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차별과 혐오와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무지개는 뜬다. 그 어떤 차별과 혐오도 우리의 존재를 지울 수는 없다."
대학생들이 서울시의 서울퀴어퍼레이드 서울광장 사용 불허 결정을 "차별적 행정"이라 규탄하며 '미니 퀴어퍼레이드'를 개최했다.
서울대, 한양대, 홍익대 등 10개 대학 20개 단체들은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스타광장에서 '서울퀴퍼 서울광장 사용 불허 규탄 대학가 무지개 행진'을 열고 "서울퀴퍼는 모두의 행사고, 불허해야 할 것은 축제가 아닌 혐오"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3일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는 오는 7월 1일 개최 예정인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축제 예정일이었던 7월 1일 서울광장에선 기독교 단체의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라 '청소년·아동 관련 행사'를 우선했다는 입장이지만, 조직위 측은 서울시가 '퀴퍼를 막기 위해 같은 날 신청서를 낸 혐오세력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반발했다. (관련기사 ☞ 기독교 행사는 '공익'? 퀴어퍼레이드 '불허'한 서울시, 콘서트는 '허가')
특히 조직위는 당시 "서울시 총무과는 조직위에 전화를 통해 중복신고 단위들 간 조정 절차 없이 바로 광장운영위에 안건을 상정하겠다고 통보했다"라며 "이는 조례에 어긋나는 방침"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날 신촌에 모인 대학생들은 해당 상황을 두고 "서울퀴퍼에는 광장 사용을 불허하면서, 성소수자 혐오를 기조로 한 행사에 광장사용 권한을 준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며 "(서울시의 결정은) 서울퀴퍼를 기다려온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을 배제하는 결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특히 기독교단체의 청소년·청년 회복콘서트가 애초 '서울퀴어퍼레이드의 개최를 막기 위해 기획된 행사'라는 의혹을 들어 서울시의 이번 결정이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음란한 동성애 축제'로 표현하며 '청소년, 청년들의 회복을 위한 콘서트 자리'와의 대립항에 위치시키는 혐오세력의 전략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내려진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는 동성애 반대 시위 등을 주도하는 소위 기독교계 '혐오세력'들이 서울퀴어퍼레이드와 관련한 "행정 절차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번 행사 중복신청 및 서울시 측 최종결정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직위 측의 서울광장 사용 신고가 있던 지난 4월 3일부터 종교계를 중심으로 퀴어문화축제 개최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날 사전 기획을 통해 모인 주최단체 회원들은 40여 명이었지만, 행진 소식을 들은 수많은 대학생들이 현장에 모여들면서 신촌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들은 "서울시는 각성하라", "우리가 청년이다", "무지개는 이어진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나눠 들고 신촌 스타광장에서부터 연세대 정문 인근까지 멀지 않은 거리를 행진했다.
해당 행사를 총괄 기획한 권소원 서울대학교 학생·소수자 인권위원회 대표는 <프레시안>과의 현장 인터뷰에서 "서울시의 퀴퍼 서울광장 불허 소식을 듣고 절망하고 낙담하는 친구들이 많았다"라며 "이대로 가만히 있기보단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각 대학교 단체들에 신촌 행진을 제안했다"고 행사의 기획 취지를 밝혔다.
갑작스러운 기획이었지만, 권 대표의 제안에 여러 대학 학생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각 학교의 성소수자 당사자 단체, 혹은 '얼라이'를 표명한 학생들이 몰려들면서 10개 대학의 20개 단위가 순식간에 '대학가 무지개 행진 기획단'을 구성했다.
권 대표는 "아무래도 '퀴퍼'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당사자들이 대학에도 굉장히 많기 때문에 이렇게 뜨겁게 반응해준 것이 아닌가 싶다"라며 "사전 기획을 통해 현장에 온 인원은 40명이었는데, 예상보다도 많은 대학생 분들이 현장을 찾아주셨다. 최근 소식을 듣고 '우리는 또 배제된 건가' 느낀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엔 대학 내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모여 퀴어퍼레이드가 지니는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Queer IN SNU'(큐이즈) 활동가 A 씨는 "퀴어문화축제는 자긍심을 개방적인 공간에서 되새길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소중한 날"이라며 "(퀴퍼가 불허된) 광장은, 이 도시는, 이 국가는 대체 모두를 위한 것이 맞는가" 물었다.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성소수자동아리 '하이퀴어 에리카(HYQE)'의 B 씨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진행된 지난 수년간 우리는 인근의 지하철역에서, 광장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광장을 둘러싼 곳곳에서 ‘천벌’과 ‘지옥’과 같은 원색적 비난과 협박을 마주해야 했다"라며 "서울시는 자신들이 수리한 행사가 '시민의 신체와 생명에 침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며, '집단적인 폭행과 협박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가?" 되물었다.
지난 2018년 진행된 인천 퀴어퍼레이드에선 퀴어퍼레이드에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 단체 회원들이 현장을 찾은 퍼레이드 참가자들을 폭행하는 등 물리적인 폭력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서울시의 서울광장 사용 조례 5조는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지난 이력을 살펴볼 시 '퀴퍼'에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행사가 이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B 씨의 지적이다.
B 씨는 조례 6조에 따라 '청소년 관련 행사를 우선했다'라는 서울시의 입장에 대해서도 "성소수자를 몰아내고 개최하는 해당 행사에 성소수자 청소년과 청년의 자리는 존재할 수 없다"라며 "성소수자 청소년과 청년의 높은 정신과 질환 유병률과 자살률은 감히 청소년과 청년의 회복을 참칭하는 세력들의 차별과 혐오, 탄압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서울시는 이들의 행사를 과연 해당 조항에 부합하는 청소년 관련 행사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가?" 꼬집기도 했다.
권 대표는 오는 17일 예정된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아이다호(IDAHOBIT) 대행진을 통해 대학가 무지개 행진 활동을 지속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가 무지개 행진 기획단은 '서울퀴어문화축제'를 기획하는 축제조직위원회와는 다른 단체로 이날 행사를 위해 급하게 구성된 조직이지만, 학새들 사이에선 "대학생들끼리의 네트워크라도 구성해보자"라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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