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부가 지난 29일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에 대해 한목소리로 애도의 뜻을 표했다. 국민의힘은 사고 규명 및 재발 방지 노력을 약속하는 한편 야당과의 협력을 다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고 수습을 위한 초당적 협력을 약속하면서도 정부 책임론을 함께 언급했다. 의료인 출신 정치인들은 사고 현장이나 인근 병원을 찾아 봉사에 손을 보태려는 모습도 보였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이태원 핼러윈 사고로 154명의 젊은이들이 귀한 목숨을 잃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 중상자 가족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고 수습을 위해 몸을 던진 소방관, 경찰관과 의료진 그리고 많은 시민들의 헌신적인 노고에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이어 "사고로 희생된 이들에 대한 혐오 표현, 낙인찍기가 SNS 상으로 번지고 있다. 경찰관, 소방관을 비난하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 유포가 시작됐다"며 "지금은 추궁의 시간이 아닌 추모의 시간이다. 슬픔을 나누고 기도해야 하는 시간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정부의 사고 수습, 원인 규명, 지원책 마련을 차분히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정 위원장은 "이런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책을 만드는 건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라며 "사고 원인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예방 조치에 어떤 게 있었고, 있었으면 취해졌는지 아닌지 정밀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예산국회에서 국가 사회 안전망을 전면 재검토하겠다. 안전 인프라를 선진국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방안을 찾고 예산을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태원 핼로윈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을 애도하고 명복을 빈다. 그 가족들과 마음의 큰 상처를 받은 국민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고 수습과 유사한 사건 재발방지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체의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정부의 사고 수습과 치유 대책에 전적으로 협조하기로 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필요한 협력은 요청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은 희생자들의 안돈(安頓), 유가족 여러분들의 위로, 사건의 수습에 만전을 기할 때"라면서 위로와 사건 수습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왜 다시 이런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는지, 앞으로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할지 당연히 사후 조치가 뒤따라야 하지만, 현재는 일단 수습과 위로에 총력을 다할 때"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도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책임을 다하는 공당"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제대로 완벽하게 지켜내지 못한 책임에 대해 깊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상처를 입은 국민이 이른 시일 내에 치유되고 마음의 안정을 회복하게 되길 바라며, 그렇게 되도록 민주당도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도 "정부 당국 역시 이 점에 집중해 '나는 책임이 없다, 할 만큼 했다'는 태도로 국민을 분노하게 할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국민만을 위하고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라는 자세로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는 데 집중하라"고 당부했다. 이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질책성 발언으로 읽힌다. 이 장관은 전날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저희가 파악하기로 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라며 "통상과 달리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관련 기사 : 이상민 장관 "경찰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 아냐" 발언 파문)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국회도 초당적으로 신속하게 협력하겠다"면서 "사고 수습과 희생자 추도 부상자 회복이 가장 급선무"라고 했다. 이어 "국회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를 내일 열어서 행안부장관과 경찰청, 소방청으로부터 참사의 경위와 수습 대책 관련 보고를 받을 예정"이라면서 "관계기관의 시급한 수습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과 국회를 대상으로 한 정부의 첫 공식 보고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비극적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정확히 규명하고 재발방치책을 마련하는 것도 국회가 해야 할 중요한 책무"라면서 "사전 예방 조치나 현장 안전 관리, 사고 초동 대처 등 미흡함이 없었는지 살펴서 국민적 의구심과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 최고위 일각에서는 정부에 대한 책임론도 일부 제기됐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그냥 길을 걷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면서 "막을 수 있었던 일 막지 못한 대형 참사, 인재(인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최 측이 없는 행사였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고는 재난안전법 제66조 1항을 언급했다. 해당 조항은 ‘중앙행정기관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역축제를 개최하려면 해당 지역축제가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지역축제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그밖에 안전관리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정 최고위원은 이어 "사과할 사람은 사과하지 않고 책임 있는 사람은 책임 회피성 말을 한다. 다시는 생때같은 목숨을 황망하게 잃지 않기 위해 참사 원인 철저히 밝히고 책임질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같은 유형의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 장관의 책임을 물었다.
여야 지도부는 이날 오전 회의 종료 후 희생자 조문을 위해 서울시청 광장과 녹사평 인근 분향소를 각각 찾았다. 여야는 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다음날인 11월 1일 열어 사고 관련 정부 현안보고를 청취하기로 상임위 간사 회동을 통해 합의했다. 현안보고에는 필수 현장요원을 제외한 소수 관계자만 참석하게 할 방침이다.
의사 출신 안철수·신현영 현장으로, 그러나…"무력감 절감", "안타까웠다"
정치인들 중에서도 의료인 출신 인사들은 직접 현장에 나가 구조·봉사에 손을 보태기도 했다.
자신이 재직했던 명지병원 재난대응팀과 함께 사고 현장을 찾은 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이날 교통방송(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의료 현장 대응이나 현장에서의 지휘 대응이나, 아무리 총력을 다 한다고 해도 이미 사망했고 이미 손상이 온 상황을 회복시키기는…(어려웠다). 너무 안타까운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신 의원은 당일 상황에 대해 "현장 접근도 어려웠고 통로를 확보하거나 깔린 사람들을 빼내는 데도 시간이 상당했다"며 "현장의 전문가들과 응급구조를 했던 분들 대부분이 '질식에 의한 외상성 심정지가 이미 온 상황이어서 소생 가능성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고 증언했다"고 전했다.
신 의원은 "이런 대형 압사사고가 발생했을 때 골든 타임을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다. 깔리는 순간에 구조가 되지 않으면 대부분의 골든 타임이 4분이라고 알려져 있다"며 "압사 대형 사고는 소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예방을 하는 방향으로 정부·국가의 대책이 있었어야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사고가 안 나도록 어떻게 예방할 것이냐에 대한 대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사건 현장을 보면 좁은 골목으로 (인해) 접근성에 한계가 있었고, 통제할 만한 사전 시스템이나 경찰의 역할이 보이지 않았다. 지자체 역할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역시 의사 출신인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에 “새벽에 순천향병원에 갔다. 소식을 듣자마자 의사로서 본능적으로 현장에 갔다"며 "의료인으로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찾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으나, '이런 사고의 경우 사고가 나자마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의료적으로는 돕기가 힘들다'는 의료진의 말에 무력감을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안 의원은 "지금 이 순간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참담하고 먹먹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다"며 "사고 수습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안 의원은 과거 코로나19 확산 당시 대구 동산병원에서 의료봉사를 했던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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