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말을 풍미한 클러스터 정책
산업클러스터정책이 시행된지 우리나라는 20여 년, 유럽은 30여 년이 되었다. 산업클러스터란 지역의 산업 특성과 역량에 맞는 산업군을 선정하고, 한정된 공간에 상호 연계되어있거나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을 유치하고, 법무‧회계‧컨설팅 등 비즈니스 서비스 활동과 연구개발기능‧ 공공부문의 기업지원 서비스 기관을 입주시켜 새로운 혁신을 추동하고자 하는 산업집적지이다. 여기에 창업 인큐베이터와 이를 지원하는 다양한 자금지원과 기술지원 기능이 함께한다.
산업클러스터정책은 원래 기존의 산업단지와 같은 단순 제조업 집적지 혁신의 한계와 경쟁력 약화에 대응하여 지역과 국가의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과학기술 역량을 증진시키는 정책이다. 자연발생적인 산업클러스터가 북미지역뿐만 아니라 유럽과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에서 산업혁신과 응용과학기술의 발전정책으로 채택되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지역발전정책의 상당 부분이 클러스터사업으로 진행된 점이다. 지역산업 클러스터정책은 '집적-학습-혁신'을 통한 지역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신규창업과 (고급)인력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연관산업으로의 파급효과를 통해 장기적인 지역발전효과를 기대했다.
대형 사업만 하더라도 지역혁신체계 구축정책, 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정책, 지역산업 클러스터정책, 광역클러스터정책 등이 시행되었으며,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국가혁신 클러스터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추진으로 지역산업의 성장과 경쟁력 향상에 상당한 기여가 있었다. 지역의 제조업 기반이 강화되고 특화산업 중심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중요한 것은 1960년대 이후 압축적 산업화와 도시화 시기에 구축된 수도권-비수도권의 공간분업, 즉 포디즘시대의 중요한 특징인 개념과 수행의 분리가 공간적으로 투영된 형태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역할분담이 더 뚜렷해졌다는 점이다. 클러스터 정책은 이러한 공간분업구조의 양극화를 강화시킨 측면이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클러스터 정책의 한계
첫째, 지역산업의 선택과 집중의 문제이다. 다양한 산업들의 복합적 연계로 인한 연관다양성의 특성을 가지는 도시화경제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지역산업구조의 상황에서 특화산업 중심의 산업구조의 고착화는, 세계적인 경기의 부침으로 인한 지역경제의 위기와 기회의 순환으로 인한 경제회복력 약화를 가져온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조선, 철강산업 특화도시의 위기 상황을 보면 이러한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구의 산업도시들이 1980년대에 경험했던 탈산업화의 위기를 21세기의 한국도시가 안고 있는 셈이다. 물론 우리나라 산업도시의 경제위기가 모두 클러스터 정책으로 인한 결과는 아니지만, 선택과 집중의 원칙으로 지역의 산업특화를 지속하여 온 책임도 면할 수는 없다.
둘째, 우리나라 클러스터정책의 문제는 과학기술정책이자 산업경쟁력 향상정책을 지역발전정책의 핵심으로 삼았던 측면에 기인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성장이 지역발전의 가장 중요한 축이 되고, 산업경쟁력이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지만, 클러스터정책을 지역산업정책의 보완정책이나 산업경쟁력 강화정책으로 한정하지 않고, 지역산업정책의 중심으로 삼았던 점이 문제다.
대부분 기초단위로 나누어진 정책실행 지역마다 특화산업 중심의 클러스터정책을 시행한 것은 지역 중소도시의 산업구조의 건전성과 장기적인 지역경쟁력 유지에 어려움을 주며, 지역에서의 산업생태계 구축을 어렵게 한다.
셋째, 모든 지역의 특화산업이 글로벌 허브가 될 수는 없다. 물론 정책이나 사업의 비전을 높게 잡고 지향하는 바를 제시하여 행위주체자들의 참여와 자부심 고양을 기대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나, 지역의 인재 구성, 산업생태계, 산업의 유기적 구성도에 적절한 산업정책보다는, 지역 모두가 글로벌 허브를 지향하는 정책은 비전으로 끝나기 쉽다.
특히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국가혁신 클러스터정책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선언적으로만 그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생활기반은 물론 산업기반과 기술인재기반이 취약한 혁신도시를 지역의 산업혁신 중심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지역의 혁신지구 구축과 임계치 향상으로 수도권에 대응해야
이미 많은 국가에서는 클러스터정책을 완료한 후, 정책의 성과와 과제에 대한 점검 후에 후속 산업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지역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그동안 산업 융복합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점을 인식하여 새로운 기획을 하고 있으며, 대도시에 집중된 제조-서비스업의 연계와 비즈니스 서비스활동을 지역 도시에 확충하기 위해 노력한다.
고착화되고 업종이 특화되어 있는 지역산업단지의 이점이 약화되고 있어, 대도시 지향성을 띠고 있는 현대의 산업특성에 지역이 대응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미 고착화된 수도권-비수도권의 산업경쟁력과 수도권을 선호하는 기업의 속성을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새로운 지역산업정책이 구상되어야 한다. 먼저 지역의 산업 특성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수도권은 서울-인천-경기가 하나의 산업 단위로 작동하며 거대한 산업 집적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원천이다.
지역이 세계와 경쟁하려면 먼저 수도권과 대응할 수 있는 크기와 용량을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광역권에서 행정구역간 작은 파이를 두고 경쟁하기보다는 수도권과 유사한 산업 집적체를 구축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부울경 (메가시티)특별연합의 폐지는 무척 아쉽다. 수도권 일극화에 대항하고 동남경제권역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는 협약이 폐지된 셈이다.
클러스터는 군집으로 인한 시너지(임계규모, 네트워킹, 학습, 혁신)를 강조하는 자기 완결형 규모의 경제와 산업특화로 인한 전문화, 공공부문의 강한 리더십기반의 추진력, 산업지역으로서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강조하며 자연발생적 군집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특성은 주로 산업발전의 초기에 있거나, 산업집적지가 아직 형성되지 못한 개발도상국의 산업정책이나 지역발전정책에 적합하고, 발전주의 국가처럼 공공부문 주도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정책추진이 가능한 국가의 산업경쟁력과 산업집적지 발전의 초기-중기 단계 정도에 있는 지역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클러스터정책은 지난 20여 년 동안 지역의 산업발전과 인재정착에 상당한 기여를 했으며, 수천 년을 이어온 중앙집중적인 경향을 제한하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국이며, 세계화, 블록화시대에 글로벌 네트워킹과 산업경쟁력도 상당히 높다. 이제는 개발도상국 시기의 지역특화발전을 지향하는 클러스터 정책에서 졸업할 때이다.
지역의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시혜에 의지하는 클러스터 정책에 의지하기보다는, 수도권에 대항할 수 있는 임계치를 구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공공이 지원은 하지만, 민관 파트너십에 의한 협력적 거버넌스에 기반한 기업-정부-연구기관-시민사회-환경의 구축, 장소성과 장소의 위신(prestige)를 강화하는 물리적, 문화적 환경, 서비스업과의 융합을 강조하는 혁신지구의 구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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