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역무원이 단독순찰 근무 중 스토킹 가해자에게 피살당한 신당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역무원 인력부족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5월 이뤄진 인력증원 합의마저 뒤집고 "오히려 인력감축을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궤도협의회)는 1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무원 인력부족으로 인한) 단독순찰로는 직원과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그러나 서울시는 지하철 재정적자를 이유로 안전대책은 포기하고, 예산절감과 청년고용 감축만을 지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신당역 사건 이후 진행된 서울교통공사와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사이 교섭 내용을 살펴보면 공사 측의 구조조정·인력감축 추진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노조에 따르면 공사는 지난 달 30일 노조 측에 공문을 보내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안을 교섭 안건으로 상정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어 공사는 지난 4일 이뤄진 교섭에서도 '공사 전체 인력 중 약 10%에 해당하는 1539명을 구조조정한다'는 내용의 안건을 노조 측에 제시했고, 노조가 이를 수락하지 않으면서 교섭은 결렬된 상태다.
김정섭 서울교통공사 교선실장은 12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인력문제 등에 대한) 교섭은 완전히 결렬된 상태고, 노조는 지난 6일부터 쟁의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공사 측은 지난해 6월 해당 구조조정 방안을 처음 발표했지만, 노조는 해당 방안이 같은 해 노사합의를 통해 중단됐다고 주장한다. 노조가 공개한 2021년 9월 13일자 노사특별합의서를 보면 "공사는 재정위기를 이유로 임금 등의 저하 및 강제적 구조조정이 없도록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오히려 올해 5월에는 인력 '충원'을 명시한 노사합의도 이뤄졌다. 지난 5월 27일 작성된 '열차 운행시간 조정 노사합의서'에는 "열차 운행시간 조정에 따른 안전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6개월 이상 장기결원인력을 충원"하고 "승무분야 인력을 증원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9월 신당역 살인사건까지 발생하자, 노조는 단독근무 문제 해소 등 역무원 현장 안전 확보 대책 수립을 공사와 서울시 측에 요구해왔다.
김 교선실장은 "지난해와 올해 두 번이나 (인력을 감축하지 않거나 충원하겠다는) 명문합의를 해놓은 데다, 신당역 사건으로 인해 2인1조 인력 대책이 더욱 절박해진 상황에서, 공사는 모든 합의를 뒤집고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라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노조 입장에선 쟁의 절차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개최한 궤도협의회는 "서울교통공사의 예산과 인력 등에 관한 모든 권한을 손에 쥐고 있는 '원청'은 결국 서울시"라며 현 상황과 관련해 서울시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들은 "(노조가) 시민안전을 위해 노후화된 역의 리모델링 등 안전예산 지원과 420개 2인 근무조에 대한 역무원 인력 증원" 등을 예산 권한을 지닌 서울시 측에 요구해왔지만, 서울시는 "서울지하철 누적적자 16조 원의 책임을 시민안전포기와 청년일자리 축소로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앞서 지난 8월 개최한 기자회견에서도 "오세훈 시장이 공언한 공공부문 ‘경영혁신’의 영향으로 서울시가 신규 채용 규모를 축소하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후 9월 신당역 사건이 벌어지면서 서울교통공사 인력문제에 관한 새 국면이 열렸지만, 지난달 20일 열린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업무보고 등 공사 측이 참여한 대책마련 테이블에선 인력충원에 관한 내용이 보고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16일엔 오 시장이 '지하철 역무원들의 2인1조 순찰 매뉴얼을 만들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페이스북 글을 게시하기도 했으나 이 또한 몇 시간 만에 삭제·수정된 바 있다.
김 교선실장은 "현재 (신당역 사건과 관련해) 공사 측에선 호신 장비 지급이나, 심지어 '역무원들에게 호신술을 가르치겠다'는 정도의 지엽적인 대책들만 제시하고 있다"며 "인력문제가 핵심인 사안을 두고 대책 발표는 하나도 없이 구조조정만 하겠다고 하니 노조로서도 의아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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