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능에 선거 제도 문항이 출제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영역 '정치와 법' 과목에는 매년 선거 제도 문항이 출제되고 있다. 해당 문항은 선거 제도를 구성하는 투표 구조(ballot structure), 의석 배분 방식(electoral formula), 선거구(district magnitude)와 관련된 지역구와 비례대표, 나아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1인 2표 투표 방식, 병립형과 연동형 의석 배분, 소선거구와 중선거구 등에 대한 이해를 수험생에게 요구하고 있다.
수험생들은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약 10개 이상의 방정식을 풀어내야 했고, EBS는 정답률을 30%대로 예측했던 고난도 문항이다. 그런데 문항에 제시된 가상의 '갑국, 을국', 'A〜E 정당', '선거구 1〜10'과 '15〜20개의 의석수'를 대신하여, 약 4300만 유권자의 대한민국에서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이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을 놓고 각축 아니 사투를 펼치게 될 내년 제22대 총선의 선거 제도를 개편한다면, 그 현실의 난이도는 어느 정도일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던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가 목격한 패스트트랙, 점거‧빠루‧망치의 동물 국회, 고소‧고발 그리고 위성 정당 등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끔찍하고 동시에 해법을 찾을 수 없을 듯한 절망감이 든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이 어떠냐고 한다.
제21대 총선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실패, '비례대표 선거구' 개혁 실패
제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1월 14일 「공직선거법」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개정됐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지역구국회의원을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선출하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 따라 비례대표국회의원으로 독립적으로 선출하는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러한 선거제도로 인하여 대량의 사표를 발생하고, 정당득표율과 의석점유율 사이의 불일치가 큰 폭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지역별로 특정 정당이 그 지역의 의석 대부분을 독점하는 현상이 지속되는 등 지역주의 정당 체제를 극복하는 데 장애요인이 되고 있음"
개정 「공직선거법」으로 진행된 제21대 총선 결과, 사표는 줄고 정당득표율과 의석점유율 간 비례성은 높아지고 지역주의 정당 체제가 다소나마 극복됐나? 선거 결과를 살펴보면 아닌 것 같다. 위성 정당들 덕분(?)에 사표가 줄었는지, 비례성이 개선되었는지는 제대로 측정조차 할 수도 없고, 지역주의는 오히려 심해졌다고 평가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개정 과정의 오류다. 위 개정이유는 원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진행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의안번호 2019985)의 그것과 거의 똑같은데, 원안에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3:1, 즉 225석과 75석으로 명시했고 또한 비례대표를 전국 단일 선거구에서 소위 '권역'이라고 칭한 6개 선거구로 바꾼다고 했다. 아울러 정당별로 열세인 권역에서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 지역구 후보자를 비례대표 의원으로 선출하는 석패율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수정 가결된 법률은 이와는 달랐다. 권역은 없었고 따라서 석패율제도 없었다. 비례대표 47석, 그중에서도 캡(cap, ∩) 30석에 대한 연동배분‧잔여배분‧조정 의석 등에 관한 제189조를 신설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는데, 이를 통해서는 애초에 사표를 줄일 수도 없고 지역주의 정당 체제를 극복할 수도 없다. 개정이유만 '복붙'(복사 이후 붙여넣기)됐다.
유권자가 1인 2표를 행사한다는 것은 지리적으로 2개의 선거구가 존재함을 의미하며,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구는 전국을 하나로 묶은 '비례대표 선거구'와 전국을 253개로 쪼갠 '지역선거구'가 결합된 다(多)계층(multi-tier), 이중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2019년 4월의 패스트트랙 원안은 1개의 비례대표 선거구를 권역이라는 6개로 나누고 각 권역의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병립이 아닌 (준)연동으로 배분해 사표를 줄이고 비례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또한 권역별 석패율제를 통해 특정 정당의 특정 지역 의석 독점을 다소나마 완화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권역 내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 간 배분 방식의 (준)연동이자, 동시에 지역선거구와 비례대표 선거구의 공간적 (준)연동이다. 당연히 복수의 비례대표 선거구가 필요하다. 결과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비례대표 선거구 개혁은 좌절되고 전국의 비례대표 의석에 대한 불편한 배분 방식 변경만 있었다. 위성 정당은 뒤베르제(Duverger) 법칙의 예외를 증명해 줬다.
중‧대선거구로 개편? '지역선거구' 개혁은 훨씬 더 어렵다.
최근 논의되는 중‧대선거구 도입은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구를 바꾸자는 것인데, 이것이 훨씬 더 어렵다. 예측이 아니라 지난 역사와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1995년, 2001년, 2014년 세 차례 위헌 및 헌법불합치 대상 법률과 조문은 옛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지금 「공직선거법」의 '별표 1. 국회의원 지역선거구 구역표'였다.
또한 '선거구법정주의'에 따라 약 200여 개 지역구의 명칭과 경계 등은 국회에서 법률 개정을 통해 정해야 하는데, 4년마다 여‧야는 극한 대립, 갈등을 거쳐, 선거 직전인 2월 말〜3월 초에 이르러 개정했다.
제20대와 제21대 총선 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독립기구인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들러리일 따름이고, 실질적으로는 국회 교섭단체들(2016년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 2020년 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민주통합의원모임)이 합의한 기준대로 지역선거구 수와 경계가 정해졌다. 정치적으로 기득권을 가진 세력, 이해당사자들은 꾸준히 이래 왔다.
일부에서는 헌재 판결은 소선거구제에서의 문제였으니 중‧대선거구로 개편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과연? 소선거구든, 중‧대선거구든 다음과 같은 경험과 이유로 획정 자체가 쉽지 않고 그래서 개혁이 어렵다.
선거구에 관한 산적한 문제들
우리나라는 50년 전에 중선거구를 채택한 적이 있다. 1973년 제9대부터 1985년 제12대 총선까지였다. 그런데 심지연·김민전(2001)의 연구를 인용하면, 이때 '유권자수'를 기준으로 최다와 최소 선거구 간 편차는 무려 4.96〜5.85:1 이였다.
1988년 제13대 총선부터 소선거구로 환원했는데, 유권자수 편차는 4.6:1, 제14대 때는 5.0:1이었다. 제15대 총선을 앞두고 1995년에 마련한 선거구 획정안은 '인구'를 기준으로 그 편차가 4:1을 초과했다. 그리고 이는 평등 선거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받았다.
제19대 총선 직전, 국회는 '구(자치구를 포함한다)‧시(구가 설치되지 아니한 시를 말한다.)‧군의 일부를 분할하여 다른 국회의원지역구에 속하지 못한다'는 자구를 '자치구‧시‧군의 일부…'로 고쳤다.
그 결과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은 분할되어 팔달구 선거구에 편입됐고, 용인시와 천안시의 흔히 행정구로 부르는 지역들에서도 그 경계를 넘나드는 선거구 획정이 이뤄졌다. 그런데 이 기준을 차별적으로 적용했다. 해당 지역들의 의석수는 늘었어야 했는데 늘지 않았고, 영‧호남 일부는 줄었어야 했는데 줄지 않았다.
제20대 총선 때 홍천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 등 5개 시‧군은 하나의 선거구로 묶였고, 그 면적이 약 5970㎢이다. 참고로 약 605㎢ 면적의 서울특별시는 49개 선거구였다. 태백시‧횡성군‧영월군‧평창군‧정선군 선거구도 5개 시‧군이 묶인 것이고, 4개 시‧군의 선거구는 9개, 3개 시‧군의 선거구도 11개였다.
제21대 총선에서는 5개 시‧군 결합의 선거구는 없었지만 4개 시‧군의 선거구가 강원 4곳, 충북 1곳, 전북 1곳, 전남 3곳, 경북 2곳, 경남 2곳이었다. 반면 1개 기초자치단체가 3〜5개로 분구된 경우는 서울 노원구‧강서구‧강남구‧송파구, 대구 달서구, 경기 수원시‧성남시‧부천시‧안산시‧고양시‧남양주시‧용인시‧화성시, 충북 청주시, 충남 천안시, 전북 전주시, 경남 창원시 등 17곳의 61개 선거구였다.
또 순천시의 24개 읍‧면‧동 중에서 23곳은 갑(甲) 선거구를 구성하고, 해룡면 1곳만 광양시‧곡성군‧구례군과 묶여 을(乙) 선거구에 속했다.
춘천시에서는 25개 읍‧면‧동 중 19곳은 갑(甲)으로, 나머지는 철원군‧화천군‧양구군과 묶였다. 더 기괴한 곳은 화성시 갑(甲)‧병(丙) 선거구로 쪼개진 봉담읍이다. 봉담읍에 속한 16개 리(里) 중에서 10곳은 갑(甲), 6곳은 병(丙)으로 분할되었다. 2020년 3월 11일 국회는 「공직선거법」에 부칙 제2조를 신설했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다.
선거구 획정과정에서 지역대표성은 왜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나
위에 언급한 문제들은 인구 편차 기준이 강화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흔히 인구대표성이 강화되면 지역대표성이 약화된다고(이에 대해서는 학술적으로 더 넓고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한다.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지리학 전공자로서 근본적 원인은 지리적 편재성, 즉 불균등한 인구 혹은 유권자의 분포라고 판단한다. 아울러 인구 분포와 불균등 정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도 살펴야 한다.
유엔 통계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도시화율은 1950년 21.4%에서 2020년에는 81.4%, 같은 기간 인구는 약 2000만 명에서 5000만 명 이상으로 늘었다. 1948년 제1대 총선에서는 전국을 200개 선거구로 쪼개고, 각 1명의 대표를 단순다수제로 선출했는데, 당시 156개 부(府)‧군‧구‧도(島)는 최소 1개 이상의 의석이 배정됐다.
이는 인구 14만 7816명의 삼척군, 5만 1522명 청주부처럼 농업과 촌락 중심의 인구 분포였기에 그러했고, 1949년 제정된 「지방자치법」이 시와 함께 읍‧면을 자치단체(지금의 군‧구는 자치단체가 아니었다)로 설정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물론 도시화율이 낮았던 때도 선거구 획정에서 인구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다만, 이 무렵에는 인구가 많은 행정구역을 다수 선거구로 나누는 기준이었을 따름이고, 1963년 제6대 총선부터 무주군‧진안군‧장수군 선거구처럼 여러 시‧군을 합치는 기준으로 적용됐다.
지역대표성이 약화된 것도 우리의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 과정에서 비수도권과 농촌 지역의 인구가 줄었고, 인구밀도가 낮아진 불균등 분포 때문이다. 결국 합치고 합쳐서 서울 면적 10배 크기의 초거대 선거구가 등장했고, 앞으로 훨씬 더 큰 선거구가 나타날 개연성이 높다.
「공직선거법」 제25조 제1항에 명시된 지역선거구 획정 기준은 인구‧행정구역‧지리적 여건‧교통‧생활문화권 등 5가지다. 이중 인구만 '정량적'이고 나머지는 '정성적' 기준이다. 혹은 '수리적인 것'과 '지리적인 것'이다.
1995년 헌법재판소는 '적어도 선거구의 획정에 있어서는 인구비례의 원칙을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고, 여타의 조건들은 그 다음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문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성적이고 지리적인 '여타의 조건'을 한 차례도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왜일까? 당리당략, 기득권을 지켜낼 때 애매모호함은 좋은 핑계가 된다.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거듭 4;1, 3:1 그리고 2:1 이내로 명확하게 제시한 인구 편차 빼고는 사문화된 자구이자 획정 기준으로 방치된 듯하다.
제20대 총선 직전, '농산어촌의 지역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다고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문이 신설됐다. 하지만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등은 농산어촌을 읍‧면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화성시 봉담읍을 리 단위로 쪼갠 선거구를 두고 농산어촌 지역대표성을 반영하기 위함이라는 이유가 타당한가? 매번 비수도권 군 지역들을 이리저리 떼고 붙여 만든 선거구는 생활문화권 변동 때문일까?
비록 실행되지 않았지만, 강원도를 수도권에 붙이느냐 충청권과 붙이느냐 고민하는 권역 설정이 지리적 여건을 고려한 것일까? 영‧호남 선거구에서 과다 대표가 두드러졌던 건 무슨 이유일까?
완벽한 선거 제도는 없다. 그래서 꾸준히 고친다. 선거 제도의 일부인 선거구까지 개혁해 보자고 하니, 매우 반갑다. 제대로 개혁하길 희망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며, 시간에 쫓겨서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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