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 중에 강신용(충남 연기 출신, 198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이라는 시인이 있다. 그의 시 중에 <바닥의 힘>이라는 것이 있는데, 심금을 울리기에 적당한 것 같아서 전문을 인용해 본다. “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은 안다 / 바닥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 바닥을 쳐 본 사람은 안다 / 바닥이 희망이라는 것을 // 바닥까지 갔다 온 사람은 안다 / 바닥은 힘이 세다는 것을” (강신용, 시와 에세이 <바닥의 힘> 전문)
‘바닥’은 가장 낮은 부분을 말한다. 골짜기에서 가장 낮은 평평한 곳, 땅에서 가장 낮은 곳, 그릇에서 가장 낮은 곳을 바닥이라고 한다. 가장 낮은 곳은 겸손한 곳이고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곳이다.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흐르는 것 같아서 예전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서 의미 분석을 해 보기로 하자. 아무튼 바닥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낮은 부분을 말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더 이상 내려갈 수 없기에 희망이 있고, 힘이 있는 모양이다.
늘 그렇듯이 사전적인 정의를 먼저 살펴 보고 어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도록 한다. 사전에 의하면 바닥은 “평평하게 넓이를 이룬 면”이라고 나타나 있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가장 낮은 부분이 아니더라도 평평하면 바닥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욕실 바닥’은 글자 그대로 평평하게 이룬 면을 말한다. 그렇지만 그곳도 욕실에서 가장 낮은 부분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양말바닥’은 어떨까? 이런 경우는 물체의 평평한 밑면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물체에서 가장 낮은 부분을 말하고 있음을 금방 인지할 수 있다. “태호가 이 바닥에서 발이 제일 넓어.”라고 할 때는 약간의 의미 변화가 있다. 이럴 경우는 일정한 지역이나 장소를 말한다. 그러므로 바닥의 기본적인 의미는 “평평하게 넓이를 이룬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손바닥’, ‘발바닥’ 등을 통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바닥’이라는 단어는 과거에는 ‘(손)바당, 손ㅽㅏ닥, 손ㅽㅏ독’ 등으로 나타났다. 원래 어근(語根)은 ‘받’인데, 여기에 ‘악, 앙, 옥’ 등의 접사가 붙어서 된 단어다. ‘받’은 장소(처소)의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바 소(所)’의 오래 전의 형태라고 본다. 그래서 받(밭, 田), 벌(原)과 근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밭이나 벌이나 모두 넓고 평평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바닥의 기본 개념은 넓고 평평한 것이며, 여기에서 파생되어 가장 낮은 곳이라는 의미로 확장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밑바닥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가장 낮은 곳에 처하는 비천한 삶을 말할 때 쓴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평평한 곳을 말하던 것이 점차 의미확장 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낮고 평평한 곳으로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예를 보면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계곡을 내리 흐르고 있었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저 집은 지붕부터 바닥까지 대리석을 지었구나!
와 같이 쓴다. 그러므로 요즘이 의미가 더욱 확장되어 ‘피륙의 짜임새(바닥이 고운 옷감이 필요하다), 감흙층 밑에 깔려 있는 굳은 층(지질)’이라는 의미가 부가되었다.
바닥가 대칭이 되는 말은 아니지만 반의어 성격의 단어로 ‘마루’가 있다. 흔히 마루라고 하면 ‘전통 가옥에서 방과 방 사이나 방 앞을 지면으로부터 높이 떨어지게 하여 널빤지를 길고 평평하게 깐 공간’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등성이가 진 지붕이나 산 따위의 꼭대기’를 이르는 말을 뜻한다. 한자로는 ‘마루 종(宗)’자를 말한다. 과거에는 ‘ᄆᆞᄅᆞ’라고 했다. 이 단어는 고대에 머리(頭)를 ‘맏’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 <계림유사>라는 책을 보면 “頭曰麻帝(머리를 마뎨[맏])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머리’의 어근이 ‘맏’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일이 되어 가는 상태가 한창인 단계나 대목, 치솟은 파도의 꼭대기’(고려대, <한국어대사전>)라는 의미까지 확장되었다. 예문으로는
서산 마루에 해가 걸려 있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이제 겨우 완성의 마루에 올라섰지만 앞으로가 문제다.(고려대, 위의 책)
와 같다. 이 외에도 ‘마루’는 “어떤 일의 기준이 되는 것, 어떤 사물의 첫째”라는 의미도 있다.
하나의 단어가 세월을 흐르면서 여러 가지 의미를 더하기도 하고 또 축소되기도 한다. 이것이 언어의 역사성이다. 과거에 어떤 의미로 시작하였는가를 알고 지금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단어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언어는 생물처럼 생성, 성장, 소멸하는 성질이 있다. 그러므로 언어는 역사성과 사회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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