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월화수목금 매일 출근해 5시간씩 일해서 받는 돈은 55만 원 남짓이다.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고 벌레가 나오는 7평 남짓한 자취방의 월세는 25만 원이다. 각종 공과금에 통신비, 교통비, 식비까지 내면 저축은 생각할 수도 없다. 집에 쌀이 떨어지지 않는 것만도 다행스럽다. 왜? 나는 최저임금을 받아 먹고사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니까. 그것도 감히 공부까지 하겠다는."(빵집 노동자 이가연)
사례 2
"나의 일터는 존중의 경험이 자라나기에는 척박했고, 동시에 불안하고 위태로웠다. 나는 항상 근로 기간이 정해진 계약서를 썼는데, 처음에는 1년, 혹은 6개월이던 것이 2~3개월 혹은 프로젝트 단위로도 나뉘었다. 일은 점점 더 잘게 쪼개졌고, 우리에게 '사장님'이 될 것을 권했다." (에어컨 설치 노동자 이광호)
사례 3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내가 비정규직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일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대신 '파트'로 불렸기 때문이다. 파트와 정규직들은 한곳에 섞여 일을 했다. 우리와 함께 일하는 정규직들은 기능직 공무원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정규직들이 퇴직한 자리는 하나둘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정규직은 일부만 남고, 우편 분류는 모두 비정규직이 맡게 되었다."(우편 노동자 김진숙)
사례 4
"'저 고객이 나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어요'라고 해도 고객이 컴플레인 한번 걸면 재계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라는 질문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일을 접고 나간다. 이런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로 '어린', '학력미달', '가난' 등의 키워드로 표현되는 사람들이다."(주차도우미 노동자 황금별)
학비 보태려 시작한 아르바이트에 발이 묶인 사람, 구인광고에 속은 사람, 경력 단절로 번번이 퇴짜 맞은 사람, 정규직이다가 밀려난 사람, 노동조합 하다 찍힌 사람, 지긋한 나이에도 식솔들 건사해야 하는 사람…. 연령·성별·업종이 다르고 살아온 경로가 제각각이어도 뭉뚱그려 '비정규직'이다.
2172만 명 중 815만 명. 전체 임금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37.5%다(2022년 8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셋 중 한 명이 기간제, 간접고용, 특수고용, 하청, 외주용역, 프리렌서 등으로 분류돼 일한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숨어있는 비정규직'을 포함하면 900만 명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 348만 원, 비정규직 188만1000원이다. 160만 원 차이가 난다. '비정규직 제로' 정부도, '노동개혁' 정부도 가파른 비정규직 증가세와 매년 갱신해 가는 역대 최대 임금 격차를 멈추지 못했다. '비정규직 1000만 시대'가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다.
눈만 뜨면 일하는데도 잔업, 특근, 야간수당까지 깡그리 챙겨야 최저임금을 넘어설 수 있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회사는 "우린 경력을 제공해줬다"며 임금을 떼먹기도 한다. 고용노동부? 법률구조공단? 누구는 가서 핀잔만 들었단다.
하루종일 서서 움직이는 사람은 물론이고 앉아 일하는 사람도 밥 먹고 소변 볼 때조차 눈칫밥을 예사로 먹는다. 그러니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산다. 팔, 다리, 허리, 목…. 뼈와 근육이 움직이는 모든 부위다. 물마시고 소변을 참으면 방광염이, 안 마시면 요로결석이 찾아온다. 병원은 돈 아까워 안 가고 갈 시간이 없어 못 간다.
이런 '일복 터진' 사람들, 도처에 널렸다. 교무실에, 대학원에, 종합병원에, 우체국에, 비행기에, 잡지사에, 주민센터에, 도서관에…. 맨홀 아래서도 누군가 일하는 중이고,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회사에도 일복이 넘쳐난다. 오늘일지 내일일지 모를 계약이 끝나면 다른 일자리를 찾아 생계를 꾸려가는 '평범한' 노동자들이다.
흔하고 평범해서 '투명한' 비정규직 노동자 44명이 자신의 삶과 일 이야기를 풀어냈다. <일복 같은 소리>(한국비정규노동센터. 동녘). 역경을 이겨낸 찬란한 인간 승리의 기록도, 세상을 바꾸려는 노동 투사들의 비장한 외침도 아니다. 나이거나, 내 가족이거나, 내 친구인 '투명인간'들이 어지간하면 꺼릴법한 자신들의 일상을 소신껏 세상에 고했다.
저마다 일터에서 겪은 크고 작은 사건부터 가슴에 꾹꾹 눌러놓은 감정의 부침을 투박하게 기록했다. 누구든 겪을 수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꾸밈없이 담아 공감의 문을 더 크게 연다. 조돈문 비정규노동센터 대표는 "노동조합 밖의 미조직 비정규직은 어디 하소연할 곳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 글쓰기로 '드러냄'을 독려했다고 한다.
그렇게 10여 년 동안 모인 글들 가운데 책으로 엮인 44명의 기록은 자신의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눈으로, 입으로 쏟아내는 멸시를 고발한다. 한결같이 말한다. 관리자들은 물론이고 정규직들조차 같은 일을 해도 반토막 임금을 받고 휴게시간도 챙길 수 없는 자신들에게 '무례하게', 간혹 '교양있게' 일상적 차별로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고.
어떤 이는 "서러움은 체념이 된다"고 자조하며 혼자 속으로 삭인다. 어떤 이는 같은 처지의 동료들과 푸념하다 항의도 해본다. 집으로 돌아와 고단한 몸을 누이고 저마다 작은 희망을 꿈꾸다가도 자명종이 울리면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시작된다. 울타리 없는 이들에게 노조가 생길지 모른다는 소식은 말만 들어도 설렌다.
세상은 비정규직이 된 건 그 사람 선택이라며, 능력 없는 탓이라며 구조적 문제를 개인화한다. 그러나 불평등으로 시작해 더 벌어진 불평등에 몸과 마음을 갈아 넣으며 우리가 생활하는 거의 모든 곳에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겪는 상처와 아픔에는 연민조차 무례하게 느껴진다.
바라는 건 별 게 아니다. "정규노동의 언저리"로 살다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의 패배자"가 아닌, "사람 취급" 받으며 "조롱받지 않을 권리"를 얻고 싶다는 것 뿐.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지만, 일하는 시간 동안 내가 '최저'의 사람이 되지 않는 사회를 진심으로 원한다."(편의점 노동자 신민주)
지난 1일 노동절에 분신한 15년차 철근 노동자가 끝내 사망했다. 곡기를 끊고 굴뚝에 오르거나, 자기 몸에 불을 지르거나, 목숨을 내놓아야 관심을 잠깐 끌 뿐, 정작 먹고사는 방식에는 도통 무관심과 냉대다.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한 것뿐인데"라고 토로한 고인의 유서에선 책에 담긴 어느 식당 노동자의 상흔이 겹친다. "몸도 힘들지만 마음에 시퍼런 멍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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