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노총이 회계 속지 제출을 요구하고 이를 위반할 시 노동조합을 상대로 과태료 부과에 나선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노동계는 "노조법은 내부자인 조합원들에게도 열람할 권리만 인정하고 반출할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데, 외부자인 국가가 마음대로 이를 반출해서 볼 권리 없다"며 정부가 "초월적 법 집행"을 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2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법적 근거 없는 자료제출 요구도 모자라 현장조사를 강행하고 이중 삼중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노동조합에 의무 없는 행위를 강요하는 불법 행정"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노동부는 지난달 1일 조합원 수 1000명 이상의 단위노조와 연합단체 319곳에 회계 서류 비치·보존 의무 이행 여부를 보고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면서 회계장부의 표지와 내지를 제출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난 13일 86곳의 노조는 정부의 회계 제출 자료 요구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부는 노조법 위반으로 해당 노조에 대한 과태료 부과 절차에 착수했다. 또한 현장조사를 통해 회계 서류를 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노조는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하는 등 엄정 대응할 계획도 밝혔다.
양대노총은 "노동부가 노조 내부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노조 활동을 정치적으로 재단하고 탄압했던 행정기관 조사권을 사실상 부활시키는 행위"라며 "노동개악 강행을 위해 노조 회계투명성을 핑계로 노동조합의 정당한 활동에 대한 국민의 공감을 무너뜨리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오늘 이정식 노동부장관 직권남용 공동고발을 계기로 양대노총은 노동조합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연대하여 투쟁할 것"이라며 "헌법과 노조법 파괴, 노동조합 자주성 침해, 노동부 장관을 고발한다"고 밝혔다.
양대노총이 주장하는 고용노동부의 회계 자료 제출 요구가 '직권남용'인 4가지 이유
양대노총은 고발장을 통해 고용노동부의 회계 자료 제출 요구가 직권남용인 점을 4가지 이유를 들어 조목조목 지적했다.
①노조법 14조의 재정 자료 공개는 노조 조합원에게 하라는 것이지, 국가에 공개하라는 것이 아니다.
노조법 14조에 따르면 노조는 설립일부터 30일 이내에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을 작성해 사무소에 비치해야 하고, 이를 3년간 보존해야 한다. 이를 비치하고 보존하는 취지는 "노조의 민주화"를 위한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장인 정기호 변호사는 "노동조합이 자주적이면서 민주적인 조직의 운영을 위해 해당 서류를 공개하도록 한 것이지, 행정관청이 이를 관리·감독하도록 하라는 것이 아니"라며 "따라서 이 장관은 노동조합에 의무 없는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②노동부의 요구는 조합원들에게도 인정되지 않는 회계자료 등에 관한 등사(복사)권을 요구하는 것이다.
노동부가 회계의 표지와 속지를 '복사'해서 제출하라는 요구는 학계의 견해와 판결에 비추어 봤을 때에 조합원에게도 부여되지 않은 권리라고 이들은 설명했다.
노조법 제26조가 '조합원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열람을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등사에 관한 근거가 없으므로, 해당 노동조합의 조합원도 회계장부 등 자료의 열람을 넘어 등사청구권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노동법실무 연구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Ⅰ 제2판, 903쪽)이 학설의 통설적 견해 라고 밝혔다.
또한 2016년 10월 서울고등법원은 노조 조합원들이 자신들이 속한 노동조합에 대해 경리장부와 각종 지출에 대한 지출전표 등에 대해서 등사를 청구한 사건에서 "노동조합의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가 외부로 반출될 경우, 조합원이 아닌 자에게 노동조합의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그에 따라 노동조합의 자주적인 운영이나 전체이익이 저해될 우려가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조합원들의 등사권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한 법원은 "노동조합법에 조합원에게 노동조합의 재정에 관한 장부, 서류의 등본을 만들어 이를 외부로 반출할 권리까지 보장되어 있다고 볼만한 규정을 찾을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노동부는 비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넘어서 회계자료의 속지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하였다"며 "이는 재정에 관한 자료들의 내용을 확인하겠다는 것이고, 조합원들에게도 인정되지 않는 등사청구권을 사실상 행사하겠다는 것이므로 노조법이 허용하지 않는 월권행위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③노조법 제27조를 헌법에 반하여 운용하고 있다.
노동부가 노조에 회계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근거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7조다. 노조법 제27조는 '노조는 행정 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같은 법 제96조는 '제27조의 규정에 의한 보고를 하지 않거나 허위의 보고를 한 자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 변호사는 "노조법 제27조에 따라 결산결과를 보고하도록 요구할 수 있고, 국가기관의 행정개입이 필요한 경우라도 행정관청의 개입행위는 예외적·보충적으로 필요·최소한으로 그쳐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정신이고, 그렇지 않다면 헌법에 반한 위헌적인 법집행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근거로 정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들었다. 2013년 노조법 27조에 대한대한 위헌소원 사건에서 사법부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모든 노동조합에 대하여 일률적인 보고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관청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보고의무를 부과하고 있을 뿐"이라고 판시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행정관청이 노동조합에 자료제출을 요구하게 된 사유는 대개가 노동조합 내부에서 요청된 사정, 즉 조합원의 민원제기 또는 정보공개청구가 있었던 상황 때문"이라며 "실제 운용현황을 볼 때 2008년부터 2012년까지의 5년간 행정관청의 자료제출 요구 횟수는 총 31건이었고 자료제출 거부로 인한 과태료 부과 횟수는 5건에 불과했다"고 했다.
④회계 자료 요구는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행위다.
정 변호사는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조직된 단체이므로 자주적 운영이 그 본질"이라며 "노동조합이 자주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는 외부의 지배·개입 없이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조직한 단체여야 하며, 아울러 그 운영도 자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노총 법률원 문성덕 변호사도 " 조합원수 1000명 넘는 모든 노조에 회계장부 제출 요구하는 것은 권한 남용을 넘어서 초월적인 권한 행사에 가까운 일탈행위"라며 "노조의 재정 장부 서류비치 의무는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에 대한 의무지 정부에 대한 의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사 관계에 때아닌 법치주의를 들먹이고 있다"며 "법치주의는 노동부를 비롯한 행정부가 공권력을 행사할 때 법을 지키라는 원칙"이라고 했다. 이어 "노조법을 어기고 있는 노동부, 부여하지도 않은 권한을 행사하는 노동부는 법치주의를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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