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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로 기후위기와 싸우는 '덕후'들..."죽은 지구엔 야구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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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로 기후위기와 싸우는 '덕후'들..."죽은 지구엔 야구가 없잖아요"

[인터뷰] 지속가능한 지구와 야구를 위해 싸우는 프로야구 팬 전지은 씨

"죽은 지구에는 야구가 없잖아요."

처음엔 굿즈였다. 기아 타이거즈 홈페이지에는 가지각색의 굿즈가 항상 올라왔다. 유니폼, 모자, 키링 등 매년 바뀌는 굿즈는 팬심을 저격하기에 충분했다. 2009년 기아 타이거즈 팬을 시작해 그 해 우승까지 맛본 기아팬 전지은(34) 씨의 마음도 흔들렸다.

"굿즈를 파는 곳에 들어가면 다 너무 예뻐서 가지고 싶어요. 근데 또 그렇게 계속 사다 보면 예쁜 '쓰레기'가 될까 봐 걱정이 되는 거죠."

지은 씨가 사랑하는 야구는 항상 '쓰레기'와 함께였다. 경기가 끝난 야구장은 급하게 떠난 관중들이 버린 쓰레기가 항상 한가득이었다. 분리수거도 되지 않은 채로 뭉쳐져 있는 쓰레기들을 볼 때 전 씨는 '이 많은 쓰레기들은 어디로 갈까' 생각했다. 쓰레기 매립장은 포화되고 있다는 소식은 매일 들려오는데 지은 씨가 사랑하는 야구장은 매일같이 쓰레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지은 씨는 키움 히어로즈 팬인 지인과 함께 'KBO FANS 4 PLANET'(지구를 위한 한국 프로야구 팬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단체명은 기후위기에 대항하기 위해 케이팝(K-pop) 팬들이 조직한 플랫폼 'K-POP 4 PLANET'에서 이름을 따왔다. 누구보다 관련 산업을 애정하는 '팬'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흐름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2명의 기아,키움 팬이 시작한 활동은 어느새 10개 프로야구 구단 팬 1320명에게 '지속가능한 야구'를 위한 연대서명을 받아냈다. 야구를 사랑하는 팬이자,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시민으로서 야구장을 직접 바꾸기 위해 나선 지은 씨의 이야기를 28일 들었다.

▲지은 씨는 지난 9월24일 '죽은 지구에 야구도 없다'라는 피켓을 들고 기후정의행진에도 참여할 만큼 '야구'와 '기후위기'에 진심이다. ⓒ전지은

"팬들은 언제나 준비가 되어있다"

야구장을 비롯한 스포츠 경기장의 쓰레기 문제는 과거부터 계속 지적되어온 문제다. 환경부 제5차 전국폐기물통계조사에 따르면 야구장에서 1년 동안 발생하는 폐기물은 2203톤(t)이다. 축구장(1342t), 농구장(126t)보다 월등히 많다. 대규모의 인원이 경기가 끝나고 우르르 빠져나가는 특성상 분리수거가 힘든 구조이며, 쓰레기 성상 자체도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기물이 81%를 차지했다.

야구장의 핵심인 주전부리들도 쓰레기 증가의 핵심이다. 야구장에서 판매되는 음식은 보통 1회용기에 담겨있다. 커다란 맥주 통을 뒤에 이고 관중석을 다니며 맥주를 파는 소위 '맥주보이'가 담아주는 맥주도 일회용컵에 담겨 나온다. 경기가 끝난 후 이 쓰레기들은 고스란히 버려진다.

구단들도 이런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잠실야구장은 서울시와 협업을 맺고 야구장 내 '제로웨이스트'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이다. 관중들은 식당이 준비한 다회용기에 음식을 받을 수 있다. 플라스틱 컵 사용 자제 등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문제는 필수가 아닌 자율로 운영되며, 모든 구단에 적용되는 사업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은 씨는 프로야구 협회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관중들과 팬은 '쓰레기를 쓰지 않을 준비'가 충분히 된 상황이며 구단과 협회가 함께 움직여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말이다.

"쓰레기 없어진 야구장을 체험해본 팬들이 '여기 야구장 가니까 이렇게 쓰레기 없이 운영하더라' 말 하면서 고무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해요. 몇몇 야구장이 변하고 있는 것처럼 팬들 중에서도 쓰레기 없는 야구장에 이미 준비되어 있고, 동참할 의지가 있는 분들이 많죠.

종종 텀블러같이 다회용기를 사용하면 던질 수 있으니까 선수들의 안전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던질 수 있는 게 많아요. 굳이 텀블러 같은 다회용기만 안전 문제로 어렵다고 하는 건 안전을 이유로 환경을 파괴하는 게 되잖아요.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선 최선의 대책을 강구하고, 동시에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 나가야죠."

▲ 야구장을 비롯한 스포츠 경기장의 쓰레기 문제는 과거부터 계속 지적되어온 문제다. 환경부 제5차 전국폐기물통계조사에 따르면 야구장에서 1년 동안 발생하는 폐기물은 2203톤(t)이다. 축구장(1342t), 농구장(126t)보다 월등히 많다. 대규모의 인원이 경기가 끝나고 우르르 빠져나가는 특성상 분리수거가 힘든 구조이며, 쓰레기 성상 자체도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기물이 81%를 차지했다. ⓒ연합뉴스

지은 씨는 "한국프로야구가 프로축구보다 늦다"라고도 말했다. 한국프로축구 리그인 K-리그는 2021년 국내 스포츠 단체 최초로 유엔기후변화협약 내 '기후행동을 위한 스포츠'(Sports for Climate Action)에 참여했다. 피파(FIFA), 미국프로농구(NBA), 유벤투스 등 국제스포츠기구·리그·구단 등이 포함된 국제협약이다. 

가입한 단체는 2030년까지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50%를 감축하고 2040년까지는 탄소중립을 이루어야 한다. 범위 또한 직접배출하는 탄소(Scope1)부터 전기사용 등에서 배출되는 간접배출(Scope2), 협력업체 배출 온실가스(Scope3)까지 포괄하는 협약이다.

"한국보다 훨씬 큰 리그인 미국 프로야구리그(MLB)는 리그 차원에서 '그린 MLB'를 운영하기도 하고, 소속된 전 구단이 '녹색 스포츠 동맹'(Green Sports Alliance)에 가입해서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를 위해 노력하기도 해요. 2008년부터 매년 쓰레기 재활용률이 가장 높은 구단에게 '그린 글로브 어워드' 상을 수여하기도 하고요. 2021년 그린 글로브어워드 상을 받은 미네소타 트윈스의 직전년도 쓰레기 재활용률은 99%에 달하는데 이런 걸 보면 한국도 책임감 있게 나서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미국 프로야구리그는 2008년부터 매년 쓰레기 재활용률이 가장 높은 구단에게 '그린 글로브 어워드' 상을 수여하기도 하고요. 2021년 그린 글로브어워드 상을 받은 미네소타 트윈스의 직전년도 쓰레기 재활용률은 99%에 달했다. ⓒMLB

야구를 위해, 야구를 통해 기후위기와 싸운다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 구단의 팬 중에는 '모태' 팬이 많다. 구단 연고지에서 태어났거나, 부모님 때부터 팬이었던 구단을 그대로 쭉 이어받는 경우도 많다. 지은 씨는 대대손손 팬 자리를 물려주는 만큼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지구를 살리는 일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야구팬들, 특히 모태 팬들은 본인이 사랑하는 구단에 대한 자긍심이 엄청나요. 이번에 '지속가능한 야구'를 위한 서명에 참여해주신 팬들도 '우리 구단이 이런 움직임에 빠질 수는 없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같은 구단 팬분들끼리 공유도 많이 해주시고요.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야구를 지키기 위해 지구를 지키기도 해야 하니까요.

또 야구를 통해서도 환경을 지킬 수 있어요. 유엔기후변화협약 중 '기후행동을 위한 스포츠' 협약을 보면 스포츠를 통해서 기후위기와 싸우자는 말이 나와요. 시민들이 모이고, 함께 즐기는 스포츠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의식을 키워줄 수 있다는 거죠. 야구를 위해서 기후위기와 싸울 수도 있지만, 야구를 통해서도 기후위기 행동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KBO FANS 4 PLANET은 이러한 생각에 동참하는 10개 구단 팬 1320명의 서명을 받았다. 서명을 시작한 지 1개월 만의 일이다. 지은 씨는 "어느 구단 팬이 몇 명이나 참여했는지 계속 공개해서 일종의 경쟁심을 부추기기도 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단체는 추후에 지속가능한 야구를 위한 10가지 요구사항을 팬들의 서명과 함께 구단에 전달하고 야구장에서 관련 홍보를 할 예정이다. KBO에도 요구사항을 전달하려 했으나 KBO는 "KBO는 팬 연합과 만나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방문을 거절했다.

요구사항에는 KBO-구단 간 지속가능 야구 위한 협의체 구성, 전 구단 구장 내 다회용기 도입, 일회용성 굿즈 판매 중단, 전력사용량 30% 이상 감축 및 재생에너지 전환 등 내용이 담겨있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팬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전력사용량 및 쓰레기 발생량 감축 목표를 만들고 성과를 공유하는 문화도 만들어서 단순히 캠페인식으로 일시적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야구가 되기 위한 구조가 만들어지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서명 참여 링크)

▲ KBO FANS 4 PLANET은 이러한 생각에 동참하는 10개 구단 팬 1320명의 서명을 받았다. 서명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의 일이다. 지은 씨는 "어느 구단 팬이 몇 명이나 참여했는지 계속 공개해서 일종의 경쟁심을 부추기기도 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KBO FANS 4 PL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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