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김광제 선생의 국채보상운동 돌아보며 애국애족 정신 계승한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김광제 선생의 국채보상운동 돌아보며 애국애족 정신 계승한다

민주평통 보령시협의회 대구 기념관 방문 …평화통일 인문학 기행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보령시협의회원 및 포험 참여자들이 김광제 선생이 주도했던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둘러 본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프레시안(이상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충남 보령시협의회(회장 전윤수, 이하 민주평통 보령시협의회)가 29일 대구광역시 소재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방문하는 평화통일 인문학 기행을 실시했다.

이날 인문학 기행에는 민주평통 보령시협의회원과 평통포럼에 참여했던 시민 등 40여 명이 참여해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김광제 선생(1866~1920)의 동상에 헌화하며 선생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고,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등을 둘러봤다.

민주평통 보령시협의회가 국채보상운동의 배경과 발단이 된 대구를 방문하게 된 데는 이 운동을 주도했던 김광제 선생의 고향이 충남 보령이기 때문이다.

김광제 선생은 1866년 보령시 평리에서 태어났으며, 1905년 을사조약 당시 동래 경무관을 사임하고, 1906년 대구로 가 광문사를 설립한 후 국권회복을 위한 계몽운동을 하게된다.

김선생은 당시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빌려온 국채 1300만 원(당시 정부의 세입 총액이 1318만 원 상당)을 갚아야 하는 국운의 절박함 속에 1907년 1월 대구의 서상돈 선생을 비롯한 지인들과 함께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했다.

▲전윤수 민주평통 보령시협의회장(좌측)과 김정원 전 보령시의회 의장이 김광제 선생의 흉상에 헌화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 전의장은 마산에 있던 김선생의 유해가 보령 평리로 이장되자 묘역 정비사업이 끝날 때까지 예산 확보 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프레시안(이상원)

이 같은 업적에 대구광역시는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김광제 선생과 서상돈 선생의 동상을 세웠으며, 기념관에 자료 등을 전시해 관람객들에게 민족 정기를 세우는 계기로 삼고 있다.

이에 보령시도 김광제 선생의 묘역 정비를 마쳤으며, 동대 사거리에 동상을 세웠고,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의 기념사업회 조성 및 발전을 위한 중지가 모아지고 있는 중이다. 

이번 기행의 동행에는 임인식 보령문화지킴이 봉사단장(충남학 강사)이 이동 중인 차량에서 김광제 선생에 대한 대구광역시의 인식과 보령시민이 가져야 할 자세 및 김 선생 기념사업회 활성화와 필요성에 대하여 강의해 의미를 더했다.

임 단장은 "보령에서 김광제 선생의 동상에 헌화하고 인문학 기행을 한 것은 민주평통 보령협의회가 처음"이라며 "이번 계기를 통해 김선생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보령에 뿌리를 내려 계승·발전시킬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윤수 민주평통 보령시협의회장은 "보령의 애국지사이시며 독립지사이신 김광제 선생을 추모하고, 민족의 앞날을 개척하고자 펼쳤던 국채보상운동의 현장에서 선생과 같은 생각을 가져보게 됐다"고 말하고 "보령에도 반드시 선생의 기념사업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자"고 말했다.

한편 김광제 선생은 1920년 55세의 나이로 마산에서 순국·장례를 치뤘으나, 후에 유가족이 고향인 보령시 평리에 이장을 했다.

이후 김정원 전 보령시의회 의장(당시 보령시의원) 등의 관심과 예산 확보 노력으로 묘역정비를 마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이상원

프레시안 대전세종충청취재본부 이상원 기자입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