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보다 아들'을 우선으로 제사 주재자 지위를 정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한 고인의 유골함 소유권 등을 둘러싸고 벌어진 유해인도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인 고인의 두 딸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해당 소송은 고인의 본처 A 씨와 두 딸이 고인의 내연녀인 B 씨와 고인이 안장된 추모공원을 운영하는 C 재단을 상대로 제기했다.
고인은 A 씨(본처)와의 결혼생활 중 B 씨(내연)를 만나 아들인 D 씨(혼외자)를 얻었는데, 지난 2017년 고인이 사망하자 B 씨는 본처 측과 상의하지 않고 고인을 화장, C 재단 추모공원에 봉안했다. 이에 A 씨와 두 딸은 '추모할 권리를 되찾고 싶다'며 유해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A 씨 측 요구는 고인과 B 씨 사이에 태어난 아들 D 씨의 존재로 난항을 겪었다. 고인의 유해는 민법상 제사용 재산으로 규정되고, 제사용 재산의 소유는 제사 주재자에게 돌아간다.
A 씨 측은 "혼외자인 아들 대신 장녀가 제사 주재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1·2심 재판부는 모두 B 씨의 손을 들어줬다. "제사주재자의 지위는 아들에게 우선된다는 전통"이 이유였다.
1심 재판부는 "장남 내지 장손자가 제사 주재자가 되고 아들이 없으면 딸이 제사 주재자가 된다는 점에 관한 인식이 널리 용인"되고 있다며 "이 같은 인식이나 전통이 전체 법질서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날 대법원은 "헌법상 전통적 사실이나 관념에 기인하는 차별, 즉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은 허용되지 않는다"라며 남성중심적인 제사 주재 관습이 이른바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평등의 원칙이란 '같은 것을 다르게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행정법상 차별방지의 원칙이다. 지난 2월엔 서울고등법원이 해당 원칙을 적용해 동성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제사 주재자는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정하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 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 주재자로 우선한다"고 판결했다.
"현대 사회의 제사에서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의 가계 계승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했고, 대법원 또한 "이미 전통·관습과 관련된 종중(宗中)제도에서 남녀평등에 반하는 부분의 효력을 부정하는 취지로 판결해"왔으니 "남성 상속인이 여성 상속인에 비해 제사 주재자로 더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이날 대법원의 입장이다.
대법원은 지난 2008년의 경우 제사 주재자 지위를 정함에 있어 "적자와 서자를 불문하고 장남 혹은 장손자가" 우선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날 대법원은 과거의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남녀평등 이념과의 조화를 지향해온 대법원 판결 흐름에 비춰보면, 적장자 중심의 종법 사상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2008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고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남성중심적 관습'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던 대법원의 판례가 민간의 의식 변화, 사법부의 평등 원칙 등에 의해 15년 만에 뒤바뀐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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