행하는 남정네들
노고를 위로하라고
뉜들 가고 싶어서 갔겠소, 우리야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사람들인데
4. 나들이
밥줄을 따라
트럭 타고 가는 건
처음이었는데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길
옥희 어매
홍제내 나들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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