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협(신용협동조합)에서 발생한 '면접 성희롱'으로 채용 성차별 문제가 재점화된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는 채용 면접 시 성차별 사례에 대한 집중 인권상담 및 진정 접수에 나섰다.
19일 인권위는 채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성폭력을 가리켜 "피해자에게는 심각한 인격적 모멸감과 좌절감을 줄 뿐 아니라 평등한 노동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인권 문제"라며 당일부터 "2023년 상반기 동안 채용 면접 시 성차별 사례에 대한 집중 인권상담 및 진정 접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특히 채용 과정에서 면접관이 "직무 및 업무 수행 능력과 무관한 성차별적 또는 성희롱적 발언을 하는 관행"이 여전히 다수 기업에 남아있음을 지적하며 "이를 심각한 고용상 성차별이자 인권침해로 보고, 관련 상담이나 진정 접수 시 피해 내용을 적극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11일엔 전북 전주의 한 신협에서 채용면접 당시 발생한 면접 성희롱 사건이 인권위 발표로 알려졌다.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해 해당 신협 최종 면접 과정에 참여한 한 여성 지원자는 면접관들로부터 외모품평 발언을 듣고 춤과 노래를 지시 받았다.
당시 4인의 남성으로 구성된 면접관들은 지원자 A씨에게 "○○과라서 예쁘네", "(지원자의) 키가 몇인지"라는 등 외모를 평가하는 발언을 건넸다. 이어 이들은 지원자에게 "○○과면 끼 좀 있겠네"라며 "춤 좀 춰봐"라고 지시했다. 면접관이 담당직원에게 "요즘 유행하는 노래들 있잖아, (춤 추게) 틀어봐"라고 하자 해당 직원은 지원자에게 '제로투' 노래를 아는지 묻기도 했다.
당시 지원자는 해당 노래의 안무에 선정적인 동작이 포함돼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에 "모르는 노래", "입사 후 회식 자리에서 보여드리겠다"라며 우회적으로 거절했다. 그러나 면접관들은 "그때 말고 지금 춰야지", "홍보할 때 150명 앞에 서 봤다면서 4명 앞에서 춤을 못 추냐"는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아울러 신협 측은 면접 당시 A씨의 사진을 사전동의 없이 촬영하기도 했다.
A씨로부터 진정을 접수받은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29일 해당 기관 이사장과 중앙회장에게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과 △해당 사례를 공유하고 채용 관련 지침이나 매뉴얼을 제공하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여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고평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7조에선 기업이 지원자에게 '직무의 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미혼조건 등을 제시하거나 요구하여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A씨가 해당 사건을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성희롱으로 신고하면서 당시 면접관 등 담당자 일부는 견책 등의 징계를 받았다.
인권위는 그간 신협 사건과 유사한 면접 시 성차별·성희롱 사례가 꾸준히 인권위 측에 꾸준히 접수되어 왔다고 이날 밝혔다. 인권위가 공개한 기존 유사 결정 사례를 보면, 공기업·국가기관을 포함한 다양한 사업장에서 구직자에 대한 면접시 성차별·성희롱이 발생했다.
한 공기업의 채용 면접에선 "여성들이 직장에서 가정일 때문에 업무를 못하는데, 결혼하여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등이 질문으로 나왔다. 국가기관 공무직 채용 면접관들은 여성 지원자에게 결혼여부와 함께 "결혼과 임신, 출산이 국가적인 문제인 가운데 일과 양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센터 강사 면접에 참여한 한 지원자는 "남자친구는 몇 명 사귀었냐? 남자 친구와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냐?"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면접 질문으로 듣기도 했다.
지난 2021년엔 동아제약의 2020년 채용면접 과정에서 면접관들이 여성 지원자에게 "여자는 군대에 안갔으니까 남자보다 월급을 덜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군대에 갈 생각이 있나"라는 등의 성차별적 질문을 한 사실이 알려져 채용 성차별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동아제약 채용 성차별 사건이 발생한 2020년 당시 취업 포털사이트 '사람인'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구직자 17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여성 응답자의 30.4%가 면접에서 결혼·출산·자녀·연애 관계에 대한 질문 등 '성별을 의식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남성 응답자(9.6%)보다 3배 높은 수치였다.
그간 여성계 등은 면접 등 채용 과정에서의 성차별이 제도적인 허점으로 인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채용절차법(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4조는 사업주가 지원자에게 용모·키·체중 등 신체적 조건, 출신 지역·혼인 여부·재산 등의 정보를 요구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는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등 기초심사자료 상에 한정돼 면접 시의 성차별적 질문을 포괄하지 못한다.
고평법 제7조 등 고평법상 '남녀의 평등한 기회보장 및 대우'와 관련해서도, 현장에선 '채용 조건상의 성차별'이란 협소한 해석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 면접 시의 성차별이 실제 처벌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동아제약 사건의 피해 당사자는 지난 2021년 자신의 피해 사례를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지만, 당시 노동부는 '면접관의 성차별적 발언과 지원자의 탈락 사이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려워 이를 법률상의 채용성차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19일부터 면접 성차별 집중 인권상담 기간에 돌입한 인권위는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상담 및 구제에 더해 "관련 제도의 미비점을 검토하여 제도개선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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