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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에 MZ세대는 없다

[장성관의 202Z] ⑧ 미국의 2030은 왜 투표장으로 몰려가나

"미국에서 MZ세대라는 말 정말 쓰나요?" 

한국에 계신 분들께 많이 받는 질문이다. 명확하게 답변하기에는 항상 장황한 설명이 뒤따른다. '밀레니얼'과 'Z세대'라는 용어는 있지만, 한국처럼 "MZ세대"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 MZ세대는 콩글리시로 언젠가부터 우리 일상에서 많이 듣는 말이 됐지만, 이제는 '차세대' 또는 '청년'과 같이 실체가 불분명한 단어로 변질된 것 같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1년부터 1996년 사이에 태어났고, Z세대는 1997년부터 2012년 사이 태생인데, 크게 31년이나 차이 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부르는 건 무리가 따른다. 정작 당사자들도 자신들을 그렇게 지칭하는 일이 굉장히 드물다.

이 두 세대를 구분하는 경계는 그들의 성장과정에 있었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다. 미국에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가르는 단일 사건으로 9/11 테러로 꼽을 수 있다. 대다수의 Z세대는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테러 사건을 너무 어린 나이에 경험해 기억이 뚜렷하지 않은 반면 유년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경제대침체를 겪고, 청소년기에 급증한 총기 난사 사건을 경험하며 자랐다. 학교에서 총격 사건 대비 훈련을 정기적으로 받은 첫 세대인 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17세 소년 트레이본 마틴과 18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무고하게 죽었고, 전국에서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라는 구호 아래 인종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또 Z세대의 많은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고등학교나 대학교 졸업식을 제때에 치르지 못했다.

한 세대는 이런 공통 경험과 이에 따른 사회적 문제를 공유하기 때문에 앞선 세대와는 구분된다는 생각으로 묶인다. 그러나 단지 나이가 비슷하다고 수천만명의 사람들을 일반화하거나 재단할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Z세대 미국인들의 정치 성향은 굉장히 다양하다. 지난 2022년 중간선거에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29세 이하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하여 민주당의 선방을 이끌었지만, 이 연령층에 속하는 당적과 무관한 중도층 (independent) 그리고 보수 성향의 유권자도 그 세를 무시할 수 없다.

트럼프와 함께 등장한 20대 보수…임신중지권 보장·총기 규제 등에 '맞불 시위'

미국 정계에는 "젊어서 공화당을 지지하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나이 들어 민주당을 지지하면 머리가 없는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정치 성향이 대체로 낮은 연령대일 수록 진보적이고 중년에 가까워지면서 더 보수적이 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의 급부상과 함께 보수 성향의 20대들이 대거 등장했다. 특히, 1993년 생의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 (Charlie Kirk)가 이끄는 '터닝포인트USA' (Turning Point USA; 이하 TPUSA) 라는 비영리단체는 2012년 설립 이후 지난 10년간 유례없는 속도로 전국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캠퍼스 지부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자체 추산으로 전국 2900개 이상의 학교에 학생 지부가 있다고 한다.

찰리 커크는 TPUSA와 관련된 정치활동위원회를 이끌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학생들 (Students for Trump)"의 대표도 역임하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짧은 동영상을 통해 젊은층의 이목을 끄는데 특히 유능한 커크는 자유시장경제 등 기존 보수 이념적 입장 뿐 아니라, 코로나19 백신 의무화 반대와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 등 트럼프와 MAGA 진영의 메시지에 발 맞추고 있다. 정기적으로 전국 캠퍼스 투어를 열어 자신의 입장에 반대하는 "좌파 (Leftists 또는 Liberals)"들로 부터의 질문과 토론을 언제든 환영하는 그는 소셜미디어에 최적화된 컨텐츠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

TPUSA의 연례 최대 행사 "학생 행동 서밋 (Student Action Summit)"에는 차기 유력 대선 후보이자 플로리다 주지사인 론 디샌티스, 텍사스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 최연소 연방 상원의원 조쉬 홀리 등이 특별 연사로 참여하고 있다. 그 외에도 TPUSA의 연중행사에 마조리 테일러 그린 (Marjorie Taylor Greene)과 로렌 보버트 (Lauren Boebert) 연방 하원의원 등 MAGA 진영의 떠오르는 인물들이 연단에 오른다. 이 자리는 각자 트럼프의 이념에 얼마나 가까운지 입증받고자 하는 등용문과도 같은데, 이번 2022년 중간선거에서 가장 근소한 차이로 당선된 보버트 의원은 12월 중순 TPUSA의 한 지역행사에서 "테일러 그린 의원은 케빈 매카시의 차기 하원의장 출마를 찬성하기 때문에 더이상 MAGA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TPUSA 네트워크는 학생들을 단순히 캠퍼스 상에서 트럼프의 지원사격대로 활동할 수 있게 돕는 것을 넘어, (그들이 생각하기에) 진보진영에서 이끄는 임신중지권 보장 시위, 총기 규제 시위 등에 맞불 집회를 주도하도록 이끌고 있다.

또 2020년 여름 위스콘신에서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시위대에 총격을 가한 17세 소년 카일 리튼하우스 (Kyle Rittenhouse)의 소송비용 모금, 2019년 1월 링컨 메모리얼에서 아메리칸 원주민을 조롱한 의혹을 받았던 고등학생 닉 샌드먼 (Nick Sandmann) 옹호 등 총기 소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빚고 첨예한 대립을 낳는 일들에 개입하고 있다. TPUSA는 소셜미디어 포스트를 통해, 핸드폰 화면 상에서도 또 그 바깥세상에서도 활발히 움직이는 준-활동가들을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20대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닌 '더 나은 내일'

평소 투표참여율이 가장 낮은 편이었던 20대와 30대 유권자들은 지난 2022년 중간선거에서 이례적으로 열띤 참여를 보였다. 지난 글에서도 다뤘듯, 이 배경에는 기후위기 대응 단체 '해오름행동' (Sunrise Movement), 총기 규제 강화 활동 단체 '우리의 삶을 향한 행진' (March for Our Lives) 등 진보 성향의 청소년과 20대 청년들이 이끄는 단체들이 있다. 이들은 기후위기와 교내 총격 난사 사건으로 부터의 위협을 다른 연령층 보다 더 직접 경험하며 살고 있다. 정치적인 입장은 TPUSA에 열광하는 동년배들과 정반대에 위치해 있지만, 이들의 비전에는 분명 공통점이 있다. 현상태 (status quo)와 기존의 제도에 안주할 수 없으니 대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대척점에 서있는 버니 샌더스와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 어느정도 교집합이 존재하는 것 또한 같은 이유다. 이들에게 이념보다 중요한 것은 더 나은 내일이다.

1960년대 인종차별 제도 철폐 운동과 민권운동을 이끌었던 것도, 1970년대 반전운동을 이끌었던 것도, 1980년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운동과 인종 격리 정책 (apartheid) 반대 운동을 이끌었던 것도 모두 당시 20대 초반 대학생들과 그 또래였다.

참여 민주주의 실현과 인종 평등과 빈부격차 해소를 목표로 "민주 사회를 위한 학생들 (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이 1962년 창립과 함께 발표한 포트 휴론 성명서 (Port Huron Statement)의 일부를 아래에 전한다. 이 성명서는 2011년 월가 점령 시위 (Occupy Wall Street Movement) 등 이후 60년간 미국 전역 다양한 시민운동에 영감이 되었다.

"보통 이상의 편안함 속에 태어나, 이제는 대학에 머물며, 물려받은 세상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우리는 이 세대의 사람들이다.

우리는 대부분 안일함 속에서 어른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성장하면서 무시하기에는 너무나도 비통한 사건들이 우리의 편안함 속으로 침투했다. 인류의 2/3가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사이, 우리 사회의 상류층은 과잉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흥청대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시급한 마음이 충만하지만, 현재 실현가능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주는 메세지다. 정치인들의 안심시키는 말투와, 미국이 '헤쳐나갈 것' 이라는 일반적인 의견, 그리고 미래를 향한 마음을 닫은 이들의 정체 (stagnation)의 기저에는 그저 대안이 없다는 생각과 이상사회 뿐 아니라 새로운 출발들이 다 소진된 것을 우리 시대는 이미 다 지켜보았다는 느낌이 만연하다.

각자가 옆 사람의 무관심을 볼 수 있기에 변화를 위한 움직임에 우리 모두가 망설이고 있다.

이상사회와 희망의 감소야 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 생활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 중 하나다. 의회의 교착상태는 가능성을 향한 사람들의 시야를 좁힌다. 이상적인 것은 종말주의적이고 망상적이라고 한다. 반대로 웅대한 열망을 갖지 않는 것을 굳은 마음을 가진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도달 불가능한 것을 찾는 것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최악을 피하고자 함이다."

▲미국의 젊은 세대들이 주도해서 활동하고 있는 기후위기 대응단체 '해오름 행동'의 미 의사당 앞 집회 모습. ⓒSunrise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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