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정치수도에서 경제수도로 바꾸는 게 정치 소명"… 내년 총선 서구을 도전 의지 밝혀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어느덧 43년이 됐다. 수천명에 달하는 사망자와 행불자, 상이자 등의 희생을 남긴 상흔이 또렷하지만 80년 5월 그날의 진실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진압의 직접 당사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진상규명은 갈수록 더디게 진행 중이다.
5·18민주화운동 43주기를 앞둔 16일 광주에서 사무실을 내고 호남100년살림민심센터를 운영중인 천정배 전 의원(68)을 만났다.
6선의 경륜을 가진 국회의원으로 참여정부 때 법무부장관을 지낸 그는 집요하리 만치 5·18문제에 천착해 왔다.
노태우와 전두환의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시켰는가 하면, 전두환 비자금을 끝까지 추적해 추징하는 이른바 '전두환 비자금 끝장 환수 3법'을 발의한 주역이기도 하다. 5·18민주유공자에 대한 서훈 추진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특히 전두환 손자 전우원의 폭로로 전두환 비자금 문제가 세간의 관심을 끌면서 천 의원과 전두환의 질긴 인연도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천 의원은 전두환과 묘한 인연은 천 의원의 군법무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대 후 검사가 되려고 했었다는 그는 "군 복무 당시 광주 5·18이 일어났고 전두환이 집권하자 검사의 꿈을 접었다"고 했다.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으로부터 검사 임명장을 도저히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검사의 길을 포기하고 민변을 창립하면서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 든 천 의원은 "전두환 때문에 인생의 진로가 바꼈다"고 했다.
검사 대신 인권변호사로, 정치인의 길로 접어든 그는 국회의원이 돼서는 전두환과 관련된 법안을 5건이나 발의했다. 대표적인 게 '전두환 재산 끝장 환수 3법'이다.
전두환 재산 문제를 적극적으로 추적하기 위한 법안으로 전두환이 죽더라도 새로운 범죄수익이 발견될 경우 이를 끝까지 추징함으로써 불법재산이 후손에게까지 상속되는 불의한 일이 없도록 하려는 목적이었다.
나중에는 '신군부 재산몰수 특별법'(5·18민주화운동전후 헌정질서파괴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별도로 내기도 했다.
그런데 죽은 전두환의 손자가 나타나 할아버지의 비자금건을 폭로해 다시 주목을 받으니 이런 묘한 인연도 없다는 것이다.
최근 광주를 찾아 할아버지를 대신에 사과한 전두환 손자 전우원에 대해 천 의원은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손자가 사과했다고 전두환의 죄가 없어지거나 광주시민들이 전두환의 학살 만행을 용서할리는 없다"고 단호히 잘라 말했다.
천 전 의원은 "얼마나 괴롭고 오죽했으면 저럴까 생각하면 짠한 마음이 앞섰다"며 "광주시민들도 다 같이 손을 내밀어 환영하고 위로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면서 "하루 빨리 건강도 마음의 평화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한 전우원씨는 하지만 할아버지인 전두환의 묘지를 찾았다는 소식은 없다. 현재 전두환은 묘지 없이 연희동 자택에 유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두환이 전직 대통령임에도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한 데는 천 의원의 역할이 컸다.
전두환은 국립묘지법에 따라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는 중범죄자였지만, 사면을 받으면서 국립묘지 안장에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사면 받은 자에 대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천 의원은 2017년 6월에 광주민주화운동특별법에 헌정질서파괴범죄, 내란죄 등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은 국립묘지를 가면 안된다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후 2019년 1월에는 국가보훈처에 내란죄 등의 형이 확정된 뒤 사면복권을 받은 자가 국립묘지 안장이 가능한지 국가보훈처에 서면질의를 했고, '전두환 등 헌정질서 파괴범은 사면복권이 되더라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할 만큼 그들의 범죄는 역사적, 법적으로 이미 판명이 난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5‧18에 대한 역사 왜곡과 폄훼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잊을 만하면 보수 인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망언들도 심상치 않다. 이 같은 현상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천 의원은 말했다.
'진상규명-책임자처벌-명예회복-적절한 배보상-기념사업' 을 5월 문제 해결의 5대 원칙이라는 천 의원은 "보상이 앞서고 진상규명이 제일 나중이 되면서 역사 속에서 5월이 제대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원인이 됐다"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당장에라도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고 제안했다. 5·18보상법(5·18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법)부터 5·18배상법으로 바꾸는 일이 그것이다.
보상은 국가의 적법한 행위로 인해 피해를 봤을 때의 절차이기 때문에 국가의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로 피해를 입은 5월은 당연히 보상법이 아니라 배상법으로 바꿔야 하다는 게 천 의원의 주장이다.
이어 "전두환과 같은 반헌법행위자들이 불법적으로 축재한 재산은 당사자가 죽더라고 끝까지 추징해서 환수하는 '반헌법행위자 재산환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두환, 노태우와 같은 국민 학살, 내란 등 헌법을 파괴하고 유린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 기본권을 약탈한 반헌법행위자들에 대해서는 범죄 시효를 두어서는 안 된다"면서 "이미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귀속에관한특별법’모델이 있기 때문에 당장에라도 입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5·18유공자에 대한 서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5·18을 터무니없는 망언으로 왜곡하거나 가스라이팅하는 세력을 광주와 5·18의 정신을 훼손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2차 가해자"라는 그는 "광주항쟁과 정신을 폄하하고 색깔론으로 공격하는 시대착오적인 일들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시급히 상훈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천 의원은 최근 5‧18민주화운동 공로자회로부터 제1회 5·18민주대상을 받았다. 누구보다 80년 5월에 진심이었고,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에 열심이었던 그였지만 선정 소식엔 부끄럼이 앞선다고 했다.
"혼자 한 일도 아니고 광주 지역 등 동료 국회의원들과 힘을 보탠 일"이라는 천 의원은 "5·18은 민주화운동이라는 표현만으로는 그 본질과 정신을 제대로 담을 수 없는 뭔가가 있다"며 "국가의 폭력에 맞서고 자유를 향한 인간의 원초적 항쟁이었기 때문에 민중항쟁이 더 맞다"면서 "앞으로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6선의 국회의원에 장관까지 지냈지만 여전히 그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다. 호남100년살림민심센터 이사장 역도 그 중 하나다.
"광주를 정치수도에서 경제수도로 대전환하는 게 마지막 남은 정치소명"이라는 천 장관은 내년 총선에 광주 서구을에 도전할 생각이다.
아직은 6학년(60대)이고 개혁 의지와 실천력 만큼은 젊은 청춘이라는 천 의원은 "광주와 호남의 경제적 낙후를 극복하는 일을 마지막 소명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는 "산업화나 국가 재정사업의 배분에서 호남이, 광주가 더 이상 홀대 당하거나 소외 당한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면서
"여야 정치권이 필요할 때만 광주를 찾아 '위대한 광주정신', '민주주의의 성지' 등으로 말의 성찬을 늘어 놓지만 정작 산업화나 국가 재정사업의 배분에서 홀대 당하거나 소외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위대한 광주시민이라고 이슬만 먹고 살아라고 가스라이팅하고 있는 것과 같다"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정신 승리만하고 살 수는 없다. 이제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해 지금은 물론 미래 세대 후손들도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와 호남을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끈 정치 수도에서 4차 산업시대의 경제 수도로 탈바꿈시키는 일에 온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올드보이 귀환'이라는 세간의 비판에는 '신구 조화',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중량감 있는 다선 의원들이 적절히 배치돼야 한다"며 "광주에 3선 이상의 의원은 자신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사명감을 가진다"고 했다.
이어 "만약 당선된다면 지역 발전을 위해 광주‧전남의 정치인들과 단체장들을 한 데 모으는 맏형 노릇을 하고 싶다"고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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