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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썩이다’와 ‘썩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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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썩이다’와 ‘썩히다’

살다 보면 속상한 일이 참으로 많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음이 울적해지고 불편하다. 이런 것을 일컬어 속상하다고 표현하는데, 이런 것도 문화문법만으로 해석해야 의미가 잘 통한다. 마음이 불편하고 우울해지면 그 스트레스로 인하여 속(위장)이 상한다. 그래서 위암의 주범이 스트레스라고 하는 것이다. 술을 먹지 않는 사람도 속상한 일을 많이 당하면 위암에 걸린다. 그러고 보면 참 우리말은 원인을 잘 찾아서 전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우리 민족이 그만큼 똑똑하다는 말이다. 요즘 필자도 속이 상하는 일이 많았다. 여기저기서 억울한 얘기도 많이 들리고, 퇴직 얼마 남지 않아서 시골에 농사 지으러 가면 타관 사람이라고 우습게 보는 것 같아 속을 썩고 있다. 이럴 때 ‘속을 썩이는 것인지 썩히는 것’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오늘은 사동형에 관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자동사(동작이나 작용이 주어 자신에게만 미치고 다른 사물에는 미치지 않는 동사)를 사동화(사동사 : 주체가 제3의 대상으로 하여금 어떤 동작이나 행동을 하도록 함을 나타내는 동사)할 때는 선어말 어미(어말 어미 앞에 놓이는 어미) ‘이·하·리·기’ 등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죽다 => 죽이다, 묵다 => 묵히다, 울다 => 울리다, 웃다 => 웃기다

(장진항, <신문 속 언어지식> 참조)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자동사에 ‘이·하·리·기’ 중 하나를 첨가하여 사동화한다. 그런데 위의 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썩다’를 예로 들어 보면 ‘썩이다’와 ‘썩히다’가 둘 다 쓰이는데, 어느 것이 사동형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이웃집 농부가 내 속을 썩이다.”가 맞는지, “이웃집 농부가 내 속을 썩히다.”가 맞는지 헷갈린다. “그러니 제발 엄마 속 좀 썩히지 말아!”라고 하는 표현도 많이 듣는다. 어느 것이 바른 표현인지 예를 들어 가면서 보자.

어린 시절에 어머니께서 감자를 썩혀 녹말가루로 빚은 감자떡이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감자를 썩여 뭘 만들려고 해?”하면서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썩히다’와 ‘썩이다’가 같은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사실 하나는 틀린 표현이었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자라면서 어머니 속을 무척 썩였다.

우리로서는 자식들이 속 한 번 안 썩이고 착실하게 자라 준 것만도 고맙지.

와 같이 ‘썩이다’는 “근심이나 걱정으로 몸시 힘들고 괴로운 상태가 되게 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속썩이다, 골치를 썩이다, 골머리를 썩이다, 머리 썩이다’와 같이 “마음을 몹시 상하게 하다, 몹시 애를 쓰며 생각에 몰두하다, 골똘히 생각하다”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편 ‘썩히다’의 예문을 보면

기와 한 장 아끼다가 대들보 썩힌다.

누르면 솟구치고, 썩히면 발효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음식물을 썩혀 거름을 만든다.

와 같이 “1. 제 용도에 따라 운용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내버려두다 2. 균의 작용으로 악취가 생기거나 상하게 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썩히다’의 의미는 ‘부패하게 하다(풀을 썩혀 거름을 만들다), 재능을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태호는 아까운 재주를 시골에서 썩히고 있다), 얽매어 있게 하다(그는 아까운 청춘을 감옥에서 썩혔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상을 요약하면 정신적으로 번민하게 하는 것은 ‘썩이다’로 적고, 나머지 부패하는 것과 같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썩히다’를 쓴다고 기억하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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