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에 이어 DB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국내 금융사의 유동성 관리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DB생명은 오는 13일로 예정됐던 300억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조기행사권) 행사일을 내년 5월로 미루기로 지난 2일 결정했다. 300억 원 어치 빚의 변제일을 더 늦추기로 결정한 것이다.
곧바로 시장은 크게 술렁였다. 제2의 흥국생명 사태가 벌써 일어난 것 아니냐는 우려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3일 곧바로 관련 보도자료를 내 "DB생명과 투자자 간 쌍방 사전협의"가 있었고 "이번 결정은 조기상환권 행사 기일을 연기한, 즉 계약 세부 내용을 변경한 것이지, 조기상환권을 미이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DB생명의 신종자본증권은 국내 발행 물량으로 흥국생명과 사례가 다르고, 그 규모 역시 상대적으로 작아서 채권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고 금융당국은 강조했다.
시장의 두려움이 커지자 심리를 달래기 위해 관련 보도자료를 신속히 배포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당국의 대응이 결국 현 채권시장에 퍼진 공포를 반영한다. 레고랜드로부터 시작한 자금 조달 시장의 경색 기미가 흥국생명에서 심화한 가운데, '다음은 누구'냐는 우려가 시장에 널리 퍼졌다.
앞서 흥국생명은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 약정을 미이행하겠다고 밝혀 시장에 파문이 일어났다. 그간 외화 채권시장에서 신종자본증권은 만기 10년물의 경우에도 통상 5년이 지난 시점에서 금융사가 콜옵션을 이행해 왔다. 덕분에 주식 수준의 기대수익률을 올리면서도 채권의 안정성을 지닌 투자 상품으로 그간 여겨져 왔다.
그런데 흥국생명이 그간 관례적으로 이행된 콜옵션 행사 약정을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주도하는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자본 조달 비용을 높인 영향이 반영됐다.
흥국생명의 경우 급등한 금리를 반영해 새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빚을 갚으려면 연리 12% 수준의 금리를 지급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외에서 5억 달러를 마련해 빚을 갚자니, 높아진 금리 부담이 막대했다. 당초 흥국생명은 그 대안으로 3억 달러 어치 외화 영구채를 발행하고, 1000억 원은 국내 후순위채 시장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그러나 채권 시장 경색으로 인해 영구채 발행도 물거품이 되자, 조기상환이 어렵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따라서 앞으로 흥국생명은 액면 만기일에 조기상환 금리보다 훨씬 높은 약정 금리를 적용해 빚을 갚아야 한다. 현 기준금리 인상 상황을 고려하면, 차라리 약정 금리를 무는 게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내려진 셈이다.
국내 금융기업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이 행사되지 않은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지난 2009년 우리은행의 후순위채 사태 이후 13년 만에 처음 발생한 일이다.
레고랜드 사태 당시 지방 정부의 채권 약정도 믿지 못한다는 공포가 시장에 퍼졌듯, 이번에는 한국 금융기업의 약정 역시 신뢰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퍼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국내 채권시장의 흔들림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는 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번 사태와 관련 "지금 (금융) 시장은 나뭇잎 하나 땅바닥에 떨어져도 '다리 무너지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 굉장히 불안감이 크다"며 "국내외 채권시장이 (자금이) 급격히 말라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특임교수는 지금과 같이 자금조달 시장 경색이 이어지면 "채권시장에 (자금 조달을 특히) 더 의존하는 부동산업계, 건설업계"부터 불안감이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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