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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노동의 끝판 건설산업, 이것을 '건폭'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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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노동의 끝판 건설산업, 이것을 '건폭'이 만들었다?

['건폭'의 진짜 얼굴] 산업 문제를 가격 문제로 보는 어처구니없는 판단

건설산업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막장 노동의 끝판이 되어버렸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대표적 중산층 직업이었던 건설노동자는 현재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당시 탄광노동자를 떠올릴 만큼 요즘 청년층이 기피하는 대표적 일자리가 되었다. 실제 건설현장에 청년층 노동자는 거의 유입이 없고, 중고령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50대 이상의 중고령자들 외에 현재 건설현장을 지탱하고 있는 노동력은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글로벌한 시대에 해외인력의 유입을 막을 이유는 없지만,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서라도 임금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는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들이 내국인 노동자의 하향임금 평준화와 낮은 생산성에 기여하고 있으니 딱히 반길만한 일은 아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당연히 건설산업구조의 문제이지, 소위 ‘건폭’의 문제는 아니다. 건설현장에서 전문업체와 마주하는 노조의 소란스러운 투쟁이 물론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나 이 문제는 우리 건설산업의 저열한 생산구조에서 비롯된 것이지, 건폭 운운하면서 노조 손보기를 한들 건설산업의 생산성이 갑자기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소아병적인 발상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건설산업의 다단계하도급 구조, 건설노동자의 저임금과 사회보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건설산업 혁신을 운운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문제는 당연히 시장의 자유를 누리려고만 하는 큰 고래인 원청업체가 새우에 불과한 전문업체와 건설노동자에 대한 걱정을 할 일이 없으니 이 일은 오롯이 정부의 역할에 달려있다. 그런데 건폭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 참 잘못 찾은 것이라 하겠다. 윤석렬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최대실정이 부동산 가격폭등이라더니 중산층의 민심이반을 걱정하여 이제는 떨어진 주택가격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올리고, 건설경기만큼 단기간에 고용과 경제효과를 볼 일이 없으니 MB정부에서 하듯 다시 부시고, 짓고, 쌓아올리는 건설경기를 외면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1년도 안되어 갈팡지팡하는 정책도 어처구니없기는 하지만, 산업의 문제를 아직도 가격의 문제로 보는 어처구니없는 판단은 실소를 넘어 우려를 낳게 한다. 경기를 살리자고 경제 전반에 걸쳐 장시간 저임금 구조를 부활시키는 최근의 행태와 비슷하다. 생산성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그러한 정책으로 저출산 고령화시대에 대한민국 경제를 일으키는 해법이 될 수 없듯,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는 건설노동자가 건설산업의 혁신을 가져올 리 없으니 이 또한 진단이 잘못되었음은 분명하다.

▲14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택재개발 신축공사 현장에 타워크레인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건설노동자의 고용상황은 전 세계가 대동소이하지만, 이에 대한 처우와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은 천지 차이다. 즉, 건설산업의 경쟁력은 정부의 혁신역량과 정책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간략하게 보자. 2015년 ILO 건설 일자리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 건설노동자의 대다수는 산업의 특성상 불안정 노동자들이고, 일부 직종은 자영업자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렇다고 노동자의 고용상황과 조건이 국가별로 비슷하지 않고, 생산성도 판이하게 차이가 난다. 선진국에서도 건설업은 여전히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고용효과가 적지 않으므로 국가별로 나름 임금과 사회정책에 다양한 지원을 통해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다.

대체로 노사합의에 기반을 둔 미국의 최저임금제(prevailing wage), 임금, 사회보험, 숙련체계를 결합한 호주의 어워드 임금제, 독일의 사회보험지원과 직업훈련을 연계한 사회복지기금 등이 그런 제도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임금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고, 고용이 불안정한 건설노동자의 소득, 직업훈련 및 노후를 보장함으로써 산업의 생산성을 유지하려는 특수한 제도이며, 정부와 노사가 협력적 관계를 통해 이러한 모범적 사례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제도를 제대로 운용하면 소위 ‘건폭’ 운운하는 불미스러운 일들은 당연히 사라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제도가 없으므로 전문업체나 현장의 건설노동자들은 원청의 무자비한 압박 속에 각각 탈법과 우회적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를 몰랐다면 현장에 무심했거나 알았다면 잘못된 처방을 내린 것이다.

사실은 정부의 담당 부처인 국토부나 고용노동부도 건설산업의 고용상황과 낮은 생산성을 방치하기 어려워 제도적 보완 노력을 오래전부터 기울여왔다. 건설근로자고용개선기본계획이 그것이다. 4년마다 개선되는 이 기본계획은 현재 제4차 기본계획이 진행 중이다. 물론 시기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지 기본계획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고는 체감할 수 없다. 기본계획에는 국내의 열악한 건설노동자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진일보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고질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건설업 등록기준 입·낙찰제도 도입과 기능인 보유현황에 따른 종합심사낙찰제, 적격심사제 도입, 그리고 임금체불, 산업재해, 편의시설 개선방안 등 나름대로 합리적인 제도개선 방안이 담겨 있다. 기본계획만 제대로 실현되어도 건설산업의 생산성은 상당히 나아질 것이다. 물론 이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원청업체의 탐욕을 일정하게 제어하는 정부의 의지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주체인 노동자 및 노조와의 사회적 타협이 전제되어야 한다.

당장 ‘건폭’ 운운하면서 전문업체의 부담을 완화해주면 정치적으로는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산업은 더 보이지 않는 지하경제의 나락으로 굴러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건설업의 최종상품은 AI가 확산되는 세상에도 사람의 숙련 노동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노사정 합의로 건설 기본계획이라도 차근차근 실행하면서 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해외에서는 주목받는 건물을 올리는 한국의 건설 대기업이 아파트 하나 제대로 못 지어 붕괴하는 일들이 재발하지 말하는 법이 없다. 시장의 자유를 사랑했던 영국의 대처 정부는 수익성이 있는 광산업과 탄광노조를 토끼몰이하고 영국을 금융시장의 천국으로 만들었지만, 결과는 제조산업 붕괴와 브렉시트에 따른 경제붕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멀지 않은 역사에서 정부가 지혜를 구하길 바란다.

▲14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택재개발 신축공사 현장의 타워크레인에서 작업자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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