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설화가 빚은 외교 논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윤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 순방 중이었던 지난 15일 아크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의 형제 국가인 UAE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다.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 우리와 UAE는 매우 유사한 입장에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 속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과 대통령의 외교적 무지가 동시에 담겨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란 한국이 UAE에 최고 수준의 안보 제공을 약속했고 아크 부대는 그 일환으로 파병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연말에 UAE 원전을 '헐값'으로 수주하는 과정에서 비밀 군사협정을 맺었다. 특히 이 협정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나 미일상호방위조약에도 없는 '자동 개입' 조항까지 담겼다. UAE 유사시에 한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해 UAE 안보를 지켜주겠다는 뜻이다.
당시 UAE는 이란과 긴장관계에 있었기에 이러한 군사협정은 사실상 이란을 '공동의 적'으로 삼은 것이기도 했다. "UAE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다"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도 이러한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UAE 원전을 반값에, 그것도 거액을 빌려주면서 수주하고 안보까지 보장해주겠다며 맺은 군사협정 자체부터도 황당할 일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의 외교에 대한 이해 수준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것도 매우 충격적이다.
2021년부터 이란과 UAE 관계는 확연히 개선되어왔다. 대사급 외교관계를 복원하는 한편, 경제협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UAE 외교부는 윤 대통령의 방문 직전에 "UAE와 이란의 양자관계는 협력과 신뢰, 그리고 상호 이익에 기반을 둔 동반자 관계의 본보기"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두 나라의 관계 개선에는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에 처해 있는 이란의 '탈출구 찾기'와 UAE의 '실용적 균형외교'가 맞물려 있다. UAE는 이란뿐만 아니라 이란과 숙적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 및 사우디아라비아와도 우호 관계를 추구하고 있는 중동의 거의 유일한 국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란은 물론이고 UAE에도 큰 민폐를 끼치는 것이다. UAE가 이란과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는 와중에 "이란은 UAE의 적"이라고 말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웃과 친해지기 위해 다른 이웃을 욕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UAE와 이란은 서로 가까운 이웃이고 우리나라의 멋 이웃들이다. 윤 대통령은 멀지만 친한 이웃인 UAE를 방문했다. 그런데 친해지려는 두 이웃, 즉 이란과 UAE 모두에게 악담을 하고 말았다.
비유하자면, 윤 대통령은 고의든, 실수든 물 컵을 엎질러 양쪽에 있는 사람들 옷을 적신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당사자가 사과하는 게 도리에 맞다. 그런데 대통령은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고 대통령의 참모와 여당은 엎질러진 물에 물을 더 붓고 있다.
정부·여당은 "오해"라는 말로 외교 참사를 퉁치려고 한다. “오해”라는 표현은 맞다. 그런데 번지수를 정반대로 짚었다. 이란 정부가 윤 대통령의 말을 오해한 것이 아니라 윤 대통령이 UAE와 이란의 양자관계를 오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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