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짝수년도마다 연방 선거가 치러져 연방하원 전체 435석과 연방상원 의석(100석)의 3분의 1이 투표 대상이 된다. 이중 4의 배수가 되는 해에는 대통령선거도 함께 치러지며, 올해처럼 대선이 포함되지 않는 연방 선거를 중간선거 (midterm election)라고 부른다. 대통령의 4년 임기 중 정확히 가운데 시점에 치러지기 때문이다.
중간선거는 대선 이후 유권자들이 정치적 의사를 전국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첫 기회라서, 대개 대통령이 속한 여당 (in-party)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1934년부터 여당이 연방의회 내에서 의석을 추가하거나 다수당 지위를 지킨 경우는 단 세 번으로, 모두 미국 역사에서 이례적인 상황 속에 치러진 선거였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네 번의 임기를 지내며 대공황과 2차대전 속에 미국을 이끈 FDR (프랭클린 델러노 루즈벨트) 대통령의 첫 번째 중간선거 (1934년), 탄핵소추 기각 이후 동정 여론을 선거 승리로 연결했던 빌 클린턴 대통령의 두 번째 중간선거 (1998년), 그리고 9/11 테러 이후 치러진 조지 부시 대통령의 첫 번째 중간선거 (2002년)가 바로 그렇다. 나머지 중간선거에서는 여당이 양원에서 평균 두 자리 수의 의석을 잃었다.
이번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첫 중간선거도 부정적인 경제 인식과 역사적으로 낮은 지지율 상황에서 민주당의 큰 패배가 예상됐다. 때문에 하원 공화당 지도부는 "레드 웨이브" (red wave; 빨간색은 공화당을 상징하는 색깔이다)가 전망되어 한껏 고무됐고, 선거 두 달 전부터 차기 의회 회기 첫날에 발의할 법안, 상임위 사·보임 계획,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인 헌터 바이든 (Hunter Biden)의 비리 조사 특위 설치 등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11월 8일 선거의 결과는 한껏 부푼 공화당의 기대를 김빠지게 할 만큼 실망스러웠다. 13일 현재 오히려 상원에서는 민주당이 의석을 추가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하원에서는 총 21개 지역구의 선거 결과가 아직 확정되지 않아 공화당의 다수당 지위 탈환 가능성마저도 불확실하다.
트럼프로 향하는 패배의 책임…일각에선 정계 은퇴 주장까지
보수진영에서는 바로 손가락질이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있다. 심지어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이 이끄는 <폭스뉴스(FOX News)>와 <월스트리트저널 (Wall Street Journal)>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비판의 수위를 점차 높이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낙승을 한 플로리다 주지사인 "론 디샌티스가 공화당의 새로운 리더"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도 게재했다. 공화당 미시간주 위원회는 이번 선거 결과 분석 문건을 통해 "트럼프에게만 기대는 자격 미달의 후보들이 당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지원 유세에 열정적이었던 윈섬 시어스 (Winsome Sears) 버지니아주 부지사는 TV에 출연해 "유권자들은 다른 지도자를 원한다는 뜻을 비쳤고, 트럼프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언제 물러날 지도 알아야 한다"며 트럼프의 정계 은퇴까지 주장하고 있다.
실제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가 공개 지지한 후보들은 대부분 낙선했다. 사실상 무투표 당선되거나 공화당 후보의 당선이 확실한 지역을 제외하고, 경합지역만 두고 봤을 때 트럼프가 출마를 물밑에서 종용하거나 경선 과정에서 힘을 실었던 주지사 후보 9명 중 6명, 연방 상원의원 후보 11명 중 5명, 연방 하원의원 후보 11명 중 7명이 패했다. 게다가 부정선거 음모론을 전면적으로 주장하며 각 주 주무장관 (Secretary of State; 연방 국무장관의 직책과 명칭은 같지만, 국가를 대표해 외교를 담당하는 국무장관과 달리 각 주에서의 주무장관은 내무부장관 격으로 그 주의 선거 집행과 관리 및 각 면허와 자격증 발급 등의 업무를 관장한다)에 출마한 친트럼프 성향의 후보들은 모두 낙선했다.
이들이 본선거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강경우파 또는 친트럼프 성향의 공화당 후보들의 경선 통과를 위해 민주당 측에서 전례 없는 수준으로 TV 광고 송출 등 막대한 자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선거에서 비교적 상대하기 수월한 후보를 밀어주는 전략은 공화당 입장에서 위험한 도박이었지고 결과적으로 민주당에 도움을 줬다. 워싱턴 3 지역구의 경우, 서류미비자 구제에 꾸준히 찬성하는 온건보수 제이미 헤레라 버틀러 (Jaime Herrera Beutler) 의원이 경선에서 트럼프의 지지를 등에 업은 후보를 상대로 낙선한 뒤 본선에서는 34세의 마리 글루젠캠프 퍼레즈 (Marie Gluesenkamp Perez)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 지역구는 10년 넘게 공화당이 모든 선거에서 우세했던 곳이다.
경합주에서 트럼프가 지지한 후보들의 성적을 살펴보니…
2022년 중간선거는 그 전의 연방 선거와 다른 점이 많아서, 전국적인 패턴을 분석하는 것보다는 최소 각 주 단위로 나누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트럼프 지지 후보들의 성적이 저조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대통령선거에서도 주요한 지표가 되는 경합지역 네 곳의 공화당 후보의 성적은 현재 트럼프의 입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일각에서는 현직 프리미엄에 의해 주지사 후보들은 재선에 성공했고, 상원에 도전하는 후보들은 어려운 지형에서 선거를 치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주의 투표용지에는 같은 당 후보들이 같은 칼럼에 나열되어 있으며, 대다수 유권자들은 칼럼 가장 위에 나온 후보를 찍은 뒤 그대로 쭉 내려가며 투표한다. 이런 패턴에도 불구하고 각 투표 대상 별로 다른 당의 후보를 선택했다는 것 (split-ticket voting)은 그만큼 특정 후보에 대한 반대 의사가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중간선거를 통해 트럼프 대항마로 떠오른 디샌티스
플로리다의 경우 디샌티스 주지사의 선거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단순히 재선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지난 2018년 선거 당시 득표율에 비해 거의 10% 포인트를 추가했고,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이 이긴 지역에서도 우세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공화당이 수년간 공략해왔으나 함락에 실패했던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Miami-Dade County)에서도 득표율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 선거에서 디샌티스 주지사는 차기 유력 대선후보로서 입지를 굳혔다. 또 플로리다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저이자 그가 2016년 공식 거주지로 등록한 마러라고 (Mar-a-Lago) 리조트가 있는 곳이다. 대선 경선은 물론이고 러닝메이트 선정에 있어서도 출신 지역 안배를 중요시 하는 미국 정치에서, 같은 주에서 두 명의 대선 후보가 나오는 것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이목을 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게다가 선거 며칠 전 유세 연설 중 디샌티스 주지사에게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붙이며 그에 대한 경계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한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었다면, 그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후일로 예정했던 2024 대선 출마 발표를 앞당겨 즉흥적으로 선언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에 그는 개표 현황을 지켜보며 주변 사람들에게 크게 분노를 표현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Truth Social)를 통해 연일 디샌티스에 대한 조롱과 부정선거 음모론을 쏟아내고 있다.
트럼프의 2024년 대선 도전 실패? 결론 내리기엔 이르다
공화당에서는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이번 선거의 결과를 전적으로 트럼프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까? 미치 맥코널 (Mitch McConnell)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몇 달 전부터 이번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들을 평가하면서 "후보들의 자격" (candidate quality)이 공화당의 상원 다수당 지위 탈환 가능성에 염려 요인이라고 불평한 바 있다. 또 2022년 여름 대법원의 판결로 더 이상 보호되지 않는 여성의 임신중지권리(재생산권리)가 선거에 끼치는 영향을 공화당이 과소평가했던 것도 전략 실패의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사람들은 원망할 대상이 필요하고 그 인물이 현시점에서 트럼프가 된 것뿐이다.
트럼프의 정치 입지는 급격히 또 확실히 좁아졌다. 하지만 이를 트럼프 대선 가도의 빨간불이라고 결론 내리기는 아직 너무 이르다. 즉흥적이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트럼프가 어떻게 다시 지지세력을 굳힐 지는 알 수 없다. 설령 본인이 2024년 공화당 경선 과정에서 우위에 서지 못하더라도, 그는 조용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공식적인 출마 선언은 아직 없지만, 2024년 대선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고 이제는 트럼프와 디샌티스가 어떻게 서로를 상대할지가 대결 구도에서 관건이 될 것이다.
트럼프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때가 온다해도 트럼피즘은 쉽게 떠나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페이팔 공동 창립자이자 실리콘밸리 거부인 피터 티엘 (Peter Thiel)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낙선한 애리조나 상원의원 후보 브레이크 마스터스 (Blake Masters)나 현재 약 1000표 차이로 재선 확률이 미지수인 로렌 보버트 (Lauren Boebert) 하원의원, 그리고 상기에 언급한 다수의 인물과 같이 트럼프라는 인물에 기대어 선거를 치른 후보들은 대다수 낙선했지만, 트럼피즘을 매개체로 사용해 유세 활동을 펼친 맷 게이츠 (Matt Gaetz) 그리고 마저리 테일러 그린 (Marjorie Taylor Greene) 하원의원들은 무난한 재선에 성공했고 당내에서 후원금 모금을 통해 당내에서 본인들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트럼프 없이도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는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미국 정치와 사회 흐름은 급변하고 있다. 2016년 트럼프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왔던, 제도권에 비판적인 신규 백인 유권자들을 대거 유입시켜 순식간에 정치 지도자가 된 것처럼, 스테이시 에이브럼스 (Stacy Abrams) 전 조지아주 하원의장이 2018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며 투표 참여에 회의적이었던 저소득층 흑인 유권자들의 세력을 결집해 진보 진영의 새로운 스타가 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2022년 경합지역에서의 민주당 후보들의 선방을 가능케한 Z세대 신규 유권자들과 같은 새로운 정치세력을 발굴하고 이끄는 인물이 다음 대선에서 승기를 잡을 것이다.
이번 주로 예고된 트럼프의 2024 대선 출마 연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필자 장성관은 보스턴대학 반인종연구센터 펠로우, 미주한인유권자연대 사무차장, 미국 민주당 청년전당대회 대의원을 지내며 VICE News와 The Star-Ledger 등에 기고했다. 연설문 작성, 정책개발, 커뮤니티 연대 협력 등에 관해 자문을 제공하고 소수자 정치력 신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202Z : 2020년대의 정치와 Z세대 정치를 다루겠다는 의미다. 202는 워싱턴DC의 지역 전화번호 앞자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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