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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9시간 확대 논란과 '게으를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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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9시간 확대 논란과 '게으를 권리'

[프레시안 books] <게으를 권리> (차영준 옮김, 필맥)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의 양은 제품 소비와 원자재 공급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제한된다. 상황이 이러한데 어찌하여 1년 치의 일을 6개월 만에 미친 듯이 해야하는가. 6개월 동안 하루에 12시간이나 일하는 대신에 1년 내내 노동량을 골고루 분산시켜 모든 노동자가 하루 대여섯 시간만 일하게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1883년 마르크스주의자였던 폴 라파르그가 쓴 '게으를 권리'의 한 대목이다. 최근 정부가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주 69시간 확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는 가운데, 100년도 더 된 그의 글이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한국에서는 '마르크스의 사위'로 잘 알려진 폴 라파르그(1842~1911)는 의사로 일하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신문 편집인으로 <레갈리테>에 '게으를 권리'를 발표했다. 이후 프랑스 노동자당을 지도하며 여러 차례 투옥됐다. 릴 지역에서 하원의원으로 선출됐지만 부르주아 정부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던 그는 69세의 나이에 아내와 동반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폴 라파그가 '게으를 권리'를 집필할 1880년대 프랑스의 노동 환경은 그야말로 가혹했다. 당시 프랑스 노동자들은 쉬는 시간이나 휴가도 거의 없이 하루에 12시간에서 16시간, 일주일에 6일을 일했다. 여성과 어린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1884년 아동의 노동을 금지하는 법안이 채택됐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고, 1910년대에 들어서야 14세 미만 아동 노동 금지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다.

'게으를 권리'와 2023년 한국사회의 '워라밸'

폴 라파르그는 당시 프랑스의 노동 환경을 비판하며, 노동자들이 보다 만족스럽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여가 시간을 요구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그 권리를 '게으를 권리'라고 불렀다. 현대 사회에도 이와 비슷한 요구가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여유'를 달라는 요구로 일명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이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프롤레타리아는 자신들의 자연적 본능으로 돌아가 부르주아 혁명의 형이상학적 법률가들이 지어낸 무기력한 '인간의 권리'보다 천 배는 더 고귀하고 성스러운 '게으를 권리'를 선언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는 하루에 3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가와 오락을 즐기는 삶에 익숙해져야 한다."

폴 라파르그는 당대 '인간의 권리'라고 보장된 수준에 개탄한다. 그는 '인권'을 보장하자는 프랑스가 오히려 노동자의 더 많은 노동을 강제하는 기만적인 상황을 비판했다.

"감옥의 죄수는 10시간만 일하고 서인도제도의 노예도 9시간만 일하는데 '인권'을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댄 1789년 혁명 이후의 프랑스에는 '근무시간이 16시간이고, 그 중 1시간 30분만 식사시간으로 허용되는 공장들이 있다는 것'이다."

폴 라파르그는 근면함과 성실성에 대한 이상은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가 아니라,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계급이 자신의 특권을 지키고 타인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역사적, 문화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위험한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는 반면, 지배계급은 여가를 즐기며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노동개혁 추진 점검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잉생산이나 불순품 제조라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시장을 점거하고 일을 달라고 간청한다. 그들은 수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스스로 노동에 대한 욕구를 억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노동에 대한 발작에 가까운 열정을 보인다. 일할 기회만 생기면 우르르 몰려가서 12시간이고 14시간이고 노동에 대한 욕구를 게걸스럽게 채운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이런 나쁜 습관의 대가로 먹을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챙기지도 못한 채 길거리로 내쫓긴다. 계절이 규칙적으로 찾아오듯이 모든 공장에서 해마다 대규모 해고사태가 벌어진다. 건강을 해치는 과로의 기간이 지나면 2개월이나 4개월가량 순전히 쉬기만 하는 기간이 뒤따른다."

폴 라파르그는 노동자가 착취당하는 시스템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가 여가 시간 권리를 요구하고 노동이 미덕이라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게으를 권리'가 인간을 장시간 노동에서 해방하는 출발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도덕가와 경제학자들은 현대판 노예제인 임금노동을 예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자본주의 노예제는 누구에게 여가를 주는가... 자본주의적 착취를 당할 권리에 불과한 '인간의 권리'나 비참해질 권리에 불과한 '일할 권리'를 요구하기보다는 누구에게도 1일 3시간 이상의 노동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라고 결단을 내린다면 지구는 자기 안에서 새로운 우주가 생겨나는 개벽의 기쁨으로 몸을 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윤리에 물든 프롤레타리아에게 이렇듯 당당한 결단을 내리라는 요구를 어떻게 해야할까."

'워라밸' 요구에도 장시간 노동을 허락하며 '일할 권리'를 쥐어주는 정부

폴 라파르그의 기우와 달리 한국의 청년세대에게서는 '워라밸'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1일 3시간 이상의 노동을 금지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삶과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여유'를 달라는 분명한 요구다. 하지만 정부는 노골적이게도 노동자들에게 '워라밸'대신 '일할 권리'를 쥐어주겠다고 권유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6일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연장근로 단위를 노사 합의를 통해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즉, 노사간의 '자율적인 합의'를 통해 현재 연장노동시간을 포함해 주 최대 52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는 노동시간을 주 최대 69시간까지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현행 1주 연장노동시간은 12시간이지만, 이를 월 단위로 확대하면 1주에 가능한 연장노동시간(12시간)에 평균 주수인 4.345주를 곱해 월 '52시간'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하는 단서조항을 적용하고 의무 휴게시간등을 제외하면 최대 69시간을 일할 수 있게 된다.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의 골자를 설계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좌장인 권순원 교수도 지난해 근로시간 개편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하며 "연장근로 허용 한도를 포함하면 (1주) 69시간까지 가능한 것은 맞다"며 "사용자가 근로자들에게 연장근로조차 강요하거나 하는 사례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폴 라파르그가 게으를 권리에서 인용한 빌레르메의 <면직물, 모직물, 견직물 공장 노동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상태>(1840)의 한 대목을 보면, "최소 15시간의 노동이라는 고통스러운 일과를 마친 그 가련한 사람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기까지 먼 길을 다시 걸어가야 한다. 마침내 집에 도착하면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아침이 밝으면 피로가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 출근시간에 늦지 않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당시 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묘사하고 있다.

▲주 69시간제가 도입된 중소기업의 현실을 풍자한 유튜브 영상 ⓒ너덜트 채널 갈무리

이는 주 69시간제가 정착한 한국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마침 온라인 상에서 큰 화제를 모은 한국 유튜브 채널 '너덜트'의 올라온 '야근, 야근, 야근, 야근, 야근, 병원, 기절'이라는 영상(관련영상 :야근, 야근, 야근, 야근, 야근, 병원, 기절)이 묘사한 상황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인 1840년대의 프랑스 노동 환경이 떠오르게끔 한다.

연평균 노동시간이 한국과 비슷한 칠레에서는 노동시간을 현행 주 4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는 법안이 지난 11일 의회에서 통과됐다. 영국과 스페인은 주 4일 근무 시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근무시간 축소는 세계적인 추세다.

세계 각국과 기업들이 노동 시간 단축에 앞다퉈 나서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는 왜 '주 69시간 확대'를 논할까. 노동자를 더 착취하기 위해서일까. 1880년대도 아니고 2020년대에 정부가 그런 노골적인 악의를 가질리 없다고 믿고 싶다. 혹시, 정부의 고위 관리자들께서 '일할 권리'가 고귀하다고 믿기 때문에 이 정책을 추진한다면, 폴 라파르그 <게으를 권리>의 일독을 권한다.

▲<게으를 권리>(폴 라파르그 지음, 차영준 옮김, 2009) ⓒ필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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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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