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어디로 가고 벌써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계절이 왔다. 늘 그렇듯이 계절은 제멋대로 왔다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만다. 가을 옷을 가지고 내려왔는데 별로 필요 없어졌다. 계속해서 문화문법에 관한 글을 써 보려고 한다. 문화와 관련된 것이다 보니 필자도 여러 가지로 공부를 해 가면서 글을 쓴다. 어려서 배운 것을 되새기기도 하고 사전이나 고어사전 등을 뒤적이지만 찾는 단어가 그리 쉽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러니 머리에서 쥐가 나도록 생각하고 유추해 가면서 써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지만 그 의미가 현실과 달라서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것을 살펴보려고 한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 중에 “부아가 난다”는 말씀이 있었다. 그때는 ‘부화’인 줄 알고 있었다. 집에서 닭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부화’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 봤기 때문이다. 시집살이를 많이 하셨던 어머니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던 모양이다. 혼자 계실 때면 누가 들을까 주위를 돌아보시면서 “부아가 나서 못 살겠다”는 표현을 자주하셨다. ‘부아’라는 단어는 순우리말로 ‘폐(肺)’를 뜻한다. 그런데 어쩌다가 ‘부아가 나는 것’이 ‘화가 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우선 단어의 뜻을 하나 씩 살펴 가면서 보기로 한다. ‘나다’라는 말은 “1. 표면 위로 나오다 2.터지거나 발생하다 3.따로 차리려고 갈라져 나오다”라는 의미가 있다. 그 외에도 “머릿속에 떠오르다(생각나다), 마음에 그리워지다, 먹고 싶은 마음이 들다” 등의 뜻이 들어 있다. “부아가 나다”에서는 “커지다”라는 의미가 중심이다. ‘풀(싹)이 나다’고 하는 것은 ‘풀이 커진다’는 의미임을 생각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다. 즉 “부아가 나다 = 허파가 커지다”와 같다. 그렇다면 ‘화가 나는 것’과 허파가 커지는 것‘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대학 다니던 시절 홍윤표 교수의 재미있는 설명이 기억이 나서 여기에 옮겨 본다. “화가 나면 어떻게 되지?”, “화를 참으려고 숨을 크게 들이 쉬지 않아?” “그러니까 허파가 커지는 것이지!” 하면서 웃었다. 생각해 보니 그 말씀도 맞는 것 같다. 화를 참으려고 숨을 크게 들이 쉬면 자연히 허파가 커지니까 ’부아가 난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화가 나면 숨이 급해지고 헐떡거리느라고 허파가 커진다고도 한다. ’부아‘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분하고 노여운 마음, 양서류 이상의 척추 동물이 지닌 호흡기관”이라고 나타나 있다. 예문으로는
태호는 부아가 난 얼굴로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와 같다. 아무튼 ‘부아’는 ‘허파(폐)’를 의미하는 순우리말임에는 틀림없다.
다음으로 “어안이 벙벙하다”고 하는 말을 알아 보자. 오늘도 계속해서 신체에 관한 문화문법임을 염두에 두는 것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선 “어안이 벙벙하다”라는 말은 “(사람이) 뜻밖에 놀랍거나 기막힌 일을 당하여 어리둥절하다”라는 뜻이다.
태호는 난생 처음 당하는 큰일에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와 같이 쓸 수 있다. 어이가 없어서 벙벙해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벙벙하다= 뜻밖의 일을 당하여 얼떨떨하다’는 뜻인데, ‘어안’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생소하다. 많이 쓰기는 하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는 어렵다. ‘어안’이란 “어이없어 말을 못하고 있는 혀 안”이라고 나와 있는데, 고어 사전에 ‘어’가 ‘혀’라고 하는 근거는 없다. 다만 생각해 본다면 ‘어이가 없어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를 ‘혀의 안 쪽이 벙벙하여 얼떨떨하기만 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혀의 안쪽’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추할 따름이다. 이에 관해서는 조금 더 연구할 필요가 있어 다음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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