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주미 특파원의 모임인 한미클럽이 9월 25일 <한미저널>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4월부터 2019년 8월까지 교환한 27통의 친서 전문을 공개했다. 위에서 인용한 부분은 2018년 9월 21일자 김정은의 친서 가운데 일부이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평양 남북정상회담 종료 하루 뒤에 나온 내용이라 더욱 주목을 끈다. 당시 북한은 문재인 정부 방북단에게 "최대의 환대"를 베풀었었다. 또 9월 19일 채택된 평양공동성명에는 "남과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하였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왜 트럼프에게 문 전 대통령을 배제하자고 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김 위원장은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 나눈 대화와 그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을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료들의 발언, 그리고 북미대화 중재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의 말이 너무 다르다고 인식했을 공산이 매우 크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트럼프와 다시 만나 그의 의중을 직접 확인하고 담판을 짓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의 최측근이자 북미회담 실무총책이었던 마이크 폼페이오도 배제하려고 했던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폼페이오의 방북이 취소된 직후인 2018년 9월 6일자 친서에서 "각하의 의중을 충실히 대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어려운 폼페이오 장관과 우리 양측을 갈라놓는 사안에 대해 설전을 벌이기보다는, 탁월한 정치적 감각을 타고난 각하를 직접 만나 비핵화를 포함한 중요 현안들에 관해 심층적으로 의견을 교환함이 더 건설적일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헷갈려했던 문제들은 뭐였을까? 먼저 종전선언이다. 종전선언은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도 담겼고 트럼프도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약속한 바였다. 그래서 북한은 '디-데이'(D-day)를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로 잡고 7월 6일 방북한 폼페이오와 이를 논의하려고 했었다.
북한은 미국인 억류자 송환과 미군 유해 발굴 협조가 이를 위한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폼페이오는 종전선언은 뒷전으로 미루고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되는 비핵화(FFVD)'부터 먼저 논의하자고 북한을 압박했다.
실망한 북한은 "순진했다"고 자책하면서도 기대를 완전히 접지는 않았다. 김정은이 7월 30일자 친서에서 "기대했던 종전선언이 없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이른 시일 내에 분명 빚을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적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종전선언을 둘러싼 한미 간의 엇박자는 8월부터 수면 위로 드러났다. 미국의 외교안보 고위관료들은 종전선언의 선행 조건으로 핵신고를 비롯한 북핵 문제의 상당한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종전선언이 유엔사와 주한미군의 지위, 그리고 한미연합방위태세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트럼프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발표하고 주한미군 철수도 시사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은 9월 20일 귀국 보고에서 종전선언은 비핵화에 추동력을 부여하기 위한 정치적 선언일 뿐, 주한미군은 물론이고 유엔사의 지위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혼란을 느꼈을 법한 김 위원장은 트럼프의 의중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은 9월 20일 귀국 보고에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때 평화협정을 체결함과 동시에 북미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것이 우리가 종전선언을 사용할 때 생각하는 개념"이라며, "김 위원장도 제가 아까 이야기했던 것과 같은 똑같은 개념으로 종전선언을 생각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평화협정은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는 최종단계에서 이뤄지게 된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이렇게 인식했을 가능성도, 또 동의했을 가능성도 매우 낮다. 북한의 전통적이고도 근본적인 입장은 평화협정은 비핵화 완료 '이전'에 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에서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순서로 짜여 있었다. 또 평화체제는 평화협정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구축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는 최종단계에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아마도 김 위원장은 문 전 대통령의 말을 접하면서 심한 혼란과 문재인 정부를 북미대화에서 배제해야 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또 "정치적 선언인" 종전선언이 평화협정 체결을 마지막 단계로 미루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도 걱정했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이 시기를 거치면서 종전선언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또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친서를 쓴 시점도 9월 21일이었는데, 이는 9월 20일 문 전 대통령이 귀국 보고를 접하고 펜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문 전 대통령은 귀국 보고에서 "북한 측에서도 우리를 통해서 미국 측에 메시지 전하고자 하는 것들이 있다"며, "그런 역할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면 충실히 함으로써 북미대화를 촉진시켜 나가고자 한다"고 힘주어 말했었다. 하지만 정작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를 배제하고 북미대화로 직진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리고 말았다.
다음으론 대북 제재 문제이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북한이 미국에게 가장 기대했던 것은 단계적 비핵화 조치에 부응하는 제재 완화였다. 북한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트럼프 행정부가 말한 "동시적·병행적 이행"에 당연히 제재 완화도 포함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7월 6일 방북한 폼페이오가 제재 해결은 비핵화가 완료될 때 고려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동시적·병행적 이행의 예외"라고 못 박은 것이다.
낙담한 김 위원장은 공개적으로 "강도적인", "악랄한" 등의 수식어를 붙여 대북 제재를 맹비난하면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도 한편으로는 단계적 비핵화에 상응하는 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에 과감한 비핵화 조치도 권고했다. 이에 김정은은 9월 6일자 친서에서 회심의 제안을 내놓았다.
이에 앞서 트럼프는 7월 3일자 친서에서 "미사일 엔진 시험장에 기술 전문가들의 방문을 허용하는 데 동의해줄 것을 희망한다"며, "이게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썼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친서를 통해 이를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몇 가지 "유의미한" 입장도 제시했다. "핵무기 연구소의 전면 가동과 핵물질 생산시설의 불가역적인 폐쇄"에도 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줄 우리 주변 환경의 변화를, 약간만이라도, 느낄 필요가 있다"며 미국의 상응조치를 간절히 요구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냉담했다. 폼페이오 등 고위 관료들은 '선 비핵화, 후 제재 해결'이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수시로 친서를 보냈던 트럼프는 4개월 가까이 답장마저 보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제재 완화를 간절히 원할수록 트럼프는 이를 약점으로 간주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중재도 이렇다 할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북한은 남한으로부터는 유의미한 비핵화 조치가 제재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지만, 정작 열쇠를 쥐고 있던 미국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북한은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 달라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의 중재에 의구심을 품고 트럼프의 의중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간절함은 9월 21일자 친서의 다른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김정은은 9월 6일자 친서에서 폼페이오를 믿을 수 없다며 배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답장을 받지 못한 김정은은 보름 후 다시 보낸 편지에서 "이른 시일 내에 폼페이오를 평양을 다시 보내주시길 바란다"고 적었다.
김정은은 8월 폼페이오의 방북 무산과 그를 배제하자는 요청이 트럼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여긴 것이다. 느긋해진 트럼프와 초조해진 김정은의 '케미'는 이렇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 이 글은 필자가 10월 1일자 <한겨레>에 쓴 글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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