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가 3년 만에 10초 앞당겨졌다. 분침이 자정 전 90초로 이동하며 멸망을 의미하는 자정에 설정 이래 가장 가까워졌다.
미국 핵과학자회(BAS)는 24일(현지시각) 성명을 내 운명의 날 시계가 10초 앞당겨져 자정까지 90초 밖에 남지 않았다고 밝혔다. BAS는 2020년 1월 자정까지 100초로 설정된 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에도 3년 간 움직이지 않던 시계의 분침이 이동한 이유가 "주로 우크라이나 전쟁 탓"이라고 설명했다. 레이첼 브란손 BAS 회장은 "시계가 자정 전 90초를 가리킨 것은 (1947년 첫 설정 이래) 가장 자정에 가까운 것"이라며 "미국 정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 및 우크라이나는 다양한 대화 창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도자들이 모든 능력을 다해 시계를 되돌려 놓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 2차 대전 중 미국의 핵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종사하거나 이를 도운 과학자들이 더이상 "연구가 초래한 결과에 무관심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1945년 설립한 BAS는 1947년 운명의 날 시계를 선보였다. BAS 과학안보위원회가 핵 위험·기후변화·파괴적 기술로 인한 위기 등 인간이 만든 기술과 이로 인해 초래된 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분침을 조정한다. 냉전 시기인 1947년 자정 7분 전으로 시작한 종말시계는 군비 경쟁으로 점차 자정에 다가가다 1963년 부분적 핵실험금지조약으로 자정에서 12분 멀어지기도 했다.
시계가 자정에서 가장 멀어졌던 시기는 냉전이 끝난 1991년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핵무기 현대화·핵무기 조약 약화 등과 더불어 2000년대 들어 기후 위기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며 시계는 점점 자정으로 이동해 2020년엔 자정 전 100초까지 이동했다. 다만 첫 선을 보인 1947년 시계 분침이 자정 7분 전에 자리한 것은 시계를 디자인한 마르틸 랑스도르프의 눈에 "좋아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BAS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며 러시아의 핵 사용 위협을 비롯해 핵 관련 위험이 크게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BAS는 성명에서 "러시아의 은근한 핵무기 사용 위협은 전세계에 확전이 끔찍한 위험임을 상기시키고 있다"고 비판한 뒤 러시아가 체르노빌과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 지역을 전장으로 끌어들여 방사성 물질 누출 위험을 증가시킨 점도 언급했다. BAS는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벌이며 러시아와 미국 간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도 지적했다.
BAS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핵 위험뿐 아니라 기후변화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BAS는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던 국가들이 공급난으로 다시금 천연가스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가 생화학 무기 사용을 계획하고 있다는 거짓 선전을 퍼뜨리며 오히려 러시아 쪽에서 이러한 무기들을 사용하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도 했다.
BAS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시계 분침 설정에 영향을 미친 기준을 핵무기·기후위기·생물학적 위협·허위 정보 및 파괴적 기술 분야로 나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모든 분야에 악영향을 미쳤고 이 외에도 핵무기 분야에선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강화한 것, 중국의 핵 능력이 확장되고 인도가 핵무기 현대화에 나서고 있는 것, 이란 핵합의가 복원되지 않고 있는 것이 위험으로 꼽혔다.
기후 위기 분야에선 지난해 여름 유럽·북미·중국 등 북반구를 덮친 폭염과 가뭄 및 파키스탄 대홍수와 이로 인해 많은 지역이 흉작을 경험한 것이 언급됐고 생물학적 위협 분야에선 코로나19 대유행 등이 언급됐다. BAS는 허위 정보 분야에선 지난해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극우 마린 르펜을 누르고 승리했고 미국에서 2021년 1월6일 의사당 폭동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는 등 몇몇 "좋은 소식"이 있었지만 러시아가 자국 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진실된 정보 보급을 막고 있고 중국이 신장위구르자치구에 대해 감시 기술 사용을 계속하는 등 위험이 여전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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