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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호 부수고 새로 짓는 건 인류사에도 유례 없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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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00만호 부수고 새로 짓는 건 인류사에도 유례 없던 일"

[인터뷰] 下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

국토교통부가 지난 7일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공개했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1기 신도시(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에 안전진단을 면제하거나 완화하는 특례를 주기로 했을 뿐만 아니라 용적률도 기존보다 더 높여주면서 사업성도 끌어올렸다.

특별법에 적용받아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기존 30년이 지나야 받을 수 있는 안전진단을 20년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정비사업에서 대규모 광역교통시설 등 기반시설을 확보할 경우 안전진단마저도 면제해주기로 했다.

용적률은 2종 일반주거지역의 경우 300%까지 높이고 역세권 등은 최대 500%까지 올리기로 했다.

정부는 1기 신도시에만 이러한 특혜를 주는 게 부담스러워서인지 적용 대상을 1기 신도시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이번 특별법 적용 대상은 ‘노후계획도시'로 ’택지조성사업 완료 이후 20년 이상이 지난 100만㎡ 이상 택지‘가 여기에 속한다. 부산 해운대, 대전 둔산, 광주 상무, 인천 연수지구 등이 해당된다.

더구나 국토부는 택지지구가 100만㎡에 못 미쳐도 인접하거나 연접한 2개 이상 택지 크기가 100만㎡ 이상이면 이 법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되면 노후 구도심도 이번 특별법에 적용받을 수 있다.

국토부는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을 이달 중 국회에 발의할 계획이다.

논란도 예상된다. 30만 이상 주택이 존재하는 1기 신도시 뿐만 아니라 노후 구도심까지도 포함하는 이번 특별법이 진행될 경우, 전국이 건설현장으로 변할 수도 있다.

기존 정비사업보다 더 높은 용적률을 적용받는 것도 문제다. 비대해진 집적 효과로 발생할 교통 문제와 생활쓰레기 처리 문제 등이 지적된다. 더구나 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이렇게 용적률을 높인 아파트를 지을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은 "200만호 가까운 주택을 질서정연하게 순차 정비하는 과제는 어쩌면 인류사에도 유례가 없던 일"이라며 "거의 한 세기 만의 새로운 도전 과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 소장은 이것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최 소장은 "지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 '탄소중립'을 이야기하면서 구조적으로 멀쩡한 집을 허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기존 용적률을 높이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아닌, 리모델링 등을 통한 수리·보수 방식으로 가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모델을 만들 기회라는 것이다. 

최 소장은 국토교통부 장관 정책보좌관, 서울시 사회주택종합지원센터 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최경호 소장과의 진행한 인터뷰를 둘로 나눠 게재한다. 그 두 번째 인터뷰 내용.  

(관련기사 바로가기 ☞ : [인터뷰] 上 "과거 MB가 만든 '뉴타운 악몽' 재림할까 두렵다")

▲ 최경호 소장. ⓒ프레시안

"재건축 기준, 시대적 과제를 반영해야 한다"

프레시안 : 주변 지역 전월세 난을 막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규모로 나눠서 정비를 해야 할 듯싶다. 한 번에 2만호씩 한다고 해도 30만호를 하려면 15번에 나눠서 해야 하니, 전체적으로는 20년 넘게 걸릴 수도 있다. 순서가 뒤로 밀리는 지역은 원성이 자자할 것 같다.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순서대로 하려면 어떤 원칙으로 해야 할지 생각한 부분이 있나.

최경호 : 현재의 재건축 판정 기준은 개별 정비사업을 대상으로 ‘재건축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절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 순서를 정하는 데에 쓰기엔 한계가 있다. 구조안전이나 설비노후도, 주거환경의 열악함 등이 주요 채점 항목인데, 이 기준으로 순서를 정할 것 같으면 우선순위를 무엇으로 하느냐를 정해야 할 것이다.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집부터 할 것인지, 녹물이 나오는 집부터 할 것인지, 주차장이 부족한 집부터 할 것인지. 안전을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안전진단 결과 가장 위험한 집부터 하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재건축하는 집들 중에서 구조적으로 위험해서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프레시안 : 그럼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하는가.

최경호 : 시대적 과제를 반영해 새로운 기준이 등장하면 어떨까 싶다. 바로 주택의 ‘에너지 성능’이다.

프레시안 : 에너지 성능이 낮은 집부터 하자는 이야기인가? 최근 난방비가 오른 것도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한 것인가?

최경호 : 지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 ‘탄소중립’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구조적으로 멀쩡한 집을 허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하지만 녹물이 나오는 집에서 계속 사는 건 인권의 차원에서도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럼 설비 노후도를 우선순위로 할 수도 있고, 배관만 고치는 리모델링을 지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조건이 비슷한 상황에서 ‘건물을 허무는’ 순서를 정해야 한다면,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집부터 먼저 에너지성능이 좋은 집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지금 허물어 탄소를 좀 배출하더라도 향후 몇 십 년간 감소시키는 탄소배출량이 더 많다면 허무는 것이 나은 것’ 아닌가.

이러한 부분도 판단기준에 넣자는 것이다. 건물의 전체 생애주기 차원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길이라면, 구조적으로 튼튼한 집이라도 먼저 철거를 하는 명분이 될 수 있지 않겠나. 물론 이건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고, 개별 가구들에게는 난방비를 줄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주거복지, 에너지 복지 문제는 같이 갈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난방이 취약하다는 의미는 집을 지은 지 오래됐고, 낡았다는 의미기도 하다. 또한 단열재 등 보온을 위한 리모델링을 하지 못한 빈곤층이 사는 주택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그런 주택이 밀집한 지역부터 재개발을 한다는 건 나름 의미가 있는 듯하다.

최경호 : 규모가 커지면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건설폐기물이다. 30만 채보다 더 많은 집을 이제는 부수고 새로 지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폐기물을 우리가 처리할 역량이 되는지에 대해서 지금의 국토부는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다. 쓰레기 매립은 환경부 소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국토부 혼자 해결할 일이 아나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 수도권 매립지 잔여용량이 1.5년 정도다. 전국적으로도 5년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신설‧증설 한다고 하지만 지지부진할뿐더러, 기적이 일어나서 계획대로 늘린다 해도 17년 어치를 더 확보할 뿐이다. 그런데 이번 정비사업은 20년 이상 걸린다. 여전히 매립지 용량은 부족한 셈이다. 폐기물을 묻을 곳도 만들어놓지 않고 어떻게 철거를 하겠다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길거리에 콘크리트 잔해를 쌓아 놓을 수는 없지 않나.

프레시안 :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최경호 : 새 집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는 죄악시 할 수 없다. 다만, 새 집을 짓기 위해 헌 집을 부수면서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할 방법도 같이 만들자는 이야기다. 구조적으로 튼튼한 집을 굳이 허물겠다면 ‘매립지 확보 증명제’라도 실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기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직접 산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지 않나. 집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가야 한다. 1980~1990년대에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더는 쓰레기를 묻을 곳이 없다.

▲ 노후계획도시와 특별정비구역 개념도. 파란 실선은 특별정비구역의 예시다. 이 구역이 어떻게 정해질 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이다.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 못하면 이번 특별법이 제공하는 특례는 받지 못하고 기존의 정비사업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아파트 단지들이 어떻게 이합집산하여 구역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특별정비구역 지정의 유불리함이 달라지게 되면 주민들 간의 갈등이 심화될 소지도 있다. ⓒ최경호 제공

"정부, 손 안대고 코 풀려 하면 안 된다"

프레시안 : 기존 방식을 수십 년 동안 진행해 온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듯하다. 다른 방식이 가능하겠나.

최경호 : 차량 보유 대수가 늘어나면서 차고지 증명제 같은 것도 논의되고 있다. 앞으로는 다 밀어버리고 새로 짓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주택을 그대로 두고 리모델링하는 방식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어차피 용적률을 늘려봤자 미분양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주거환경을 개선해야겠다면 리모델링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실제로 지난 대선 전까지 1기 신도시의 많은 주민들은 리모델링 조합을 결성하는 방향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선 때 유력한 두 후보 모두 대단한 특혜를 줄 것처럼 약속하니, 리모델링 조합 추진이 유야무야되고 재건축 조합으로 방향을 바꾼 곳들이 많다.

프레시안 : 난방에 취약한 낡은 주택의 경우, 단열을 중심으로 리모델링을 하고 수도관이 낡아 녹물이 나오는 곳은 배관을 교체하는 식으로 하자는 말인가. 그러면 폐기물은 덜 나오긴 하겠다.

최경호 : 사실 그래도 문제가 있긴 하다. 리모델링을 한다면 대규모 폐콘크리트가 나오진 않는다. 그런데 건설폐기물 세부 내역 중에서 재활용이 제일 어려워 매립해야 하는 분야가 ‘혼합폐기물’이다. 이는 리모델링 과정에서도 많이 나온다. 그래서 애초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이제 앞으로 집을 지을 때는 최대한 '제로에너지빌딩(ZEB)'으로, 그리고 '장수명주택'으로, 또 '유연 평면 설계'로 지어야 한다.

프레시안 : 낯선 용어들이다. 제로에너지빌딩, 장수명주택, 유연 평면 설계는 무슨 개념인가?

최경호 : 제로에너지빌딩은 쉽게 말해 드나드는 에너지를 합치면 ‘0’이 된다는 개념이다. 단열이 잘 되어 에너지를 절약하는 ‘패시브 하우스’, 에너지를 생산하기도 하는 ‘액티브 하우스’가 합쳐진 것으로 보면 된다. 에너지를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도 하고, 심지어 외부로 송전해서 팔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전력체계도 일방향이 아니라 양방향 송전이 가능하고 드나드는 에너지를 조절하고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그리드 체계로 개편해야 한다. 3기 신도시 신축이나 1기 신도시 정비 때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장수명 주택은 말 그대로 오래 쓰는 집으로, 수명이 긴 구조체는 그대로 두더라도 수명이 짧은 배관 같은 것은 쉽게 교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건물 수명이 50년을 넘어 100년도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러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십 수번 바뀔지 모른다. 4인 가구가 살다가 1인 가구가 살게 될 수도 있다. 또 몇 십 년 뒤 후손들이 살 때의 라이프 스타일이 어떨지 지금 예측하긴 힘들다. 그러니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맞춰서 방의 크기나 개수, 설비의 교체가 쉽도록 하는 것이 가변 평면, 혹은 유연평면 주택이다.

프레시안 : 그러면 건설비가 더 비싸지는 것 아닌가. 용적률을 늘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합의 부담이 커질테니 사업 진행이 더 어렵고 원주민 재정착이 어려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생길 듯 하다.

최경호 : 그래서 그런 주택으로 바꾸면 기후위기대응 차원에서 국가가 파격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 벨기에의 에코팩 프로그램 같은 경우, 30년 무이자 대출을 해준다. 죽을 때까지 살다가 집을 팔아서 갚아도 되는 것이다. 그린 리모델링뿐만 아니라 건물을 허물고 제로에너지 주택으로 바꾸는 그린-재건축에도 정부가 파격적으로 보조금, 융자, 출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용적률을 늘려준 뒤 '알아서 팔라'고 하면서 손 안대고 코 풀려 하지 말고, 필요한 돈을 마련해서 풀어야 한다.

프레시안 : 출자는 생소한 이야기다. 개인의 사유재산에 국가가 투자한다는 것인가?

최경호 : 비용이 부담되는 원주민에게는 공공과 지분을 공유하는 지분공유형 주택으로 공급해서, 원하는 기간만큼 살다가 나중에 공공과 시세차익을 나누는 개념이다. 이미 '공공주택특별법'에 있는 '이익공유형' 주택을 활용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이것도 일종의 특혜라는 논란은 없겠나? '왜 재건축 재개발하는 사유재산에 돈을 보태주나'라는 지적이 나올 듯하다.

최경호 : 지금 우리가 전기차를 사도 보조금을 주지 않는가. 탄소배출을 줄여야 다 같이 살아남는다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공공 지원의 명분이 있다. 어차피 용적률을 늘려줘서 일반분양하는 돈으로 사업성을 개선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렇게 해주는 것이 사실 더 큰 특혜다. 인구가 늘어나서 생기는 기반시설에 대한 부담은 다 같이 나눠지는데 말이다. 물론 정부는 개발이익을 환수해서 기반시설을 늘리겠다고는 하지만, 그 개발이익 환수에도 반발하는 힘이 막강하다. 선거 때 출마하는 정치인들 중 개발이익을 제대로 환수해서 종합적 관점에서 올바로 사용하겠다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프레시안

"합리적인 순환 정비 로드맵 만들어야 한다"

프레시안 : 용적률 늘려서 정비하는 시대가 끝났다고 했다. 용적률은 정말 더 이상 늘릴 수 없는가?

최경호 :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둔촌 주공’의 용적률이 얼마였는지 아는가? 전에 90%였다. 이것을 3배 늘렸다. 그래도 조합원 분담금이 많이 든다고 공사비 증액을 거부하다가 시공사가 유치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270%로 공급하는데도 분양 측면에서 고전 중이다.

프레시안 : 앞으로는 이렇게 세 배씩 올리지는 못할 듯하다. 그래도 조금 더 올릴 순 있지 않나?

최경호 : 5층이 15층이 될 때에는 10개층만 채우면 되지만 15층이 45층이 되면 30개층을 더 팔아야 한다. 그리고 전에는 그런 아파트가 한 동이었는데 지금은 여기저기 많아졌다. 10동이라고 쳐 보자. 전에는 한 개 동을 3배 늘려도 10개층 어치만 채우면 되는데, 지금은 10개 동이니 한 동을 3배가 아닌 2배만 늘려도 15개 층씩 총 150개 층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과거에 10개층을 늘릴 때는 인구가 자연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늘어날 때였지만, 지금 그 15배인 150층 어치를 채울 수 있을까? 이미 2019년에 수도권 인구가 전체 과반을 넘었고, 2021년부터는 전체 인구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15배를 채운다? 아무리 1인가구가 늘고 1인당 필요 면적이 늘고 외국 인구가 들어와도 감당할 수 없는 규모다.

프레시안 : 과거에 지어진 1기 신도시의 용적률이 이번에 지어진 둔촌주공에 근접한 수준 같다.

최경호 : 지금 1기 신도시 용적률은 가장 낮은 일산은 170%가 안 되지만 중동은 220%가 넘는다. 이들의 용적률을 과연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 줄어드는 인구를 놓고 누가 먼저 용적률을 키우냐는 건 제로섬 게임, 어쩌면 마이너스섬 게임이다. 물론 역세권은 용적률을 키워도 분양에 성공할 수도 있다. 먼저 하는 곳이 용적률을 키워놔야 다음에 정비하는 곳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들어가 살 전월세 물량을 확보하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특별정비구역 선도지구 지정’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프레시안 : 그래도 미래에 다시 인구가 늘어날 수도 있고, 어느 정도는 수도권 인구가 더 늘어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 않겠나.

최경호 : 설령 인구가 늘어나서 수도권의 용적률 증가를 감당해도 문제는 여러 가지가 남는다. 지금도 출퇴근 시간 교통 문제는 심각하다. 여기에 전기나 도시가스 등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는 어디에서 구해오나. 또한 생활쓰레기는 어디에 버릴 건가.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사람들을 다 빼 내고 지방에는 쓰레기장과 발전소만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프레시안 : 국제 경쟁력을 갖추려면 조금 살기 불편해져도 용적률 1000%를 넘는 홍콩처럼 가야하고 충분히 이를 감당할 수 있다는 의견들도 있다.

최경호 : 홍콩이나 뉴욕의 용적률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은데, 거기는 중국과 미국이라는 거대한 인구와 경제가 작동하는 배후지가 있다. 국제정치 측면은 잘 모르는 분야지만, 홍콩은 전력 공급이나 쓰레기 처리 문제만으로도 독립이 어렵지 않겠나 보고 있다. 그리고 거기는 기후가 다르다. 겨울철에도 난방비 걱정이 없는 곳이다. 한국에서 집을 그렇게 촘촘히 지으면 일조시간이 줄어서, 지금도 난리가 난 난방비가 더욱 폭등할 것이다. 기후의 차이를 무시하고 도시계획을 베껴오면 안 된다.

프레시안 : 자원순환이나 기후하고도 관련이 있으니, 용적률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주제다. 그런데 국토부나 지자체들은 다 용적률 완화만 유일한 인센티브인 것처럼 접근하고 있다.

최경호 : 설령 에너지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도 끝이 아니다. 지상이 고밀해지면 그만큼 지하도 많이 파야한다. 사람들이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건축을 선택하는 이유 중에는 지하 주차장을 만들기 위한 이유도 있다. 마냥 주차대수를 늘려주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세대 별 1대가 안 되는 단지 같으면 주차문제도 심각하니 대책이 필요하다. 주차대수를 늘리지 못하는 단지는 용적률을 늘리는 것이 부담스러우니 리모델링을 선택하기도 한다.

프레시안 : 뒤집으면, 주차장을 지하에 확보하려면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최경호 : 그런데 지하를 팔 수 있으면 파더라도, 이것 역시 공짜가 아니다. 깊게 들어갈수록 지하수 때문에 생기는 부력이 커져서 건물을 밀어올린다. 잘못하면 건물이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앵커로 붙들어 매어 고정하든가 펌프로 물을 퍼내야 한다. 그러면 공사비나 관리비가 비싸진다. 개별 단지에서야 그런 비용을 감수하겠다고 하면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단지가 많아져서 스케일이 커지면 지하수의 수위나 흐름이 변하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앞으로 싱크홀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프레시안 : 정부는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가.

최경호 : 2018년에 지하안전법을 시행하고 지하안전평가를 수행하게 돼 있지만 아직 지하 상황을 제대로 다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다. 기반시설과 관련해서는 지하공간통합지도가 없는 곳도 아직도 많다. 거칠게 말하면, 어디를 파면 어디가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그냥 '깜깜이'로 공사하고, 싱크홀이 생기면 그때그때 메우는 식이다, 최근 5년간 경기도 내 발생한 싱크홀이 230개가 넘었다. 모 택지지구에는 면적이 100제곱미터가 넘고 깊이는 18미터나 되는 싱크홀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기저기에 용적률을 다 올리고 지하를 다 파헤치겠다? 도박을 하는 것이다. 지하안전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과다 지정후에 지지부진하면 뉴타운의 악몽이 반복되는 것이고, 그대로 지어지면 과밀화의 문제, 지하안전의 문제 등이 심각해질 것 같다. 대안은 무엇인가?

최경호 : 구체적인 것은 시행령에서 정해진다고 하니,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 막상 특별정비구역 지정에 따른 특례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선도지구에서 늘어난 용적률은 이후 순환 정비과정에서 이주민을 받을 임대주택으로 쓰겠다고 하면, 생각보다 경쟁이 그리 치열하지 않을 수도 있다.

프레시안 : 이번 발표에 경기도의 제안도 어느정도 반영되었다고 들었다.

최경호 : 사실 노후 도심도 포함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주변지역과의 형평성을 그나마 고민한 경기도가 제시한 것이라 들었다. 경기도의 제안 중에는 단계별 인허가 총량제를 도입하여, 자연스럽게 순차적으로 정비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것도 있었다고 아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 국토부 안에는 빠졌다. 중앙에서 방침만 세우는 국토부나, 자기 지역을 먼저 챙길 수 밖에 없는 시장·군수가 아닌 ‘광역의 눈’으로 보는 경기도의 안목이 드러난 부분인데, 이후 이런 취지가 잘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부디 관계 당국에서 제반 문제들을 잘 검토해서 합리적인 순환 정비 로드맵을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법과 시행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이런 사례가 해외에는 없는가.

최경호 : 한국은 단시일내에 대량 공급에 성공한 몇 안되는 경우다. 사실 분배측면이 좀 실패해서 그랬지, 이 정도 공급한 것도 세계사적으로 대단하긴 하다. 따라서 200만호 가까운 주택을 질서정연하게 순차 정비하는 과제도 인류사에서 유례가 없던 일이다. 거의 한 세기 만의 새로운 도전 과제이고, 기후위기 대응의 차원에서는 세계를 선도하는 모델을 만들 수도 있는 기회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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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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