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혁신도시의 공간 구조
최근 혁신도시 및 지방 신도시의 상가 공실에 대한 뉴스가 자주 보도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도시 세대 수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상가 비율, 비싼 임대료로 인한 가게들의 입점 부진, 또는 온라인 쇼핑의 활성화 등을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모두 일리 있는 의견이기는 하다. 하지만 분명 비슷한 환경과 조건을 가진 다른 신도시에서는 활발한 상업 활동과 높은 상가 입점을 보이는 사례도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온라인 쇼핑이나 상가 비율의 불균형, 높은 임대료 등이 주된 원인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일부 신도시의 높은 상가 공실은 도시 전체의 기능과 활력을 떨어트린다. 특히 지역균형발전을 목표로 야심차게 건설된 지역의 혁신도시들이 막상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완전한 베드타운으로 전락하는 현상은 지역 활성화와 국토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물론 침체 속에 있던 신도시의 상업 용지가 대규모 대중교통 시설의 개통 이후 새로운 돌파구와 반전을 맞이하는 사례는 종종 발견된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 사례는 서울로의 출퇴근 인구가 많은 수도권의 신도시일 경우에나 가능하다. 지방에 설치된 혁신도시나 택지지구는 지하철과 같은 대규모 대중교통 수요 발생과 이의 부산물인 상권 활성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서울이라는 대규모 출퇴근 인구를 흡입할 중심축이 없기 때문이다.
지역 혁신도시에서 발생하는 교통 패턴은 대중교통에 의한 집적된 이동보다는 자동차로 인한 산발적인 이동 형태가 대부분이다. 이는 일반 상업 용지의 활성화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서울이라는 거대 중심지가 없는 상태에서 대중교통 및 상권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일단 도시 내 대중교통 시스템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단위면적당 인구밀도가 높아야 한다. 대중교통 시스템은 단위면적 당 잠재적 이용객의 규모가 클수록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활성화된 대중교통 시스템은 대규모의 보행인구를 유발함으로써 일상적인 공간에서의 다양한 경제적 기회를 창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이며 혁신도시 공간 구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파트 단지는 생각보다 많은 인구를 수용하지 못한다. 또한 아파트 단지 중심의 도시 공간은 서울과 같은 중심 도시 없이는 일정 규모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게 한다.
아파트 단지로 가득 채워진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20층 이상의 아파트 빌딩이 즐비한 만큼 높을 것 같은 행복도시의 인구밀도(4078명/㎢, 2022년 기준)는 정작 건물 대부분이 5에서 7층밖에 되지 않는 파리의 인구밀도(2만 544명/㎢, 2019년 기준)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이는 건물을 조밀하게 지을 수 없는 아파트 단지의 구조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파트 단지의 넓은 부지는 전적으로 주민들만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단지 안에 외부인이 보행하는 경우는 드물며 그만큼 넓은 부지 안에는 경제적 기회가 유발될 확률이 제로에 가깝게 된다.
아파트 단지가 외부와 연결되는 지점은 제한적인 단지의 출입구에 한정되며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해 단지 주민들은 자신의 주거지와 완벽하게 분리된 상업지구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애매하게 늘어나는 이동 거리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로 하여금 자가용을 이용하게 만든다. 아파트 단지의 황량함이 주는 가로변과 도시 공간 구조는 효율적인 대중교통 시스템을 정착시킬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그림 1).
도보로 '유발된' 소비 수요의 필요성
최근 건설된 지역 혁신도시의 상업 용지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도시 전체의 기능을 떨어트리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아파트 단지 중심의 공간 구조와 이로 인한 대중교통 시스템의 침체에 있다.
상업 용지 침체를 벗어날 해법을 찾기 위해 우리는 특정 공간에서 '장사가 잘되는'기본적인 원리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상권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자주,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
여기에서의 유동 인구는 자동차로 인한 통행이 아닌 보행인구를 뜻한다. 자동차로 인한 통행은 주차라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 후에야 고객의 지출을 기대할 수 있지만 도보로 인한 통행은 스치기만 해도 손쉬운 경제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명동 골목길의 노점상이나 지하철역 인근의 상점 등 대중교통과 도보 통행이 잘 정착된 공간 구조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필자는 이렇듯 도보 이동 중에 물건을 살 마음이 생겨 구매가 이뤄지는 과정을 '유발된 소비 수요’라 부르고자 한다. 이는 처음부터 특별한 방문목적을 가지고 자동차를 몰아 주차를 한 다음에야 소비가 일어나는 대형 쇼핑몰, 마트, 아울렛 등의 '유발되지 않은' 소비와는 차이를 보인다.
전통시장은 도보 통행 인구로 '유발된' 소비 수요가 집적되어 형성된 경제 지리로 볼 수 있다. 최근 보이는 전통시장의 침체는 이러한 도보로 유발된 소비 패턴이 현저히 줄게 된 현대 도시 공간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아파트 단지 중심의 공간 구조는 필연적으로 대형 쇼핑 시설만을 생존시키며 도보 중심의 상권은 설 자리를 잃게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이동이 도보나 대중교통보다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이뤄질수록 소비의 중심은 마트나 대형 쇼핑몰 등 방문목적이 뚜렷한 대형 시설에 집중되며 일반 상업 지역은 뭔가 특별한 흡입력을 가진 비즈니스가 없다면 침체를 맞을 수밖에 없다.
공간 구조 재편을 통한 상권 활성화와 자급자족 도시 구축
필자는 최근 대만의 타이베이시를 방문한 경험이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울의 절반도 안 되는 인구 규모에 비해 생각보다 활발한 경제 활동이 도시 곳곳에서 이뤄지는 모습이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던 중 필자는 거주지와 상업지구의 구분이 없는 도시 공간 구조로부터 힌트를 얻었다. 타이베이의 도로변 건물은 대부분 1층과 2층을 상업 및 비즈니스 용도로 사용하며 그 이상이 되는 층은 주거 공간으로 사용한다.
주거와 업무가 혼합된 형태로 도시 공간이 채워지면 전반적으로 직장-주거 사이의 이동 거리는 짧아지고 공간은 더 집약된 형태로 사용된다. 집약된 도시 공간은 대중교통과 보행에 의한 이동 환경을 더 활성화시키며 도보로 유발된 소비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도시 내 경제적 기회는 더 풍부해진다.
이러한 도시 공간 구조는 탄소를 줄이는 친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생각해보면 미국을 제외한 세계의 많은 도시는 주거와 비즈니스가 혼합된 형태의 공간으로 채워져 있다(그림 2).
하지만 한국 도시의 주거 취향은 어느덧 아파트 단지 선호로 굳어진 지 오래다. 이러한 집단적 취향은 그동안 국내 신도시 건설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 송도 국제도시의 경우 그 이름이 무색하게 외국인으로부터 외면받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아파트 단지 중심의 도시 공간 구조는 생각보다 '저밀도’인 시가지가 필요 이상으로 '넓게'확산되는 효과를 낳게 하며 이는 도시 공간 발전의 응집력과 활기를 저해시킨다. 기존의 전통적인 중심 시가지를 외면하고 시 외곽의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택지지구를 조성하는 과정은 도시 전체의 사회, 문화, 경제적 인프라를 더욱 침체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산업화 시기 서울을 중심으로 제시됐던 아파트 단지 모델은 이후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주거 환경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차원에서 아파트 단지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서울만큼의 인구 규모를 갖추지 않은 지방 도시는 택지 조성으로 인해 공간의 응집력을 잃게 되었다.
성공적인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집약적이고 혼합적인 공간 구조를 통해 보다 활기차고 매력적이며 자급자족이 가능한 지역 도시를 육성해야 한다. 지역 청년들은 서울만큼의 인구 규모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다운 활동이 이뤄지는 중심지를 원한다.
■ 필자소개
윤지환 연구교수는 도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활동과 공간의 상호작용에 많은 관심을 가지며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관련한 대표 논문으로는 <익선동 한옥거리의 변증법적 공간 해석과 젠트리피케이션의 시사점 모색>(한국경제지리학회지,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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