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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미국서 봇물 터진 노동운동…"살아서 퇴근하고 싶다"는 미국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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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미국서 봇물 터진 노동운동…"살아서 퇴근하고 싶다"는 미국도 마찬가지

[장성관의 202Z] ⑤ 연방의회 보좌관, 아마존, 대학 조교·연구원 등 노조 설립…긍정적 인식 증가

"무제한의 유급 병가를 누리는 정치인들이 우리 대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365일 24시간 대기 상태로 지내야 하고, 격무로 지칠 대로 지쳤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철도기관사가 외쳤다. 지난 2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이 윌리엄 영국 왕자와 만나고 있던 케네디 박물관 앞에 200여명이 운집했다. 이들은 자칭 미국 역사상 가장 친노동적 대통령인 바이든이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을 막기 위해 지난주 밀어붙인 중재안에 불만을 제기했다. 이를 의식한 바이든은 이번 방문에 전 보스턴 시장인 노동부 장관을 초청했고, 인근의 국제전기노동자형제단 (International Brotherhood of Electrical Workers) 지부를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주 의회를 통과하고 바이든이 빠르게 서명해 즉각 법적 효력을 발휘한 이 중재안은 2024년까지 철도노동자들의 임금을 2020년 수준에서 24% 인상하고 향후 5년간 매년 1000달러의 상여금을 지급할 것을 골자로 한다.

美 철도 노동자들이 파격적 임금인상안을 거부한 이유는?

이 중재안은 지난 9월, 바이든과 마티 월시 (Marty Walsh) 노동부 장관이 노조 대표단과 철도 사업체 대표단 사이에서 협의를 끌어냈던 내용이다. 하지만 발표 이후 협상 참여 노동조합 총 12 곳 중 네 곳에서 반대했다. 이 네 조합은 이번 협상의 영향을 받는 12만5000여 명의 화물 철도 노동자 중 약 55%를 대표한다.

지난 1926년에 제정된 철도노동법 (Railway Labor Act)에 따르면 철도 산업의 노사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이 전국조정위원회 (National Mediation Board)를 설치할 수 있으며, 이 위원회에서 권고하는 중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노사는 60일간 냉각기간 (cooling-off period)을 가져야 한다. 이 동안 양측의 합의 사항을 제외한 모든 변화나 파업, 또는 파업이 필요한 상황을 사측에서 제공하는 것이 금지되는데, 기존 냉각기간이 끝나는 12월 9일까지 새로운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아서 철도 노동자들은 파업을 예고했다.

미국의 휴일이 집중된 연말을 앞두고 파업이 일어난다면 매일 20억 달러 규모의 경제 손실이 발생할 것이며 기름과 식·음료 등 필수 소비 품목의 공급망 위기가 초래되어 또 한 번의 물가 상승 위험이 있다. 바이든은 이를 경고하며 의회에 중재안을 강제 집행할 것을 요청했다. 96년 전 제정된 이 법은 연방의회로 하여금 주(州)의 경계를 넘는 철도와 항공산업에 한해 노사갈등을 해결할 권리를 부여한다. 즉, 전국조정위원회에서 권고한 중재안을 노사에게 의회가 강제할 수 있는 것이다. 의회는 1991년 4월 이 권한을 마지막에 행사했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표면적으로는 파격적인 임금 인상안으로 보이는 이번 합의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이번 분쟁의 본질이 단순히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시작된 이번 협상에서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쟁점은 병가 제도 보장과 근무 일정의 예측 가능성 향상이다.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에 많은 노동자가 다른 업계로 이탈했고, 적은 인력으로 팬데믹 기간에 발생한 운송일정과 수량의 급격한 변화를 감당해야 했다.

바이든이 서명하여 강제 효력이 발생한 이번 중재안에 포함된 유급 병가는 단 하루다. 노조 측은 기존에 총 나흘을 요구했다.

연방 의회는 지난 11월 30일과 그 다음날 관련 법안을 처리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재안의 강제 집행을 목적으로 하는 합동결의안 (joint resolution)은 하원에서 찬성 290표, 반대 137표로 가결됐고, 다음 날 상원도 압도적 찬성(80표)로 통과됐다. 반면 철도 노동자들에게 연간 7일의 유급 병가를 보장할 공동결의안 (concurrent resolution)은 하원에서 찬성 221표, 반대 207표로 겨우 통과됐지만, 다음 날 상원에서는 52표의 찬성으로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의원이 주도한 이 법안에 가장 보수적인 상원으로 꼽히는 테드 크루즈 (Ted Cruz), 조시 홀리 (Josh Hawley), 마르코 루비오 (Marco Rubio), 린지 그레이엄 (Lindsey Graham) 등 7명의 공화당 의원도 찬성표를 던졌지만, 상원의 가중다수결제도 (supermajority)가 요구하는 찬성 의결 최소선인 60표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연방의회 보좌관 노조, 아마존 노조, 대학 조교·연구원 노조 등…봇물 터진 노조 설립

2022년 한해 동안 미국에선 새로운 노동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났다. 연초 연방 의회 보좌관 노동조합 (Congressional Workers Union)이 설립되었다. 밤낮없이 근무하는 조건 속에서도 저임금 때문에 저소득층 대상 식품지원정책인 푸드 스탬프 프로그램에 의존해 연명하는 보좌관, 폭언과 성추행 그리고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보좌관 등의 속사정이 지난 연말부터 인스타그램으로 익명 공유되며 시작된 움직임이 올해 여름 하원 결의안 채택을 통해 공식적인 조합으로 인정되었다. 각 의원실 소속 노동자들이 투표를 통해 독립적 지부를 결성하며, 현재까지는 총 11개의 하원의원실 지부가 설립되었거나 절차를 밟는 중이다. 의회 보좌관 중 12%의 소득이 워싱턴DC의 생활임금 (living wage)에 못 미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지난 5월 역사상 최초로 연방의회 최저 연봉을 정하며 보좌관 노조의 행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정파를 떠나 의원, 보좌관, 전·현직 인턴들은 "다른 직종 보다 임금이 적으면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들만 남아 특권층 입장만 대변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강조했다.

비슷한 시기 뉴욕시 스태튼 아일랜드에 위치한 JFK8 물류센터에서 결성된 최초의 아마존 노동조합 (Amazon Labor Union)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의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번지고 있다. 아마존 물류센터에서는 화장실도 갈 수 없는 물류 처리량이 요구되며, 너무 쉽게 해고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또 산업안전보건청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 OSHA)에 보고된 이곳의 업무상 사고와 부상 발생률은 전국 평균의 3배를 웃돈다.

지난달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University of California) 시스템에 속한 10개 학교 전역에서 5만여 명의 조교와 연구원 등 직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미국 대학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노동 집단행동이다. 이들은 전미자동차노조 (United Auto Workers) 산하의 지부로 결성되어 캘리포니아 지역 실정에 맞는 최저 연봉 인상과 함께 보육 비용 지원, 유급 육아휴직 기간 연장, 대중교통비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파업에 참여한 복수의 대학원생은 학교 인근 지역의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대중교통으로 편도 2시간 이상 통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UC 리버사이드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한 학생은 연봉으로는 생활할 수 없어 헌혈 보상금을 벌기 위해 매주 두 차례 혈장을 헌혈한다고 전했다. 그가 이렇게 확보하는 추가 수입은 매달 200달러 수준이다.

2021년 12월에 첫 설립된 스타벅스 노동조합 (Starbucks Workers United)도 단 1년만에 전국 300개 매장에서 설립 투표가 진행되어 이 중 245개 지점에서 지부 결성이 가결되었고, 지난 가을 전국 동시 파업을 한 차례 진행했다. 델타항공의 파일럿 노조와 아메리칸 항공의 승무원 노조 또한 올해 대규모 파업을 경고했다.

업계와 직종이 달라 보여도 이들의 요구는 모두 같았다. 인간의 기본 존엄성을 지키며 일할 수 있게, 아플 때 쉬고 치료받을 수 있게, 그리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계획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돌봄을 제공해야 할 때 그 곁에 갈 수 있도록 노동환경을 개선해달라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급격하게 바뀐 물가와 소비활동 양태에 임금체계와 근무 환경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월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 붙은 포스트잇 메모지에는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라고 적혀져 있었다. 미국의 노동자들 또한 그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같은 바람을 나누고 있다.

팬데믹으로 심화된 양극화…달라진 민심

지난 1917년, 연방대법원은 철도와 항공산업을 "주 간 통상 (interstate commerce)"의 일부로 보고, 이를 규제할 권한은 미 헌법 제 1조 8항 3호에 근거해 연방의회에 있다고 판결했다. 당시 심사내용은 그로부터 1년 전 제정되어 주 경계를 넘는 철도 노동자의 일일 근무 시간을 최대 8시간으로 제한하고 그 외의 노동에 대해서는 추가 수당을 의무화한 애덤슨 법 (Adamson Act)의 합헌 여부였다. 사기업의 근무 시간을 연방법으로 규제한 최초의 사례였다.

애덤슨 법이 제정되기 불과 몇 주 전, 이 법이 시행되지 않는 경우에는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전국 40만 명의 철도 노동자들이 투표를 통해 결의했다. 이 파업을 막기 위해 우드로우 윌슨 (Woodrow Wilson) 당시 대통령은 의회에 빠른 법안의 통과를 요청했다. 106년이 지난 오늘과는 정반대의 정부 반응이다.

애덤슨 법의 제정 이후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요구로 1938년 공정노동기준법 (Fair Labor Standards Act; 주: 미 연방노동부의 표기방식에 따라 공정근로기준법이 아닌 공정노동기준법으로 번역)이 제정되어 최저임금, 주 40시간 노동 제한, 미성년자 노동 제한 등의 제도가 시행되었다. 기본적인 안전과 건강을 보장할 수 있는 업무환경은 이제 직종에 불문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제공되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은 "수면이 높아지면 모든 배가 떠오른다"라는 구절을 여러 차례 연설에 사용하곤 했다. 약자를 돕는 정책은 공동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지난 11월 중간선거를 통해 미 전역에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안건이 주민투표를 통해 통과되었다. 네브래스카의 경우 주 최저시급을 내년에 10.50달러로 인상하고 2026년까지 15달러, 그리고 그 이후에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인상한다는 주민투표안이 58.6%로 채택되었다. 수도 워싱턴DC에서는 투표 참여자의 74%가 팁 받는 근로자에 대한 법정최저 미만 임금을 폐지하는 것에 찬성했다. 이를 통해 노동자의 팁 소득 여부와 관계 없이 기본급을 최저 시급 이상으로 지불해야한다. 미시간은 이 제도를 이미 2023년 2월부터 폐지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2020년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네브래스카에서 58.5%의 득표율을, 미시건에서는 47.8%의 득표율을 기록한 만큼 이 지역에서 임금 인상 제도가 채택된 것을 단순히 지역의 정파성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일리노이에서 주민투표에 부쳐진 안건 중에는 노동자들이 임금, 시간, 그리고 업무 환경을 스스로 결정할 목적으로 조직하고 집단 행동을 할 기본 권리를 주 헌법에 명시하며 이런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법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안건은 58.4%의 찬성표로 통과되었다. 2022년 8월에 발표된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인구의 71%가 노동조합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65년 이후 가장 높은 지지율이며 지난 중간선거의 결과와 또 한 해 동안 새로 일어난 노동자들의 움직임에 대한 인식과 결을 같이 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소득의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높아지던 실업률에도 재택근무 또는 원격업무가 가능한 노동자들은 오히려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열띤 경쟁을 마주했고, 그렇지 못한 환경에 있는 노동자들은 일손 부족으로 인해 더 열악한 환경에서 더 높아진 강도의 업무를 수행해야만 한다. 우리 주변에도 직장에서 밥 먹을 공간이나 화장실 갈 시간 등 기본적인 필요를 해결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노동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2022년의 첫 9개월 동안 철도회사들은 210억 달러의 이익을 실현했다. 철도 노동자들에게 7일의 유급 병가를 제공하는데에 발생하는 비용은 연간 3억2100달러가 될 것이다. 그 이익의 단 1.5%밖에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아마존의 한 물류센터 앞에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는 노동자들. ⓒAP=연합뉴스

*202Z : 2020년대의 정치와 Z세대 정치를 다루겠다는 의미다. 202는 워싱턴DC의 지역 전화번호 앞자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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