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예순을 한자로 ‘이순(耳順)’이라고 한다. 무슨 말을 들어도 허허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포용력 있는 나이를 말한다. 젊은 시절에는 조금만 화가 나도 때려 부수고 싶지만 연륜이 있는 사람들은 참을 줄 안다. 이순이라는 말을 알기 위해서는 <논어>까지 읽어 봐야 한다. 나이를 일컬을 때 10대는 충년(沖年)이라 하고 15세는 지학(志學), 20세는 약관(弱冠), 30세는 이립(而立), 40세는 불혹(不惑), 50세는 지천명(知天命), 60세는 이순(耳順), 70세는 고희(古稀) 혹은 종심(從心), 77세는 희수(喜壽), 88세는 미수(米壽), 99세는 백수(白壽), 100세는 상수(上壽)라고 한다. 이런 것을 알기 위해서는 이와 관련된 고사나 주변의 상황을 알아야 한다. 즉 중국의 문화나 고전에 능통해야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언어를 이해할 때 문화와 함께 인식하여 풀어가는 것을 문화문법이라고 한다.
지난 주에 이어 문화문법에서 자주 활용되는 단어를 설명해 보기로 한다. 우리말은 신체와 관련된 말이 많다. “간이 부었다.”, “쓸개가 빠졌다.” 등이 모두 신체와 관련된 말인데, 그것이 무슨 뜻을 나타내는지 알기 위해서는 각각의 장기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외국인에게 대뜸 “너 간덩이가 부었니?”라고 말하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왜 한국인은 오장육부와 그 기능이 자존심과 관련이 있는가를 먼저 설명해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간도 쓸개도 없다
2)간담이 서늘하다
1)은 “자존심이 없을 정도로 비굴하다”는 뜻이다. 2)는 “몹시 놀라서 섬뜩하다”는 말이다. ‘서늘하다’는 시원함을 넘어서 ‘차가운 듯 오싹하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간이 콩알만 해지다.”와 같은 것도 ‘무서움’이나 ‘두려움’과 관련이 있다.
간이 붓다
라는 말은 속된 말로 “겁도 없이 대담해져서 분수 이상의 말이나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이를 더 속되게 말할 때는 “간땡이가 부었다.”고 한다. 한의학에서 ‘간’은 목기(木氣)에 해당한다. 이는 곧 일을 새로 추진하거나 이끌어 가는 힘을 말한다. 즉 간이 크다는 것은 힘찬 추진력과 결단력이 있다는 말이고, 간이 부었다는 것은 추진력이나 결단력이 너무 지나쳐서 무모할 때 쓰는 말이다.(이재운, 우리말 1000가지, <다음백과>사전 재인용) 요즘은 무모하게 겁 없이 어떤 일에 달려드는 것을 뜻한다. 요즘 사람들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표현을 더 많이 한다. 지나치게 만용을 부린다는 말인데 과장이 심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쓸개’는 담낭(膽囊)을 말하는데, 그냥 담(膽)이라고도 한다. 쓸개가 주로 정신적인 면에 작용해 결단력을 담당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 사람 담력이 있어.”, “그 녀석 참 대담하네.”와 같이 쓰기도 하고, 결단력이 없어 우유부단한 사람을 일컬을 때는 “쓸개 빠진 놈”이라고 한다. 한자로 쓸 때는 비교적 좋은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에 비해 한글로 ‘쓸개’라고 할 때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할 때가 더 많다.
위에 예로 든 것 외에도 신체와 관련된 어휘는 엄청나게 많다. ‘비위가 상하다’, ‘배알이 꼴리다’, ‘복장이 터지다’, ‘어안이 벙벙하다’, ‘부아가 난다’ 등과 같은 것들이 모두 우리 신체와 관련된 말들이다. 이러한 어휘들은 그 속에 담겨 있는 한의학적 지식이 있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순(耳順-귀가 순해져서 무슨 말을 들어도 화내지 않는 나이)이 넘은지 오래 되었는데, 간이 배 밖으로 자꾸 나가려고 한다. 아내가 짜증낸다고 집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을 보니 필자는 아직 철이 덜 든 청춘인 것이 분명하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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