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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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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무덤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74주년 여순항쟁 추념시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형제무덤

남풍이 불었다

저 멀리 푸른 바다 영등바람이 불었다

한맺힌 제주할망 눈물바람 불었다

시월의 황금물결 갈바람이 불었다

여수의 갈바람도 피바람으로 불었다

어둑 칙칙한 마래터널을 겨우 빠져나와

돌멩이를 양손에 집어 들었다

눈부신 햇살마저 으스스 소름 돋는

용골에다 힘껏 그 돌멩이 내던지고

잰걸음으로 몇 발짝 헉헉 돌아가니

왼편 골짜기에 형제묘가 나온다

그날은 깊은 겨울밤이었다

기침 소리마저 꾹꾹 얼어붙어버린

종산국민학교 맨바닥에 빼곡히 수용됐던

여순사건 부역 혐의자들의 일부가

대한민국 헌병한테 조용히 끌려 나갔다

트럭엔 그들 말고도 장작더미와

시커먼 고리탕 기름통도 함께 따라갔다

캄캄한 남해바다만 내려다보이고

한 조에 다섯 명씩

깊게 파진 웅덩이 앞에 나란히 섰다

탕. 탕. 탕. 탕. 탕.

쏴 죽이고,

장작을 덮고,

기름을 붓고,

쏴 죽이고 장작 덮고 기름을 붓고,

다섯 번에 또 다섯 번

쏴 죽이고, 장작 덮고, 기름을 붓고

그렇게 일백이십오 명이나

생때같은 목숨들을 도륙하고 불 질렀다

사흘 밤낮 타는 것을 지켜보다가

바윗돌을 굴려다 덮어버렸다

시커멓게 엉겨 붙어 형체 잃은 주검을

낱낱이 수습할 수 없었던 통한의 유족들은

천만 근 연좌 무덤 독담불에 몰래 가서

그렁그렁 흙을 덮고 형제묘라 불렀다

▲ 형제묘.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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