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글로벌 문제들은 거의 모두 미중 경쟁과 얽혀있으며, 우리 한국은 빠르게 그 한복판으로 들어가고 있다. 미중경쟁과 얽힌 우리의 현 상황을 보자.
- 우리 한국은 미중 양국의 기술 전쟁터가 되고 있다. 그들은 우리 반도체와 이차전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거기 미국의 인플레감축법(IRA)이 있다.
- 미국은 한중 접근을 과도한 밀착이라고 본다. 그러나 미국 자신은 노회한 양면전략으로 중국시장 접근의 세계 선두에 서 있다.
- 우크라이나 전쟁에 한국의 무기공급설이 튀어 나오자 러시아가 펄쩍 뛴다.
- 부상하는 동아사아의 한국, 일본, 대만, 호주는, 사실상 중국경제와 동조한다.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지역인 것이다.
글로벌 격변에 대한 인식이 빈약하면 '장기판의 말' 신세를 면할 수 없다. 대외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 한국에 소중하지 않은 해외 시장은 없다. 미국-서방도, 중국-러시아도, 모두 중요하다. 그들 양측은 서로를 겨냥하면서도 실리를 챙기는데 여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한국도 실리를 위한 곡예는 불가피하다.
미 백악관은, 중국의 부상을 돕는 날개들을 모두 정리하는 게 전략적 과제다. 동아시아 전략도, 우크라이나 전략도 대전제는 중국 압박이다. 우리 한국은 그동안, 세계에서 중국시장을 가장 잘 활용해온 나라다(대만 제외). 지난 30년 무역 흑자가 7099억 달러에 달한다. 언제나 한중 협력에 경고를 날리던 미국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 등을 미국으로 옮겨가기를 원한다(우리의 전체 반도체 수출 중에서 중국 수출이 60%를 넘는다). 요컨대, 지금 우리는 피 튀기는 실리 전략을 수행해야 하는 지점에 서 있는 것이다.
미, '금세기 유일한 도전자는 중국'
우크라이나 침공 50여일이 지나자, 미 CIA 국장 윌리엄 번스는 미국의 전략 목표를 이렇게 공개했다. '중국은 이번 세기의 유일한 주요 지정학적 도전자다.’ 미국의 21세기 최대 전략 목표가 중국임을 분명히 하고, 우크라이나 전략도 중러 협력을 차단하려는 중국 압박 전략의 일환임을 밝힌 것이다.
그러면, 중러 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첫째,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을 성공적으로 촉발했다고 본다. 미국과 서방이 냉전종식 선언을 무시하고, NATO의 동진정책을 확장시키며 의도적으로 전쟁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전략은, 이 분쟁으로 러시아 국력을 소진시키고 중러 협력을 무력화하여, 향후 더욱 거세질 미중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한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둘째, 미국이 취할 다음 전략에 주의하고 있다. 지금은 대만 문제가 튀어 올라와 있지만, 미중 경제협력을 감안할 때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다. 그보다 중국은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 문제를 심각하게 본다. 다음 전략이 ‘인종적 공격’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유의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중국인권연구회는 보고서 '반아시아 인종차별 급증, 미국 인종차별 사회의 본질'을 발표했다(2022.4.15.). 이 보고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핵심 쟁점인 동부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에 대한 인종 공격을 주목한다. 그리고 앵글로 색슨 백인들의 편견을 주목한다.
미국에서 중국인 박해와 관련된 역사적 사례는, 1840년대에 발생했다. 최초로 미국으로 이민 간 중국인 철도노동자들이 박해를 당한 사건이다. 그들은 차별 대우 속에서도 근면과 검소로 대단한 호평을 받았으나, 경쟁을 의식한 백인들로부터 거친 공격과 학대를 받았다. 이윽고 미 정부는 중국인 이민을 금지하는 인종차별적인 ‘중국인 배척법’을 제정했다. 이민 국가인 미국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 일은 130년이 지난 2012년 미 의회가 공식으로 사과했다.
중국에 대한 서방의 기본적 인식과 태도에는 중국 경시의 흐름이 깔려 있다. ‘중국은 손쉽고 방대한 시장이며, 서방의 말 잘 듣는 하청공장’이라는 환상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 보고서는, 이런 역사적 경험과 더불어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잇단 아시아인 공격 사건과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 학대 사건 등을 연계하여 관찰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식이 중러 양국의 결속을 더욱 강하게 함은 물론이다.
미-중-러 3국은, 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 기존 제국주의 세력들을 누르고 떠오른 나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들 3국의 관계 변화는 세계질서 전반에 충격적인 영향을 미친다. 갈수록 선명해지는 흐름은 ‘미중 경쟁과 중러 협력’이다. 유일하고 영원한 세계 제국을 꿈꾸는 미국에 중러 양국의 협력은 만만치 않은 걸림돌이다.
중국, '진정한 친구도, 진정한 적도 없다'
아무리 거센 파도도 해변에 이르면 잦아든다. 지금 미중 양국이 일으키는 치열한 경쟁의 파도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아직은 이 파도가 잦아들 때가 아니다. 긴 안목의 전략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의 경쟁이 가치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전쟁과 파멸을 피하는 길로 통할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경쟁이 거칠고 험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름다운 파도로 보이기도 한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는 패권 다툼을 피투성이 ‘전쟁’이 아닌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접근한 적이 없다. 다행히 지금 미중은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세계사를 실험 중이다(현실적으로 보면, 사실 미중 군사적 충돌은 불가능하다). 즉, 지금 우리 인간들은 지나간 역사의 터널을 뚫고 동서양이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역사적 초입에 서 있는 것이다.
미중 양국의 속내를 보자. 바이든이 내세우는 세계전략이 미국 지상주의의 지속을 위한 중국 압박이라면, 중국의 지상과제는 미국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 다원화된 세계 질서를 꿈꾸는 경제발전이다. 중국은,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진정한 적도, 진정한 친구도 없다’는 것을 외교의 대전제로 삼고 있다. 거기에 ‘친미나 반미는 전략이 아니다’는 실리 원칙도 들어있다. 이런 전략에는, 중국 문명이 지난 200년 동안 겪은 참혹한 위기에 대한 자기반성과 경각심이 녹아 있는 것이다.
미국의 압박 vs 중국의 개방
지난 연말에도, 중국 정부는 ‘미중관계를 정상화하고, 러시아와의 협력을 심화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주도면밀한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중국은 우리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호주 등 서방의 친미 동맹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중시한다. 최근에는 한한령 해제 소식도 들린다. 이들 국가는 최근 30여 년 동안, 대중국 무역 흑자 1, 2, 3위 국가들이며, ‘친미혐중’에 가장 앞장선 국가들이다. 모두 미국과 함께하는 나라들이지만, 미중 양국의 눈치를 보는데 이골이 난 나라들이다.
미중 양국이 벌이는 경쟁의 모습은 현란하다. 3연임을 확정한 시진핑은, 중간 선거를 마무리한 바이든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났다. 긴 악수로 회포를 대신한 두 사람은, 그동안 막혔던 양국 간 국방회담, 통상회담, 재무회담을 잇달아 열었다. 천문학적 협력과 치열한 대립으로 얽힌 양국의 어지러운 경쟁 관계는 수시로 만나 계산기를 두드려보아야 한다(미중 전성시대인 것이다). 다가올 미 대선에서 ‘반중국 쇼’는 더욱 거칠어질 것이고, 그 사이 때때로 긴장을 조절하며 계산하는 것이다.
바이든을 만난 다음, 시진핑은 사우디로 날아갔다. 그리고 중동 17개국 정상들과 석유 회담에 집중하며, 중동에 중국 시대를 여는 기초 작업에 몰두했다. 미국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장기 과제, 위안화 직거래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이런 시진핑의 행보에 대해, 바이든은 대리전쟁에 앞장 선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를 초청하여 응수했다. 미 의회에서 젤렌스키가 '미국의 지원이 부족하다'고 외치자, 미 의원들이 빵 터졌다. 그 웃음 속에 기축통화국의 위용과 여유, 그리고 날카로움이 들어있음을 유의할 일이다.
미국, 새로운 기회를 잡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바이든 정부는 나름 커다란 기회를 잡았다. 서유럽을 비롯한 서방을 동맹전략으로 묶는 한편, 러중 압박을 여러 갈래로 추진한다. 한편으로는, 우크라 무기 지원 지속, 서방의 러시아 재산 동결, 러시아 은행들의 SWIFT(국제은행간 결제 시스템) 배제 등으로 초강수 제재를 단행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만해협 긴장과 함께, ‘칩4동맹’, 반도체 공급망 단절 등으로 옥죈다. 이런 미국의 압박은, 중러 양국은 협력의 가속 페달로 응수한다. 러시아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과 발전된 과학기술, 여기에 중국의 시장과 자본이 손을 잡는 것이다. 편협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실리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한시도 양측의 움직임을 놓칠 수 없다.
중러, 협력의 구조적 변화
이제 중러 양국의 협력은 그 구조적 틀이 변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다음 공세와 최악의 상황에 대처하려는 것이다. 먼저, 러시아를 보자. 서구 기업들이 철수하면서 중국과의 수출입이 긴요해졌다. 중국의 자본과 기업 유치도 중요해졌다. 특히 인프라와 물류, 5G 기술 협력이 중요하다. 중국과 협력으로 디지털 경제에서 유럽을 따라잡는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군수 분야에서도 중국과의 협력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양국의 신뢰가 축적된 것이다.
중국 입장은 어떤가? 무엇보다 러시아는 식량과 에너지를 공급받는데 중요하다. 거대하고 비옥한 러시아 땅에 자본과 노동력으로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천연 가스, 석유 및 광물 등을 놓고도, 양국은, 새로운 글로벌 전략을 짜고 있다. 인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과 미국과 맞서는 글로벌 협력망 구축을 착수했다. 러시아와의 무역과 투자는 대폭 늘고 있다. 2022년 양국 무역은 30% 이상 증가했다.
주목되는 것은, 러시아와 함께 강 달러에 대비하는 대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무제한적인 발권력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다. 미국 채권(TB)을 매각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거의 2000억 달러의 미 채권을 매각했지만 미국은 별 손실이 없다.
하지만, 중국이 집중하는 인민폐 디지털화는 다르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어서 미국 달러가 주도하는 SWIFT 결재가 필요 없다. 위안화 직거래도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확장 중이다. 시간이 걸리는 과제들이다.
중러, 과학기술 협력의 최근 변화
중러 양국은 과학기술 협력도 구조적 변화를 착수했다. 지정학적 요인과 산업 보완성이 뒤를 받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기술 경쟁의 정치화, 무기화로 확산되는 상황에 대응하는 의미도 적지 않다.
양국은 거의 모든 분야를 국가주도로 발전시켜온 나라들이다. 과학기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뒤늦게 출발한 중국과학원은 구소련과학원을 벤치마킹하여 문을 열었다(1949.11). 이후 과학기술 협력은, '소련과학원'과 '중국과학원'의 관계가 주축을 이루었다. 그리고 우여곡절과 파란을 거쳐, 새로운 협력 시대를 맞이했다. 1990년대 초, 러시아는 구체제 붕괴의 악몽을 털어내고, 중국은 시장경제의 길을 택한 참이었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최근, 양국의 협력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양국은 ‘하이테크 혁신 실무그룹 제13차 정기회의’를 온라인으로 개최했다(2022.6.9). 회의는 중러 과학기술협력위원회가 주관하고, 양국 총리가 비디오 링크로 참석했다. 주요 협의 분야는, 탄소 균형 모니터링, 생명 공학, 과학기술 정보교환 및 북극 과학 연구 등이었다.
양국 무역에서, 중국의 대러시아 수출 중에 반도체와 프린트 기판 수출이 크게 증가하자(중국 해관총서, 2022,1-5), 미 상무부는 곧바로 중국 IT 기업 5곳을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2022.6). 러시아군 지원이 이유였다. WSJ은 ‘중국의 대러시아 부품·원자재 수출액 증가는 많은 중국 기업이 러시아와 거래를 지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전반적으로 볼 때, 군사 기술 분야에서 러시아는 중국에 앞서 있다. 육상 기동 탄도 미사일을 비롯하여, 핵잠수함 기술, 핵전력 기술,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탄도 미사일 방어 기술 설계 등은 세계적 수준이다. 장거리 전략 폭격기, 대형 추력 액체 로켓 엔진, 대형 추력 항공 엔진, 대형 헬리콥터 등의 분야에서도 선진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러시아의 선진 기술과 중국의 풍부한 자금 여력이 양국 협력의 토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양국의 과학기술 협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기서는 주로 최근 대내외 메스컴에 공개된 것들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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