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 조사에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내란 세력들로부터 내란음모죄라고 하는 없는 죄를 뒤집어썼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논두렁 시계 등등의 모략으로 고통당했다"며 "이 분들이 당한 일이 '사법리스크'였느냐"고 말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 대표는 10일 오전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오전 경기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앞마당에 도착해 "사법리스크가 아니라 검찰 리스크였고 검찰 쿠데타"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지지자들, 취재진 앞에 서서 이날 미리 준비해온 종이를 꺼내들고 약 10분에 걸쳐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헌정사 초유의 현장 그 자리에 서있다. 오늘 이 자리는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검찰 공화국의 이 횡포를 이겨내고 얼어붙은 정치의 겨울을 뚫어내겠다"고 조사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이 대표는 "소환 조사는 정치 검찰이 파놓은 함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특권을 바란 바도 없고 잘못한 것도 없고 피할 이유도 없으니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했다.
이어 "오늘의 검찰 소환이 유례 없는 탄압인 이유는 최초의 헌정사상 최초의 야당 책임자 소환이어서가 아니"라면서 "이미 수 년 간 수사를 해서 무혐의로 처분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서 없는 사건을 만드는, 없는 죄를 조작하는 사법 쿠데타이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성남시장으로서 성남시에 기업들을 유치해서 세수를 확보하고 일자리를 만든 일, 성남 시민구단 직원들이 광고를 유치해서 성남 시민의 세금을 아낀 일이 과연 비난받을 일이냐"면서 "이렇게 검찰이 공권력을 마구 휘두르면 어느 지방자치단체장이 기업 유치를 하고 적극 행정을 해서 시민 삶을 개선하고 도시를 발전시키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성남시 소유이고 성남시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성남 FC를 어떻게 미르재단처럼 사유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면서 "성남FC 직원들이 광고 유치하면 세금을 절감해서 성남시 성남 시민들에게 이익이 될 뿐이지 개인 주머니로 착복할 수 있는 구조가 전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어 검찰을 향해 "셀 수 없이 많은 검찰에 의한 사건 조작이 있었다"며 고(故)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 사건에 이어 조봉암 사법살인 사건,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그동안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하다가 이제 권력 정권 그 자체가 됐다"고 맹비난했다.
이날 이 대표의 검찰청 출두에는 박홍근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와 동료 의원 40여 명이 총출동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상당수 몰려온 데다가 국민의힘, 보수진영 지지자들도 반대 시위를 위해 대거 운집하면서 성남지청 앞마당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지자들은 "이재명 절대 지켜" "김건희를 구속하라" "최은순을 구속하라"라며 이 대표 응원 구호와 함께 정권 비판 구호를 번갈아 외쳤고, 반대 시위자들은 "이재명 변명하지 마" "가서 반성해"라고 비난전을 펼쳤다.
이 대표가 10시 36분께 취재진 앞에 서자 지지자들 간 대치는 더욱 극심해졌다. 고성이 계속 오가자 이 대표는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며 "쉿"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윽고 소란이 차츰 잦아들자 이 대표는 품 속에서 종이를 꺼내 10여 분에 걸친 긴 입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문 낭독을 마친 이 대표는 '경찰이 무혐의로 결론 지은 사건에 대해 검찰이 재수사를 요구한 의도가 있다고 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검찰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있다. '답정기소'"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진실은 법정에서 가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검찰에게 진실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건 의미가 없다"면서 "충실하게 방어하고 진실이 왜곡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마지막으로 당 지도부와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조사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 대표가 장고 끝에 결국 이날 검찰의 소환 조사에 응하면서, 민주당 지도부는 검찰 조사의 부당함을 강조하며 격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 원내대표는 이 대표 검찰 출두에 앞서 국회에서 진행된 원내대책회의에서 "독일 나치와 조선총독부가 국민을 겁박할 때 내세운 것도 법치였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제1야당 현직 대표를 검찰로 소환한 정권은 우리 헌정사에서 처음"이라면서 "겉으로는 법치 운운하지만, 그 실체는 윤석열 대통령의 정적을 제거하고 야당을 탄압하려는 무도한 철권 통치에 다름없다"고 했다.
그는 "성남FC와 적법한 계약을 맺은 기업들은 합법적으로 광고비를 지급했고, 이미지 제고와 실질적인 홍보 효과도 얻었다"며 "윤석열 정권이 성남FC 건을 묻지마식 야당 탄압 수단으로 삼는다면, 어느 지자체도 자유로울 수 없고 어떤 기업도 지역사회 공헌을 더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권이 사정의 칼날을 빼드니, 여당도 덩달아 야당 죽이기에 합세했다. 여당 지도부의 한 의원(송언석)은 '야당 대표가 구속되면 국민의힘 지지율이 10% 오른다'는 검은 속내를 서슴지 않고 드러냈다. 윤석열 정권과 여당이 공조해 '야당 탄압'을 기획했다는 '자백'"이라며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를 저격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도 "윤석열의 검찰이 경찰에 재수사를 지시해서 결론을 바꿨다. 명백한 야당 탄압"이라며 "윤석열의 검찰은 제1야당의 당 대표에게는 인디언 기우제 지내듯 없는 먼지까지도 몰래 주머니에 채워 넣고 털어대면서 왜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증거가 차고 넘침에도 불구하고 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는지 답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혹자는 윤석열 정부를 전두환의 잔인함과 이명박의 사악함과 박근혜의 무능함을 모두 갖춘 정부라고 한다"며 맹비난했다.
다만 이날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이 대표의 검찰 출석에 동행한 데 대해선 일부 의원들과 당 원로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전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지금 이 행위는 그 '방탄 프레임'을 더 공고히 해 주는 것"이라면서 "지금 임시국회를 열어도 방탄, 뭘 해도 방탄. 그럼 그때마다 우리는 이거 방탄 아니라고 알리바이를 대야 되는데 그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이날 불교방송(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떻게 느끼느냐, 저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생각한다"면서 "이재명 대표가 한 번쯤은 나 혼자 가겠다 그러니까 아무도 오지 마라. 이렇게 한번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시는 것도 저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투 트랙으로 갔었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의 문제와 당의 문제는 애당초 처음부터 분리를 했었어야 하는데, 그게 그동안에 6개월 동안 잘 안되지 않았느냐"면서 당과 이 대표 사법리스크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오늘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양해를 구할 건 양해를 구하고 그렇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며 이 대표의 공개 사과를 재차 촉구하기도 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 역시 한국방송공사(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우르르 몰려가서 거기서 무슨 시위하는 식으로 하는 스타일의 것은 정치를 너무 '오버'하는 것"이라면서 "타이밍에 맞춰서 정말 토끼가 세굴 파듯이 그때부터 사태 변환을 잘 꾀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여당에서는 이 대표에 대한 철저한 검찰 조사를 촉구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개인적으로 저지른 문제인데 왜 민주당이 총출동해서 위세를 부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주 원내대표는 "제1당의 위세와 힘으로 수사를 막거나 저지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건 법과 팩트의 문제이지, 다수가 위세를 부린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이날 이 대표의 검찰청 출두 현장에는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윤상현 의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윤 의원은 현장 발언을 통해 "이 대표의 검찰 조사가 철저히 이뤄져서 반드시 사필귀정의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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