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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 어머니와 판자촌서 끼니 걱정한 청년, '돈 버는' 도지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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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 어머니와 판자촌서 끼니 걱정한 청년, '돈 버는' 도지사 되다

[인터뷰] 당선 1주년 맞은 '경제 전문가' 김동연 경기도지사 ②

2022년 6월 2일 오전 5시 32분. 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손에 꼽힐 역전극이 탄생했다. 제8회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개표 종료를 3% 남긴 상황에서 상대 후보를 처음 역전한 후 그대로 승리를 굳혔다. 정권 재창출 실패에 이어 지방선거 참패를 목전에 두고 있던 민주당은 경기도지사 선거 역전승으로 구사일생했다. 당에 값진 승리를 안겨준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정치적 입지는 올라갔다. 그리고 차기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김 지사와 함께 한 <프레시안> 인터뷰는 역전극을 쓴 날로부터 1년이 된 지난 2일 진행됐다. 그는 "작년 오늘 새벽 5시 32분에 역전했는데, 그 1년 전 일이 어제 같기도 하고 몇 년 전 같기도 하다"고 회상했다.

판자촌의 소년 가장에서 은행원으로, 고위 경제관료로, 그리고 정치인이 되기까지 김 지사의 인생 여정 중 어떤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광역단체장이자 정치인으로서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복잡하다'. 1400만 명의 살림살이가 달린 도정을 착실히 해내야 한다. 정치를 결심한 이유이자 지난 대선에서 한 정치 개혁 약속을 당 내에서 관철해 내야 한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쓴소리 전문가'가 됐다. 사회보장 서비스의 산업화를 언급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박근혜·이명박 정부 때도 이러지 않았다"며 경고했고, 정치 개혁에 뜨뜻미지근한 이재명 당 대표를 향해선 "당의 노력이 실망스럽다", "재창당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여론 환경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동시 선출된 17개 시·도지사 가운데 선거 득표율보다 현 지지율이 높은 유일한 지자체장이다. 그는 "경기도정에 대한 평가가 일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김 지사는 "앞으로 남은 3년간 돈 버는 도지사, 사람 도지사, 기후 도지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약점으로 꼽히는 건 '행정가' 이미지, 즉 관료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이다. 그는 "행정가보다 더 뜨거워진 가슴, 더 열심히 뛰는 발"로 정치인 면모를 부각시키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지난 2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진행된 김 지사와 인터뷰를 두 편에 나눠 전한다. 첫번째 꼭지에 이어, 두 번째 꼭지는 김 지사의 '정치 역정'과 '정치 철학'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는 <프레시안> 허환주 편집국장, 곽재훈 정치팀장이 진행했다.

[☞인터뷰① 바로가기]

▲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2일 경기도청에서 당선 1년 인터뷰를 하고 있다. ⓒ경기도청

"'무학'의 어머니로부터 가장 많은 배움을 얻었다"

프레시안 : 당시 지방선거 출마 선언을 경기 성남시 단대동에서 했는데 그곳에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동연 : 제가 경기도와 처음 인연 맺은 곳이 그곳이다. 제가 살던 청계천 판잣집이 철거되면서 강제 이주당했다. 그때는 성남시가 생기기 전이라 (주소가) 경기도 광주군이었다. 강제 이주된 철거민들이 땅을 조금 받았는데 당시 허허벌판이어서 우리 가족 6식구가 천막을 치고 살았다. 그 판자촌이 지금은 아파트촌이 됐다.

거기서 출마 선언을 하면서 여러 생각들을 했다. (강제 이주 당시) 제가 중학교 때였는데 소년 가장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는 끼니 걱정을 했다. 학교 수업 끝나면 집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을지를 걱정했고 수제비를 많이 먹었다. 그렇게 끼니를 걱정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직장 생활하고 공직 생활하면서 가졌던 초심을 잃지 말자는 뜻으로 그곳에서 출마 선언을 했다.

프레시안 : 상업고등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은행원으로 바로 취업한 것으로 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후 실질적인 가장이었으니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김동연 : 제가 취업할 때까지 어머니가 철인처럼 일을 하셨다. 채석장에서 돌도 나르고 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길거리에서 팔기도 하셨다. 어머니는 서른두 살에 혼자가 되셨다. 저는 17살 때부터 직장 생활을 했는데, 그 후 제가 쓴 글 중에 그 시절에 대해 이렇게 쓴 게 있더라. '남들이 청춘이라고 부르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암흑기였다'고 할 정도로 캄캄한 터널 속에 갇힌 듯한 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였다.

암흑 같은 소년기였지만 어머니 덕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저희 어머니가 무학이다. 무학이었지만 정직하셨고 남을 굉장히 배려하시는 분이었다. (경제부총리) 인사청문회 때 야당 위원이 우리 어머니 명의의 통장 인출이, 어머니 댁 근처가 아닌 우리 집 근처에서 계속되니 차명 계좌가 아니냐고 했다. 그래서 제가 얘기했다. 저희 어머니가 무학이어서 그랬다고. 그때 저희가 어머니와 가까이 살아서, 제 아내가 일주일에 한 번 어머니를 만나 돈도 찾아드리고 목욕도 시켜드리고 했다. 그렇게 말했더니 후에 그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프레시안 : 1982년에 고시에 합격해 지금의 기획재정부에 들어갔다. 흔히 기재부는 엘리트가 가는 곳이라고 하지 않나. 과거 김 지사가 들어갔을 땐 그런 경향이 더욱 심했을 것 같은데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나.

김동연 : 25살부터 공직 생활을 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졌던 제 마음 속의 대표 감정을 꺼내라면 열등감이었다. 저는 은행 다니면서 야간대학에 다녔다. 사실은 야간대학도 바로 못 들어갔다. 처음 들어간 곳은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였다. 시골 가서 농사지으면서 농촌 계몽 활동을 하는 게 제 꿈이었다. 대학 갈 형편이 못 돼서 2년제인 방통대에 처음 들어갔고 그 후에 2~3년 지나 야간대학에 가게 됐다. 이후 고시 공부를 해서 공무원이 된 것이었다. 당시 기재부 명칭이 경제기획원이었는데 자타공인 엘리트들, 좋은 학벌에 좋은 집안이라고 할 만한 분들이 너무 많았다. 상업학교와 야간대학 나온 사람은 저밖에 없었다. 그래서 너무나 열등감에 시달렸다.

차별도 많이 느꼈다. 어느 날 중참 사무관이 나와 고시 동기들을 불러서 학교 어디 나왔느냐고 물어보더라. 대답하고 나가는데 '별 희한한 학교 나온 친구가 시험에 붙어서 여기까지 왔네'라고 다 들리게 말하더라.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기획원 모 부처 내에서) 총괄과와 세 번째 서열 정도 되는 과에 결원이 났다. 그 중 제가 세 번째 과로 가게 됐는데 회식 때 과장이 하는 말이, 총괄과 과장이 자기를 부르더니 '(배속 예정자가)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서울대 경제학과 나왔는데 이제 막 들어왔고, 한 사람은 은행 나와서 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다. 둘 중에 고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눈치가 총괄과 과장이 자기 대학 후배를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나를 골랐다고 하더라. 비참했다.

"참여정부 비전2030 작업, 정치 하게 된 씨앗"

프레시안 : 관료로서 34년을 일했는데 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한 구체적 계기는 무엇인가.

김동연 : 제가 재작년 8월 고향(충청북도 음성)의 작은 읍사무소에서 대선 출마 의향을 밝혔고, 9월 초 공식 선언을 했다. 그 전까지 거대 양당으로부터 무수한 정치 권유를 받았다. 총선 출마, 보궐선거 출마, 대선 경선 참여, 2021년 초에는 문 대통령으로부터 총리 제의도 받았는데 제가 거절했다. 그리고는 정말 무모할 정도로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이대로 가다간, 지금의 정치판으로는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절실했다. 대선 국면에서 나온 거대 정당 후보들의 아젠다들이 전부 상대를 공격하는 네거티브였지, 대한민국이 미래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없었다.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지, 어떤 가치와 철학을 할지, 5년 뒤 대한민국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경제 운영의 틀을 어떻게 해야 한다든지, 외교 비전이 무엇인지 어느 누구도 이야기한 사람이 없었다.

제 첫 번째 목표는 대선 아젠다 세팅을 하자는 것이었다. 나중에 이재명 후보와 연대할 때 합의문 제목이 '정치교체와 국민통합'이었다. 결과가 어쨌든 제가 부딪혀서 깨지더라도 아젠다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하게 됐다.

프레시안 : 경제관료로서 여러 정부에서 거듭 요직에 발탁됐다. 어느 정부와 합이 가장 잘 맞았는가.

김동연 : 제가 대통령을 여섯 분 모셨다. 김영삼 대통령부터 김대중·이명박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모셨다. 노무현 정부 때는 기재부 국장을 하면서 '비전2030'을 만들었고, 박근혜 정부 때는 장관급 국무조정실장을 하면서 2주에 한 번씩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제가 경제부총리를 했으니 여섯 분을 모신 셈이다. 특히 청와대에 세 번 근무한 건 공무원으로서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여섯 분 대통령 가운데 한 분만 꼽으라면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을 꼽는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비전2030 보고서'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보통 기능적, 기술적, 전문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뛰어넘는 게 가치와 철학이다. 같은 정책을 펴더라도 어떤 가치와 철학을 갖느냐에 따라 다른데, 노무현 정부 때 제가 비전2030 작업을 하면서 그런 관료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치와 철학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똑같은 정책을 펴더라도 신자유주의 철학을 갖고 하는 정책과 그렇지 않고 하는 정책은 차이가 있다.

정책은 비유하면 나무다. 사람들은 나무의 모양을 본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나무가 뿌리를 박고 있는 토양이다. 그게 가치와 철학이다. 어떤 나무는 좋은 동산에 뿌리박은 것도 있고, 어떤 나무는 모래밭에 심은 것도 있다. 나무의 외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관료의 기능적 측면이다. 그러나 그 정책의 뿌리 깊은 가치, 철학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간단한 질문으로 알아볼 수 있다. '왜 그걸 하려고 하는가'이다.

예를 들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사회 복지의 시장화, 산업화, 경쟁 체제를 이야기했다. 그러면 그것을 왜 그렇게 하려고 하는지를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최저 임금을 급격하게 2년 동안 30% 정도 올렸다. 제가 당시 청와대에서 '토론하자'고 했다. 이런 것들은 가치와 철학의 문제다. 어떻게 성공할 거냐는 기술적인 문제다. 그런 가치와 철학 면에서 가장 합이 맞았던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비전2030은 25년 뒤 대한민국 미래 비전을 제시했고, 그걸 달성하기 위한 정책 방향과 정책 내용을 제시했고, 그 정책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재원 조달까지 밝힌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한 중장기 전략 보고서다. 그 보고서 작업을 제가 제안했다. 제가 미국 월드뱅크에서 근무하다 당시 장관이 전략기획국을 신설한다고 해서 돌아와서 비전2030을 제안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굉장히 좋아하셨다.

2007년 1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을 하는데 '대한민국이 가는 길은 이러이러한 길이고, 이게 다 있는 보고서가 비전2030이다. 이것만 하면 성공한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으니, 가장 합이 잘 맞는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아니었을까 한다. 또 나중에 정치를 하고 나서 거슬러 생각해 보니, 그때 가치와 철학에 대한 생각이 나중에 정치를 하게 한 씨앗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김동연 지사. ⓒ경기도청

"돈 버는 도지사, 사람 도지사, 기후 도지사 될 것"

프레시안 : 지사직을 수행하면서 성과는 어떤 게 있었나. 남은 3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김동연 : 첫째로 돈을 많이 벌었다. 투자 유치를 많이 했다. 지난번 미국 등 해외 출장을 가서도 4조3000억여 원 투자 유치를 해왔고,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의 투자를 유치해서 공장 기공식을 했고, 현대 모비스 첨단 모빌리티쪽 평택 공장 투자도 협약을 맺었다. 둘 다 제 임기 내 공장이 준공된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이다. '진보는, 민주당은 경제를 잘 모른다'는 의심을 불식시켰다.

둘째는 기후변화 대응이다. 현재 중앙정부는 퇴보하고 있고, 재생에너지 비율을 낮추고 이행하려는 계획도 임기 뒤로 미뤘다. 2030까지 못한다는 얘기다. 경기도가 가장 먼저 RE100 선언을 해 기업, 산업, 공공, 도민 네 방면으로 하고 있다. 공공은 이미 올해 초부터 진행하고 있고 산단은 신재생 에너지를 할 것이고, 기존 산단도 점차 바꿀 것이다. 중앙 정부가 퇴행한 만큼 저희가 더 앞장서겠다 이런 말씀을 드리겠다.

세 번째는 국제 외교다. 어제와 그저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지사를 두 번 만났고, 그동안 저에게 찾아온 대사가 10여 명이 넘는다. '글로벌 외교는 용산이 아니라 광교에서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특히 미국의 차기 유력 대선주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한국에 와서 저만 만나고 갔다. 경기도와 플로리다가 신뢰 관계를 돈독히 쌓아온 것도 있지만 한국 정치에 있어서 저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를 하고 그래서 만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도 공화당 후보 중 한 분인데 미국에서 30분 이상 통화했다.

다들 편하게 속 이야기까지 했고, 특히 디샌티스와는 미국 대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바이든은 (자신의 재선 맞상대로) 트럼프와 디센티스 중 트럼프를 원할 정도로 디샌티스가 경계하는 대상인데, (디샌티스가 경기도를 찾은 것은) 글로벌 리더십 측면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남은 3년 돈 버는 도지사, 사람 도지사, 기후 도지사가 되고 싶다.

프레시안 : 행정가 김동연과 정치인 김동연은 어떤 차이가 있나.

김동연 : 행정가로서는 숫자를 많이 봤고 정치인으로선 숫자가 아닌 사람을 본다고 생각한다. 신영복 선생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발까지의 여행이 우리의 삶'이라며 '가장 먼 것이 머리부터 가슴까지이고, 똑같이 먼 것이 가슴에서 발까지'라고 했다. 이해하지만 느끼는 것과 느끼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것을 숫자와 사람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행정은 '머리' 쪽에 더 가깝다. 그런데 저는 정치하면서 가슴이 더 뜨거워졌다. 행정가보다 더 뜨거워진 가슴, 더 열심히 뛰는 발, 이렇게 된 것이 행정가와 정치가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행정가 김동연과 정치인 김동연은 하나다. 훌륭한 행정가는 다음 정책을 준비하고 훌륭한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 행정가로 민생을 위한 실천을 했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 국가 비전을 만들었다. 결국 동일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행정가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 김 지사는 인터뷰 말미에 자신이 쓴 시를 소개했다. 김 지사의 '흙수저 스토리'는 잘 알려져 있다. '남들이 청춘이라고 부르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암흑기였다'고 말하면서도 '무학'의 어머니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지금은 담담하게 회상하지만, 치열한 내적 고민들이 있었을 것이다. 초엘리트들 틈에서 '열등감'을 느꼈지만, 거꾸로 얘기하면 엘리트들이 흔히 겪지 못한 경험을 한 것은 그의 강점이 될 수 있다. 김 지사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 쓴 시를 독자들과 공유한다.

<지금의 내가 스무 살 초반 나와 우연히 조우(遭遇)한다면>

스무 살 초반 나와/어느 길거리 모퉁이에서/우연히 조우한다면//

그냥 아무 말 않고/잠시 쳐다보기만 할 거야//

'그 사람' 눈치 채지 못하게/눈길이 머무는 정도 쳐다보다/그냥 가던 길로 다시 갈 거야//마음속에 가득 차고 넘칠/안쓰러움, 그냥 속으로 간직하기만 할 거야//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그 사람'의 마음속에/가득한 열등감과 분노와 슬픔을/'그 사람'과 똑같이/느끼기만 할 거야//

아, 정말로 정말로/열정을 다해 살아서 결국 극복하면/지금의 어려움이 오히려/큰 축복으로 바뀌긴 하겠지만//

그래도 너무나 큰 고통과 아픔이/그 젊고 좁은 어깨 위에/사정없이 놓여진 것을/'그 사람'과 똑같이/느끼기만 할 거야//

삼십년 전이 아니라/'그' 만난 그날의/내 일처럼 느끼면서/혼자 돌아서서 내 길 갈 거야//

스무 살 초반 나와/어느 길거리에서/우연히 조우한다면//

아무 말도,/아무 내색도 않고 잠시 눈길을 주다가/돌아서서 남 몰래 울면서/그냥 내 길 갈거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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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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