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창생, 고향사랑 기부제 등 일본 정책 가져다 쓰기
최근에 지역이나 농촌정책에서 일본의 제도나 개념을 가져다 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방소멸, 지방창생, 고향사랑 기부제, 관계인구 등 요즘 나오는 개념이나 정책들이 그런 것들이다. 경제·산업·금융정책 등은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이후 별로 배울 것이 없다고 해서 참고하는 사례가 드물다. 그러나 지역이나 농촌정책 분야에서는 유독 일본의 정책이나 제도를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물론 인구감소, 수도권 집중, 농촌쇠퇴 등에서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와 우리의 문제가 유사하기 때문에 일본의 정책대응이나 실패한 정책도 참고할 점이 있다. 그러나 최근의 동향은 도를 넘어선 감이 없지 않다. 유독 농촌정책이나 인구감소위기 문제 대응에 일본의 정책을 가져다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최근 일본이 '지방소멸 대응' 이라던지, '고향사랑 기부'라던지 자극적이거나 대중 감정에 호소하는 정책을 쓰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뭔가 획기적인 것을 바라는 우리 정책당국자들에게 잘 어필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이 이와 같은 한건주의, 포퓰리즘적인 정책에 호소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은 최근 들어 종합적인 시각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지역 격차나 농촌문제에 정면 대응하는 분위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점점 일본을 닮아가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90년대 이후 일본은 대도시 우대 정책으로 전환
일본의 국토 및 지역정책은 1990년대 이후 크게 전환했다. 그 전만 해도 일본의 국토종합계획은 지역 간 격차 시정에 초점을 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자주적, 내발적 발전이란 명목 아래 지역 간 경쟁을 부추기고 격차를 용인하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당시 일본이 당면한 경기쇠퇴와 국가경쟁력 약화, 막대한 재정적자 등이 이런 전환의 배경이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 정부는 낙후지역에 대한 지원을 대폭 삭감하고, 성장 및 구조개혁을 중시하여 대도시권 발전을 더 우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 지방은 쇠퇴하고 도쿄 집중은 더 심화하고, 낙후지역은 인구감소로 소멸 위기에 빠지는 총체적 지역 위기를 낳게 됐다.
이런 위기에 직면하여 어쩔 수 없이 자민당과 아베(安倍)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지방창생, 지방소멸대책, 고향납세제, 컴팩트 시티 등의 정책이다. 그렇다고 이 정책들이 기존의 지방경시, 격차용인, 시장중시의 정책 기조를 획기적으로 바꿨다고 볼 수 있는가.
관변에서는 그렇다고 하지만 양식있는 학계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새로운 중앙주도의 성장우선주의, 국가관리적인 경쟁주의로 변모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또 지방창생, 고향납세제 등 아베 정부의 대표적인 지역정책은 무늬만 그럴듯하고 실효성이 낮은 정책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지방창생 실시 이후에도 도쿄 집중 지속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많이 회자하는 일본의 지방창생제도의 예를 보자. 지방창생제도는 일명 '로컬 아베노믹스'라고 불리는 일본 지역 및 인구감소 대책의 핵심적 정책이다. 이 정책의 요체는 지역별(광역 및 시군별)로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지역판 창생전략을 수립하면 지역 간 경쟁과 중앙의 심사를 거쳐 중앙정부가 지방창생추진교부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 정책이 인구감소와 낙후지역 지원 대책이 되려면, EU의 지역정책처럼 가장 낙후지역에 더욱 많은 지원이 돌아가도록 설계되어야 하지만, 실제 선정된 결과를 보면 경쟁력 있는 선진 지역은 더 후한 지원을 받고 경쟁력이 없는 불리지역을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방창생 계획이 지역 간 격차 문제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이다.
더구나 지방창생 계획은 인구대책에 치중한 정책이다. 이 덕분에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지방으로부터 인구 유출을 억제하고 도쿄권의 인구를 지방으로 이주시키기에 적당한 '인구댐'으로서의 지방중추도시 육성 정책으로 귀결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인구감소로 지방소멸이 가장 걱정되는 곳은 낙후 농촌지역이 아닌가? 아베정부의 지방창생전략은 사실 본말이 전도된 정책이다. 실제로 2014년 지방창생정책이 실시된 이후 현재까지도 도쿄 집중은 계속되고 도쿄권의 인구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일본의 지방창생계획과 마스다(増田寛也)의 지방소멸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벤치마킹하는 것이 학자들의 자랑이고 국책연구소의 업적이 되고 있다.
고향 사랑 기부금에 대한 우려
2023년 새해부터 고향 사랑 기부금제도가 시행된다. 지방에서 가장 큰 관심사 중에 하나이다. 고향 사랑 기부금제도는 일본의 고향납세제도를 약간 수정한 제도로, '개인이 자신의 고향이나 응원하고 싶은 (농어촌) 지자체(현 거주지 외)에 기부하면 기부금에 대해서 중앙·지방정부로부터 세제혜택(세액공제)와 함께 기부 받는 지자체로부터 답례품(지역특산물)을 받는 제도'다. 10만 원까지는 기부금 전액이 환급되고 10만원이 넘는 기부금에 대해서는 16.5%가 세액공제 된다. 한 해에 500만 원까지만 기부할 수 있다.
일본과 달리 무제한 세액공제를 억제하고, 답례품 경쟁도 일정 제한을 두었으며, 대도시의 지방세를 농촌 시군에 이전하는 매커니즘이 아니라, 국세를 감면하여 지방으로 재원을 이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돈은 기부하면 세액공제를 받고 답례품도 받는다는 기본 골격은 일본의 고향납세 제도와 대동소이하다.
재정이 열악한 농어촌 지자체들은 고향사랑기부제가 도입되기만 하면 당장에 세수가 증대되고 지방의 문제들이 해결될 될 것이라고 제도를 환영하고 있다. 또 지역을 자주 찾고 지역 생산품을 소비하는 관계인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과연 그럴까.
그간 십수년 간의 일본의 경험을 보면, 답례품이 너무 큰 인기를 끌다 보니 본연의 취지는 어디로 가고 고향세를 기부하면 답례품을 받는 제도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지역에 기여하는 관계인구, 협력인구의 확대보다는 이 제도에 참여한 도시 납세자의 대부분은 답례품에 더 관심이 많고, 오히려 인기 답례품을 내놓는 지역으로 기부금이 몰렸다.
그 결과 인구가 많거나 지역산물이 다양한 지역이 경쟁력이 있고, 정작 재원이 필요한 지자체에는 기부되지 않고 있다. 반면에 기부를 유치하기 위한 과다한 행정비용의 증대로 적자를 보는 지자체도 상당한 정도에 이르고 있는 것이 일본의 경험이다.
고향사랑 기부제는 재정분권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고, 경제적 효율성도 없다. 즉, 고향사랑 기부제가 추구하는 지역 간 재정력격차 완화, 지역경제 활성화의 목표달성은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이다. 대신에 답례품 경쟁, 부패위험, 기부금 모집 및 세금공제의 행정절차를 위한 사회적 비용 등의 부정적 요인이 더 크다.
지방과 대도시의 격차시정, 인구감소지역의 재정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정통적이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대도시 주민들이 내는 세금을 낙후지역에 이전하는 북유럽식 수평적 지방재정 조정제도를 도입하거나, 낙후지역에 대한 중앙정부의 교부금 비율을 높이는 방법이다.
일본의 자민당과 아베정부는 이미 구조개혁을 통해 낙후지역에 지원하던 교부세를 대폭 삭감하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정면 대응하기보다는, 중앙정부의 역할을 방기하고 고향 납세제란 인기 영합 정책을 통해 민간 및 지방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고향사랑기부제의 가장 큰 딜레마는 정책수단이 반드시 정책목적에 부합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즉,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재정격차 완화 등 정책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보다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지지부진한 제2차 재정분권, 즉 국세와 지방세 비중을 8대 2에서 7대 3으로 개혁하는 데 더 주력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당면한 과제가 아닐까?
지역문제 해결은 어렵고 쉬운 답이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 정권에서 내세웠던 정책을 뒤집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외국의 이런저런 제도와 정책을 가져다 쓰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지역정책은 이런 한건주의나 인기영합정책 보다는 종합적이고, 효과를 따져 꼼꼼하게 설계된 정책이 실험되고 쌓여가야 한다. '베끼기'식이 돼서는 정말 해답이 없다.
■ 필자 소개
박경 교수는 내발적 발전론과 지역산업정책을 연구해 왔으며, 한국공간환경학회 및 한국지역정책학회 회장, 목원대학 금융경제학과 교수 및 도쿄대 경제학부 객원연구원, 멜버른 대학 경제발전·지리·인류학부 초빙강사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농촌지역의 내발적 발전과 지역리더육성, 지역순환경제의 실천을 지향하는 지역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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