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 어느 날 늘 상 그랬던 것처럼 일과를 마치고 Youtube에 올라온 동영상들의 제목을 추려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눈길을 끄는 제목이 있었다. "[최초공개] 전두환 손자 전우원, 뉴욕 자택서 KBS 인터뷰_사람들 피 위에 세워진 집안. 폭로 끝나면 한국가서 자수_[리얼라이브]" 바로 전날 전순신 변호사의 아들의 학폭에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보았기에 뭐지? 설마? 하는 심정에서 시청하였다.
갑작스럽게 잡힌 인터뷰이기 때문인지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자의 준비성 없는 질문에도 자신의 심정을 진솔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죄인의 입장에서 비장하게 이야기하는 전우원씨를 보면서 나의 눈을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양을 탈을 쓰고 있는 늑대들의 한 무리이며 국민에게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니?
맞다, 전두환씨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총을 쏘고 무자비한 진압을 최종적으로 명령한 장본인이며 이를 바탕으로 권력을 쟁취하고 독재자가 되어 민주화 요구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자신의 권력으로 온갖 부정축재를 하다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천수를 누리면서 편안히 눈을 감은 사람이다. 이 전두환 씨는 '한국 민주주의의 공공의 적'이며 국민에게 큰 죄를 지은 사람이 분명하다. 그런데 전우원는 전두환 본인도 아니고 아들도 아니고 손자가 아닌가? 그런데 왜, 자신을 죄인으로 스스로 부르는가? 누구의 손자로 태어남이 자신의 의지도 아니고 선택도 아닌데….
이 동영상을 보고 이런 궁금증이 더욱 불길처럼 일어나서 Youtube에서 전우원씨 관련 동영상을 찾아 거의 모든 것을 보았다. 그중 어떤 것은 전우원씨가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있었지만, 이것조차 담고 있는 메시지는 같았다. 민주화 요구를 군홧발로 짓밟고 권력을 쟁취하여 이를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고, 이를 누리며 이에 혜택을 받아 자신의 아버지, 삼촌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자손들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잘못된 것이며 그것이 큰 죄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그 죄에 대해서 세상에 폭로하여야 하며 반드시 광주에 가서 사과하고 용서를 빌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꼭 용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으로서 그리고 부정축재의 떡고물을 받은 사람으로서 죄의 진실을 알리고 사과를 하는 것이 최소한의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영상물들을 보고 나는 전우원씨가 혹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잘못된 길을 가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의 폭로에는 진정성뿐만 아니라 비장함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꼭 일주일이 지나고 그는 한국에 왔다. 그리고 자신이 Youtube에서 밝힌 대로 마약 복용 혐의로 공항에서 연행되어 36시간 수사를 받고 풀려난 후 곧장 광주로 갔다. 그는 광주 땅을 밟자마자 여러 차례 90도로 허리를 숙여 사죄의 인사를 하고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렇게 늦게 오게 되어서 정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상처받으신 모든 분께 그분들의 억울한 마음을 최대한 풀어드리고 싶습니다."
이후 그의 행보는 그가 Youtube를 통해 다짐한 바와 같다. 전두환씨 일가족의 일원으로서 처음으로 광주민주화 유가족에게 엎드려 사과하고 망월동 5.18 민주묘지를 방문하여 무릎 꿇고 눈물로 용서를 빌고 묘지 비석들을 일일이 자신이 가장 아낀다는 외투로 닦아주며 영령들께 사과하고 위로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준 광주시민들께 감사드리고 자신의 사죄가 일회성이 아니고 광주시민들께서 받아주실 때까지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전우원씨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길 수가 있었을까? 우원씨는 분명 '금수저'이다. 그냥 금수저도 아니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무자비한 폭력으로 폭압으로 누르고 부정축재로 추징금만 1000억대가 넘는 독재의 화신과 같은 인물의 손자이다. 자신의 바탕이 어떤지 상관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떡고물만 먹고 살면 금수저 행세하며 부러움도 받으면서 소위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금수저'로 살기를 포기하였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가 내보낸 동영상을 통해 이런 추론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런 삶은 양심이 있는 한 괴로움 아니 괴로움을 떠난 참을 수 없는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처지에서 몇 해 전부터 학생들을 볼 면목이 없다. 한국이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더욱 빡빡해지는 사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바로 이 시대 청년들의 현실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가꾸어 꿈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기회조차 빼앗고,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되고 군부독재를 통해 더욱 짙어진 적폐도 아무것도 청산하지 못하였으며, 졸부의 대명사와 같은 '대박'이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감탄사와 대명사로 자리 잡은 천박한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만을 유일한 유산으로 남겨주게 된 부모 세대기 때문이다. 우원씨의 사죄는 바로 이런 유산으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약 10일 동안 우원씨를 간접적으로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반성의 계기가 되었으며, 희망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심성, 즉 양심(良心)을 갖고 태어났으며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기 때문에 그 양심을 바탕으로 인간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생각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의롭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기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겸손하여 남에게 양보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갖는다 - 우원씨 가족들은 5.18에 대해서 완전히 왜곡된 정보로 우원씨를 교육하고 세뇌하였지만 5.18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우원씨는 자신의 양심을 따라 광주에 가서 죄인으로서 사죄를 빌었다.
인간은 사랑(愛)으로 구원받는다 - 혹자는 우원씨를 자신의 가족에게 먹칠 또는 X칠을 하는 배신자로도 이야기하겠지만 우원씨는 자신의 동영상에서도 밝혔지만, 자신의 가족을 사랑한다고 하였다. 사랑하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떡고물(물질)에만 만족한다면 과연 그런 폭로를 할 수 있을까? 우원씨는 결코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다른 가족을 증오하거나, 그들이 한 것이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느꼈다면 그런 폭로를 하고 광주에서 그렇게 진심으로 진정으로 눈물로 엎드려 사죄를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가족에 대한 사랑, 즉 그들을 자신과 같이 생각하지 않았다면, 5.18 유족들에게, 영령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고 사죄를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자비(慈悲)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 우원씨를 학살의 원흉인 전두환씨의 손자이나 우원씨의 진심으로 또 진정으로 사과하자 5.18 유가족분들과 시민들은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오히려 찾아와주어서 고맙다고 하면서 안아주고 응원하였다. 어느 철학자의 우주론(cosmology)에 의하면, 우주의 질서는 "다수가 모여 하나가 되고, 그 하나로 인해 자란다 (The Many Become One and are Increase by One),"고 한다. 그런데 이 다수가 모여,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남을 사랑하고 남의 고통을 함께하려는 '자비'일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 세 가지 진리를 일깨워 준 전우원씨와 5.18 광주 유가족분들 그리고 시민들께 감사드린다.
우원씨는 2030 또는 MZ 세대로 불리는 층에 속하는 젊은이이다. 이 세대를 두고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그 중 이기적이고 자신들의 개성만을 중시하는 세대라는 주장도 있다, 가부장적 문화에서 개발독재가 정치경제를 물들이었던 시대에 살던 젊은 세대의 부모 세대에게는 자식이지만 이질감이 느껴질 만큼 거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원씨가 지난 열흘간 보여준 모습은 젊은 세대의 또 다른 모습이다. 아니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한 유전자, 유구한 세월 속에 한민족에 각인된 자랑스러운 유산에 바탕을 두고 있다.
CHAT GPT로 대변되는 A.I.가 인간이 가진 능력을 뛰어넘으며 인간을 대신하며 인간성에 도전하고 있는 바로 이 시기, 무엇으로 인간이 되고 인간답게 살 수 있으며, 그런 인간들의 총화로 이루어진 사회가 A.I가 지배하는 사회보다 더 나을 수 있는지 전우원씨와 5.18 유가족분들 그리고 광주시민들이 일깨워 주었다. 부디 이 나라를 이끌어 간다는 위정자들도 그 일깨움에 수혜자가 되기를, 그리고 5.18을 통해 사회에 대한 눈을 뜨고, '광주정신'을 이야기하며 사회변혁을 외쳤지만, 지금은 사회 기득권이 되어 버린 586세대. '양심'이 남아 있다면, 그리고 '광주정신'을 잊지 않았다면 이번 '전우원씨 광주방문 사죄'가 젊은 세대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자신들의 역할과 의무가 무엇인지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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