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제주휘파람새
교오오오옥 쿄오오옥
보리가 이삭을 팰 때면
집 주변 돌담과 동백나무 가지 사이를 떠돌며 우는 제주휘파람새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울어댄다.
가련한 막내삼촌의 절규인양
친일과 분단 고착화에 광분하는 윤 정권의 계유년 올해 더욱 처연하다.
교오오오옥 쿄오오옥
저 새가 울 때면
어머니 저 왔어요
와락 안길 것 같다는 할머님의 미련도
십 수 년 세월의 풍상은 기어이 덮고 말았다.
알 수 없는 제삿날은 생일날이 대신 자리를 잡으며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왔구나
조용히 눈물지으며
솥 강알의 무심한 부지깽이만 이리저리 휘둘린다.
메 한 그릇에 갱 한 그릇, 떡 한 조각 올려진 소반을 보며
영문도 모른 손자 녀석은 군침만 흘렸다.
그 손자 나이 들며 사연을 알고 나니 떡이 떡 맛이 아니다.
교오오오옥 쿄오오옥
4.3과 6.25 광란의 시절 제주휘파람새는 우짖는다.
내 나이 열여덟에 무슨 대단한 사상을 지녔다고
제주농업학교 마치고 대학시험 보고 오는 사람을 잡아가나?
총 한 번 쏜 적 없고 삐라 한 장 뿌린 적 없는데
키 크고 잘 생긴 외모에 공부를 잘 한다고
학생회 간부를 맡은 것뿐인데
서북풍에 실려 오는 이야기는 대전형무소에 갇혔더라 하고
마파람에 실려 오는 이야기는 인천형무소에 갇혔더라 하고
샛바람이 불 때는 서울거리를 활보하고 있더라 하지만
다 바람이 전하는 환청일 뿐
6.25 때 후퇴하는 군인과 경찰들의
총에 맞아 죽었는지
돌매달리고 바다에 던져졌는지
뼈 한 조각 찾을 길이 없다.
막내삼촌 이야기의 편린들만 깨진 화석 조각으로 나뒹굴고 있다.
그 조각들 찾아 진실의 퍼즐이라도 맞춰드리고 싶지만
제대로 맞출 수가 없다.
무심히 떠가는 구름이 말해 주리오.
방향도 없이 불어와 흩어지는
바람결이 전해 주리오.
그 광란의 세월을
우리 가족 모두 ‘쉬쉬’ 했다
취직하거나 외국 나가는 것도 자유롭지 않았던 수많은 시절이
쥐와 새들의 감시의 눈길을 넘어
제주4.3평화공원 돌조각에 이름 석 자로 남겨져 있을 뿐이다.
이제 비록 침묵의 강은 건넜을지라도
반역의 한을 안고 구천을 떠돌고 있을 영혼들
사건인지 봉기인지 항쟁인지 혁명인지
평가는 뒤로 한 채
반쪽짜리 백비는 ‘4.3’이라는 이름으로 제주4.3평화공원에 누워있다
그 백비 일어나는 날
구천을 떠돌고 있을 4.3의 영혼들과 우리 막내삼촌도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며 영면의 길을 떠나시리라.
*강알: 밑(아래)라는 제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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