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나달지 가오'
'나달지 가오'
'나달지 가오'
울부짖는 소리가
깊은 밤 어둠을 찢었다
밤별들이 파르르 얼어붙고
곤히 잠들었던 산모롱이가 으스스
몸을 떨었다더라
흙구덩이에 묻히러 가면서
짐짝처럼 묶여 실린 트럭이
나서 자란 신작로에 들어서자
당숙은
자기 마을 모퉁이에 대고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더라
전남 나주군 세지면 동창교 양민학살
136명,
전남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 양민학살
153명,
전남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덕룡산
동박굴재 양민학살
28명,
전남 나주시 봉황면 용전리 지동마을 양민학살
6명,
보도연맹 희생자들 미상
살인자들은
세지면과 월야면은
국군 제 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
중대장 권준욱(권준혁, 권영구)대위일행,
봉황면은
나주경찰서 특공대원일행,
지동면도 경찰일행
1960년 5월 24일자 전남일보 기사에
세지면에서
살인자들은 환영하는 부락민들을 모아
학살하였고
유부녀, 처녀를 가르지 않고 능욕하였다
거부하는 처녀를 단검으로 죽인 후
시간을 하였다고 보도 되었다
당숙은
보도연맹에 들어 있다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흙구덩이에 묻히셨다는데
쉬쉬하는 수십 년 세월에
'나달지 가오'
'나달지 가오'
비명소리만 태어나고 자란 산천에 남겼다더라
나주 영산포 가야산 바람은
이렇게 불어싼다는 것이다
'나달지 가오'
'나달지 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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