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결국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민의힘의 완강한 반대에도 민주당이 의석을 앞세워 해임건의안을 단독으로 발의하면서 여야가 합의했던 국정조사도, 법정 시한을 불과 이틀 남겨둔 내년도 예산안 처리도 불투명해지는 상황이다. 다만 여야 원내대표는 다음달 1일 추가 회동을 예고하며 대화 창구를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민주당은 해임건의안에 대해 "결자해지 측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 장관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라면서 이 장관의 자진 사퇴, 윤 대통령의 파면 결정을 촉구했다.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뒤에도 자진 사퇴 혹은 파면 결정이 따르지 않을 시엔 탄핵소추안 카드를 꺼낸다는 방침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30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헌법이 부여한 권한으로 이상민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발의하고 이번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국가적 대참사의 충격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는 그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고 시간 끌기와 꼬리 자르기, 남 탓으로 뭉개고 있다"며 "이 장관이 직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국정조사와 경찰 수사가 공정하게 진행될 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더 이상 민심과 맞서지 말고 이 장관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형사적 책임과 정치도의적 책임, 행정적 책임을 분간 못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임건의안 가결 이후에도 본인이 자진사퇴하지 않거나, 대통령이 또 다시 거부한다면 부득이 내주 중반에는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이번 정기국회 내에 반드시 가결시켜 이 장관 문책을 매듭짓겠다"며 "이 장관과 여당 국민의힘에 지혜로운 판단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박 원내대표의 기자간담회가 끝난 후 위성곤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국회 의안과에 해임건의안을 제출했다.
해임건의안에 기재된 이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 사유는 △이태원 참사 당일에 상당한 인파 몰릴 것을 예상했음에도 피해 최소화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점, △재난 안전 관리 사무에 대해 경찰·소방에 대한 최종 책임자로서 참사 당일 긴급 구조 신고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점, ·국민의 재난 및 안전관리 총괄 책임자로 참사를 축소하고 책임 회피에 급급했던 점, △경찰 지휘 감독권자로서 이태원 참사 전반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함에도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가 일선 경찰 소방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 등이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전날 당 내 논의 후 해임건의안 제출 없이 곧바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했으나, 당초 계획대로 해임건의안을 먼저 제출하기로 했다.
이날 해임건의안 제출을 완료한 민주당은 다음 달 1일 본회의에 안건으로 보고한 후 그 다음날 본회의에서 표결로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은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되는 만큼 원내 과반인 169석을 가진 민주당은 단독으로도 본회의에서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민주당의 이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 영향으로 여야 예산안 심사 합의는 불발됐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 종료 직후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국회의장실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만나 내년도 예산안과 부수법안 등에 대한 협상에 나섰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40여 분 간의 대화 후 먼저 의장실을 나온 주 원내대표는 "합의가 안 됐다"고 짧게 결과를 발표한 뒤 별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박 원내대표는 "현재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심사 상황에 대해 서로 확인하고 논의한 끝에 12월 2일 오후 2시까지 여야 예결위 간사가 예산안과 관련해서 지금의 쟁점 사안을 해소하고 타결 짓기를 일단 촉구하기로 했다"며 "그때까지 간사들이 국회법에 따른 간사 협의 과정을 보다 신속하고 내실 있게 추진해달라는 요청을 동시에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양당 원내대표는 다음날 오전 11시 다시 회동을 열고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양당 입장이 좁혀질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은 예산안과 해임건의안을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연계 처리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 원내대표는 여야 회동 직후 연 기자간담회에서 "저희는 예산안 처리가 가장 우선"이라면서 "해임건의안 처리를 보류하고 예산안 처리를 먼저 하자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어 "(민주당 측이) 예산안은 예산안대로 하고 건의안은 건의안대로 하자는 건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주 원내대표는 간담회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예산안 단독처리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는 질문이 나오자 "불가능한 일"이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그런 예가 없었고, 삭감을 하고 나면 세입·세출이 맞지 않고 세입이 많이 남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예산 제도에 비춰봐도 맞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국회가 필요로 하는 예산 증액 없이 정부 원안에서 일방적 삭감은 사실상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고 일축했다.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문재인 정권에서 추진하던 사업이나 자신들의 대선 공약 사업도 정부 예산안에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삭감하고, 문재인 정권의 실패한 정책은 오히려 증액하는 등 예산안을 멋대로 칼질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숫자를 앞세워 힘자랑 하지 말고 예산안이 법정 기한 내에 통과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해임건의안 발의로 인한 국정조사 보이콧 여부에 대해선 "국회의장께 본회의를 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달했고, 해임건의안 진행 과정을 보면서 국정조사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다"면서 "해임 단계가 여러 단계이기 때문에 단계를 봐가면서 결정하겠다는 뜻"이라고 주 원내대표는 밝혔다.
대통령실·여당 "이상민 해임·파면? 국정조사 할 이유 있나"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이 장관 해임·파면 주장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주 원내대표는 간담회에서 "이미 국정조사 대상에 행정안전부 장관이 포함돼 있고, '국정조사 결과에 따라 책임이 있다면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런데 국정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파면을 주장하면 국정조사를 할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이 장관 해임건의안 발의에 대해 "어렵게 복원한 정치를 없애는 일이나 마찬가지"라며 "무엇보다 우리 국회는 극한 정쟁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어렵게 놓은 협치의 다리를 끊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의 자제를 거듭 촉구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도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가장 필요한 조사 대상으로 명시된 장관을 갑자기 해임하면 국정조사를 할 의사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이 고위 관계자는 "희생자의 억울함이 없어야 한다는 조사 본연의 취지에 (맞는) 국회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태원 사고 유가족과 희생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원인 규명과 합당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국회 국정조사도 그 본연의 취지에 맞게, 슬픔이 정치에 이용되지 않는 취지로 진행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장관 해임안 발의시 정부가 바로 국정조사를 보이콧할 것인지 묻자 "여야 간에 이미 합의한 사항이라 국회 결정을 존중한다"며 "어떤 변동이 일어나는지 또한 여야가 함께 논의할 사안"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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