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지는 마음을 안고 며칠을 보냈다. 불행한 사고가 다시 되풀이되게 할 수 없다는 그 수많은 다짐과 분투가 무색하게도 차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또 일어났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마주했을 때, 견딜 수 없는 상실의 고통과 두려움은 곧 그 이유를 찾게 된다. 영문을 모르는 죽음으로 남겨서는 이 비통함을 가눌 수 없기 때문에, 오로지 슬퍼하기만 하라는 애도는 이 죽음이 진정으로 슬프지 않은 자들의 통치방식이다.
우리는 다시 이 무참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그 시간은 또한 참사를 일으킨 구조와 과정을 드러내고, 책임을 묻는 시간이어야 한다. 나아가서는 그 구조와 과정을 변혁하는 방안을 공론화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애도가 모든 에너지를 총동원하여 상실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때,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애도의 윤리이자 본질이다.
참사가 발생한지 일주일을 넘기면서 10월 29일 그 밤의 일들이 불가항력적이거나 우연적인 '사고'가 아님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른 저녁부터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시민들의 수많은 신고전화에도 불구하고, 제자리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적절한 명령을 내리지 못했던 경찰 지휘부와 지자체 책임자들, 그리고 환자들의 원활한 처치와 후송을 가로막은 응급의료체계 조정 역량의 미흡이 드러났다. 대규모 군중 밀집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법제도가 부재했던 것도 아니고, 인파 집중을 모니터링할 기술적 장치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행안부 장관과 총리는 국민 안전의 주무 부서임에도 책임회피에 급급하여 분노를 샀다. 대통령은 안타까운 희생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대신 날이 밝자마자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였고, 진상규명을 주도하는 대신 엿새째 영정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유가족도 없이 사찰과 교회에서 위로의식을 치르고 있다. 그날 이후로도 참사는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들만으로도 시민들은 이 참사의 책임이 정부와 지자체에 있다고 판단한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11월 4일 자 '"이태원 참사는 정부 책임" 73.1%…"이상민 사퇴 필요" 56.8%') 그러나 국가권력은 참사에 대한 막중한 정치적 책임을 모면하고자 탈정치화된 애도를 시도하고 있다. 그들에게 애도란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참사의 고통과 기억을 내면화하고, 이를 통하여 희생자들을 집단적으로 소거함으로써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툭툭 털고 일상을 회복하는, 국가가 정한 애도기간에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타자들을 잊고, 그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애도는 기본적으로 존중의 과정이다. 애도를 통해서 그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태원 골목에서 압사 당하기 전, 그들은 멀쩡히 걸어 들어갔다. 생명의 열정으로 빛나던 그들이 죽어서 돌아왔다면 우리의 애도는 바로 그 지점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참사의 구조적 원인과 그 과정을 공론화하지 않길 원하는 국가 독점 애도는 폭력이다. 폭력의 본질은 있는 그대로 두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사나 희생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모두에게 슬픔을 강요함으로써 시민사회 구성원들에게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무기력함을 불어 넣고, 다른 한 편에서는 '주최 측 없는 행사'였다는 변명을 통하여 그들의 책임을 시민사회에 전가하는,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다는 점에서 이 폭력은 희생자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국가권력은 분명 그들을 일부러 죽게 하지는 않았을 수 있으나 죽게 내버려 두었다. 적어도 이날 국가권력에게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은 반드시 '살게 해야'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것이 이번 참사와 관련된 국가의 근본적 통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이태원 참사의 근본 원인, 그 구조와 과정도 여기에 있다고 판단된다.
국가가 정한 애도기간은 이미 끝이 났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애도가 모든 에너지를 총동원하여 상실을 극복하는 과정이라면 국가권력은 애도 기간을 통해서 시민사회의 비판과 변화의 에너지가 소실되거나 다른 영역으로 옮겨가기를 의도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의 애도는 너무 빨리 끝나는 것이 아니었나! 세월호가 그랬고, 사업장에서의 다양한 중대재해, 그리고 많은 희생자와 유가족을 남겼던 참사들에서 그랬다. 국가권력은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생각한다. 애도는 잊는 과정이 아니라 기억의 시작이다. 애도는 국가가 정한 기간 동안만 수행하는 작업이 아니라 끝이 없는 과정이다. 그래서 애도는 죽은 사람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긍정이다. 우리는 희생자들에게 얘기해야 하고 희생자들과 함께 이야기해야 하고 희생자들이 이야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들보다 더 강력하고 힘있는 타자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애도는 에너지를 동원하여 타자의 상실을 극복하는 동시에 그 너머를 바라보는 에너지를 타자로부터 집결하는 과정이다.
바로 그 에너지는 이 참사를 일으킨 구조와 과정을 해체하고 이를 새로운 전망으로 구현하는 사회권력의 힘이어야 한다. 시민건강연구소는 이 애도를 지속하면서 참사의 구조와 과정을 보다 차분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변혁의 청사진들을 시민사회와 함께 구체화시켜 나갈 것이다. 그것이 변혁의 주체로서의 사회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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