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와 접촉한 가습기살균제 성분물질이 폐에 도달해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정량적으로 입증한 연구결과가 최초로 나왔다. 해당 연구를 수행한 연구진은 가습기살균제 성분 노출과 폐 손상 사이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고 기업에 무죄를 선고한 법원의 판단이 재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경북대,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진과 작년 4월부터 공동으로 진행한 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메틸이소치아졸리논(CMIT/MIT, CMIT와 MIT를 3:1로 섞은 혼합물) 체내 분포 특성 연구 결과를 8일 발표했다.
연구 결과 호흡기에 노출된 CMIT/MIT는 호흡기 전체에 빠르게 분포하고, 비강-기관지-폐를 통해 폐까지 도달함이 확인됐다. 또한 기관지와 폐에 자리잡은 CMIT/MIT는 최대 일주일까지 남아있었으며, 그로 인해 폐 손상과 관련 있는 염증성 사이토카인 등이 유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확인됐다.
즉 호흡기가 가습기살균제로 쓰이는 CMIT/MIT에 노출되면 해당 물질이 폐까지 도달할 수 있으며, 이는 폐 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을 높인다는 결과가 확인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연구진은 방위성 동위원소가 표지(標識)된 CMIT/MIT를 실험용 쥐의 비강과 기도에 노출시킨 후, 방사선 영상기법을 통해 폐까지의 이동경로를 시각적으로 확인했다.
또한 연구진은 CMIT/MIT에 노출된 실험동물의 기관지폐포세척액을 분석한 결과, 폐 염증 및 섬유화 지표가 노출 농도 의존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확인했다. 이와 같은 실험으로 연구진은 CMIT/MIT의 인체 내 이동 경로 및 위해성을 모두 확인해 냈다. 기관지폐포세척액이란 실험동물의 기관지 및 폐포 분비물을 생리식염수로 세척해 세포 성분과 액상 성분을 채취하는 기법에 사용된다.
기존에도 CMIT/MIT가 포함된 가습기살균제에 호흡기가 노출되면 폐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긴 했으나, 일부 연구에서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오는 등 상반된 해석이 이어졌다. 인체 위해성에 대한 인과관계가 명확히 판단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다른 가습기살균제 성분과 CMIT/MIT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는 이유가 됐다.
실제로 가습기살균제 물질 중 하나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은 동물 흡입독성 실험에서 명백히 위해성이 입증돼, 이를 제품에 사용한 '옥시' 신현우 전 대표는 업무상 과실치사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SK케미칼, 애경 임직원 등에 대해 법원은 작년 1월 무죄 판단을 내렸다. CMIT/MIT가 호흡기 하부 질환인 폐 손상이나 천식을 일으켰다는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당시 법원의 판결은 위해성에 대한 인과관계와 실험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한 판결이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이번 연구결과를 발표한 연구진들은 논문 마지막에 "법원 판결에서는 현재까지 CMIT/MIT 노출과 폐 손상 사이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명시했다"라고 언급하며 "그러나 본 연구에서 얻은 CMIT/MIT 생체분포 및 독성에 대한 결과를 고려할 때 이러한 결론은 재고되어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CMIT/MIT의 생체 내 분포 및 독성에 대한 정량적 연구결과를 명확하게 제시한 연구가 나왔으므로 법원 판결의 논리 또한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관련 소송은 검찰의 항소로 작년 5월부터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피해자 단체들은 옥시, 애경 본사 및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이어오고 있다.
CMIT/MIT가 호흡기를 통해 폐로 전달돼 폐 손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정량적으로 확인한 첫 연구결과는 국제 환경학술지인 <국제환경지>(Environment International)에도 등재되어 연구의 신뢰도를 인정받았다고 국립환경과학원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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