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예계약…'.
자동차보험제도가 의무화되면서 정비 수가(酬價)를 지급하는 주체인 손해보험사의 갑질 수위가 도를 넘어 정비업체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수가로 먹고사는 영세 정비업체는 철저한 을(乙)의 위치다. 수가를 정하는 시간당 공임(工賃)은 최근 3년 사이 4.5% 오르는데 그쳤다.
손보사는 수가를 유지 또는 낮추려 하고, 정비업체는 터무니없이 낮은 수가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실정이지만 대응책이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낮은 수가에 항의했다가는 오히려 손보사로부터 과잉 청구를 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4대(삼성·DB·현대·KB) 손보사 실적은 자동차보험업 전체에서 84.7%를 차지한다.
24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종합감사를 벌인 가운데 윤창현(비례, 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질의 답변서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국 자동차 정비업체가 손보사에 청구한 수리비 금액과 실제 지급받은 금액 차이가 10% 이상인 사례는 13만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손보사 전횡에 못 이겨 '계란으로 바위 치기식' 소송을 불사하며 분쟁 중인 정비업체도 100개에 달한다.
일례로, 서울 강동구 소재 수입차정비업체는 지난해 12월 진행한 수입차 수리를 놓고 OO손보를 상대로 받아야 할 보험정비수가(시간당 공임x작업 시간)를 약 4000만원으로 산정했다. 이마저 기존 손보사와 약정한 기준에 따라 1900만원을 최종 청구했지만 손보 측이 자체 심사 후 제시한 수가는 고작 900만원에 불과했다.
이에 금융당국이 대형 손해보험사의 일방적 자동차보험 수가 후려치기 관행 등 갑질 횡포를 뿌리 뽑기 위한 현장 점검을 올 들어 처음 착수했다.
금감원은 먼저 분쟁 현황을 살피고 업계 이견과 입장을 직접 확인한다는 차원에서 지난 21일 경기 김포시 소재 한 정비업체를 방문했다.
김포지역 정비업체 측은 대형 손보사가 계약조건을 들어 수리비 지급 전 손해사정 내역을 '대외비' 명분으로 알려주지 않는 점과 보상센터별로 지급기준이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점 등의 불만을 쏟아냈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담당자와 손해보험협회, 경기도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 관계자들이 참석한 이날 자리에서 금감원 측은 손보사가 수리비 지급 전 손해사정 명세를 알려주지 않는 관행이 갈등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손해사정은 차 사고에 따른 손해액과 보상금 지급 여부 등을 조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손보사 측이 정비업체에 손해사정 명세를 공개하지 않는 행태는 관행으로 굳어진 상태다. 차량 정비 수가를 지급하는 주체로서 손보사는 수가를 정하는 시간당 공임을 영업 생리상 깎아야만 하고, 손해사정 내용을 밝힐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만 내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일방적 수가를 통보받아야 하는 정비업계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금융위 역시 보험업감독규정(제9, 20조)에 근거한 유권해석에서 정비업체를 보험금청구권자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손보사는 정비업체 측에 손해사정 내역을 교부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해 왔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금감원은 현행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자배법·제15조의2)에서 명시한 정부-업계 간 협의기구인 자동차보험정비협의회(이하 협의회) 내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도록 공식 안건으로 상정할 방침이다.
금감원 측은 "이번 현장 면담에서 청취한 정비업계 애로사항 등에 관해 국토부 등 유관기관과 긴밀히 협조할 것"이라며 "정비업체 청구 명세에 대한 손보사 측 손해사정 사유를 통지하는 등 건설적 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토부와 중소기업중앙회 등에 따르면 전국 자동차 정비업체는 지난해 말 기준 3만6400여 개소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인력은 9만3800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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