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임신중지약'으로 알려진 유산 유도제 미프진의 국내 도입이 무산됐다.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를 요구해온 시민단체들은 "보건당국이 국민 건강과 안전을 방치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7월 미프진(국내 제품명 미프지미소)의 수입의약품 품목허가를 신청했던 현대약품이 지난 15일 해당 신청을 자진 취하했다고 16일 발표했다. 그에 따라 식약처도 미프진에 대한 허가심사 절차를 종료했다.
발표에 따르면 식약처는 "신약(미프진)의 심사기준에 따라 안전성·유효성, 품질자료 등에 대한 일부 자료보완을 요청"했고, 이에 현대약품 측은 "일부 보완자료는 기한 내 제출이 어렵다고 판단해 품목허가 신청을 스스로 취하"했다. 다만 식약처는 현대약품 측에게 요구한 구체적인 자료보완 사유에 대해서는 "업체의 개별 품목과 관련된 정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그간 여성계는 '먹는 임신중지약'으로 불리는 유산유도제의 합법화 및 상용화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지난 2017년, 23만여 명이 동의한 '낙태죄 폐지'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청원인이 밝힌 요구사항도 낙태죄 폐지 및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였다.
이후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선고했으나, 임신중지를 둘러싼 구체적인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임신중지 의약품의 거래 및 유통 등은 여전히 불법으로 남아있다. 이에 올해 6월엔 '미프진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지난 8월엔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20여 개의 전국단위 여성·인권단체들이 모여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모임넷)'를 출범, 미프진 등 '유산유도제의 도입 및 접근성 확대'를 중심으로 △임신중지 관련 의료행위에 건강보험 적용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 체계 구축 △신중지를 위한 종합 정보 제공 시스템 마련 등을 촉구했다.
모임넷 측은 16일 식약처의 발표 직후 성명을 내고 "식약처는 현대약품의 자진철회를 핑계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라며 "소위 '혁신 제품'은 제약산업 육성이라는 기조 아래 미비한 자료 수준에도 신속 허가하면서 매년 수만 명이 필요로 하는 유산유도제는 자료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허가를 반려한 이유가 무엇인가" 되물었다.
"60여 개 국가에서 자료를 탄탄하게 쌓은 유산유도제를, 안전성 자료 미비라는 이유로 허가를 반려해온 것은 분명한 식약처의 책임"이라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2019년을 기준으로 75개의 국가에서 미프진의 사용을 허가했고, 세계보건기구(WHO) 또한 지난 2005년 이미 미프진을 '임신중지를 위한 한 방법'으로써 공인한 바 있다. WHO는 또한 유산유도제를 '필수핵심의약품'으로 분류해 각 국가에서 미프진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도록 권고하고 있기도 하다.
단체들은 현대약품 측에도 "유산유도제 도입 무산 이유를 소상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현대약품은 다양한 여성전용 제품을 내놓으며, 늘 여성들의 건강 문제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밝혀왔다"며 "그동안 쌓아온 여성친화 제약회사라는 이미지가 거짓이 아니었다면, 현대약품은 여성건강 보호에 필수적인 의약품에 식약처가 요구했던 보완자료가 무엇이고, 자료가 제출되지 못하여 도입이 무산된 이유는 무엇인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약품은 지난해 3월 2일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내셔널(Linepharma International)'과 미프진의 국내 판권 및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 미프진의 국내 제품명을 ‘미프지미소(Mifegymiso)’로 명명하면서 유산유도제 상용화의 첫발을 뗐다.
당시 현대약품 주식에 대한 여성 소비자들의 '가치소비'성 매수가 이어질 만큼 여성계의 호응 뜨거웠지만, 식약처의 이번 발표로 2년 가까이 화제가 돼온 현대약품의 미프진 국내 도입 시도는 결국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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