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열은 없지만, 머리와 눈이 어지럽고 아프며, 입과 목이 건조한데도 갈증은 나지 않고, 정신은 말똥말똥해서 잠이 안 오는 것은 모두 허번이다.
身不覺熱 頭目昏疼 口乾咽燥而不渴 淸淸不寐 皆虛煩也."
-동의보감 내경편 권2 몽(夢) 중에서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OECD 국가 중 가장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을 하든, 공부나 운동을 하든, 술을 마시든 간에, 자는 시간을 줄여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것을 보면 자타공인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이지만, 사람들 마음 속 가난의 그림자는 여전한 듯하다.
그런가 하면 암이 한국인 사망원인의 1위를 차지한다거나, 자살률(2020년 기준)이 세계 1위라는 통계도 있다. 연관성에 관한 연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암과 자살 그리고 국가적인 수면부족은 분명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은 한 개인의 건강은 물론 그 사회의 건강에도 중요하다.
좋은 잠이 몸은 물론 정신과 감정의 건강에 중요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엔 불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우리사회가 잠벌레를 게으름뱅이로 여기고 근면성실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치던 단계에서 조금 벗어났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불면증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먹고 살만은 해졌는데, 잠 못 이루는 사람은 늘어난 것이다.
불면의 이유는 다양하다. 몸이 아파도, 소화가 안 돼도, 화나거나 속상한 일이 있어도 혹은 너무 기뻐도 우리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몸이든 마음이든 불편함이 있으면 편히 못 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자야 한다는 것에 집착한다. 그러다 보니 그 원인은 해결되지 않고 점차 강제로 수면을 유도하는 약물에까지 의존하게 된다. 약물 복용이 장기화되면 그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기도 한다. 따라서 잠이 잘 들지 않거나, 자다 자꾸 깬다면 '내 불면의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꼭 던져봐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낮에 활동하면서 몸의 외부를 순환하던 기의 흐름이 내부로 거두어들여지면서 잠이 든다고 본다. 이 과정이 방해를 받거나 유지할 수 없으면 잠이 잘 들지 않거나 도중에 깨게 된다.
흥분이나 긴장으로 인해 열이 발생하고 가슴 쪽으로 흐름이 몰려 있는 상태, 혹은 담음이나 어혈 등이 수렴되는 흐름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요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호, 황련, 치자와 같이 열과 압력을 푸는 약재와 반하나 진피 같은 담을 제거하는 약재들이 주로 쓰인다. 감정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과 불안에 의한 불면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다음으로는 기의 흐름을 거두어들이는 힘이 떨어졌을 때다. 보통 만성화된 불면이나 노인들의 불면이 이런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산조인과 오미자와 같은 새콤한 약재나 숙지황이나 구기자 같은 약재를 써서 기의 흐름을 수렴하고 이것을 내부에 간직하는 힘을 북돋아 잘 잘 수 있는 흐름을 만든다.
불면증 환자들을 살피다 보면 그 뿌리에는 불안과 공포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실제 치료에서는 잠을 잘 잘 수 있는 흐름을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몸과 감정의 안정적 흐름을 유지하는 힘을 키워줘야 좋은 효과를 거두는 경우가 많다.
잠 못 이루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드는 생각은, 어쩌면 인간이 지금처럼 최상위 포식자가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먹잇감이었던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무의식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피식자 시절의 공포란 스위치가 어느 순간 탁! 하고 켜지면, 잠들지도 깊고 길게 자지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
21세기, 게다가 선진국의 반열에 든 대한민국에서 피식자의 공포라니! 말이 안 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쟁과 같은 인간에 의해 자행된 학살의 역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현대인의 문명화된 삶이 야생의 삶보다 덜 잔인하고 두렵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게 아니라면 더 잘 살게 되었는데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느는 이유를 설명하긴 힘들 듯하다.
부족한 수면시간과 불면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많이 자는 것보다 수면의 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이 이야기의 끝은 대부분 약물과 치료 혹은 기능성 식품이다.
일시적 현상이라면 이런 해결방법도 괜찮다. 하지만 많은 현대인이 만성적인 불면과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안심하고 푹 잘 수 없는 낮의 삶 때문이다. 많은 자기 계발 서적에서는 마음을 바꿔 먹고 깨달음을 통해서 불안을 해소하라고 하지만 이것이 올바른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바라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적은 잠을 자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보다, 더 자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갔으면 한다. 조금 게으르고 부족한 사람들도 비난과 불안을 걱정하지 않고 안심하고 잘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참 좋겠다.
그녀들을 위한 레시피 : 대추생강차
나는 질 좋은 수면에 대한 갈증이 별나게 심한 사람이다.
몸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무리하지 않으려는 원칙을 세우고 있지만, 부득이하게 가끔씩 긴 시간 주방에 있게 되는 때가 있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은 지나치게 힘든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녹초가 되어 누우면서 이번엔 잠을 좀 푹 자려나 하는 기대를 하지만 그런 날에도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진다.
피곤한데, 잠자리로 가면서 분명히 푹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누웠는데, 머리가 맑아지고 눈이 말똥말똥 해지면서 끝없이 뒤척이게 된다. 운이 좋아 잠이 들었다가도 아침에 일어나기 전까지 2~3번은 기본으로 잠을 깨서 괜히 심란하다.
그렇게 잠을 자고 일어나니 잔 것 같지 않고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몸을 일으키기 위한 안간힘을 쓰게 된다. 잠을 잘 자고 난 후의 개운함 따위, 나에게는 애초에 없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질이 좋은 잠에 대한 사나운 욕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떻게든 잘 자고 싶다. 그런 까닭에 평소에도 혼자 잠을 자려 하고, 여행을 가도 일행들의 눈치를 보면서까지 독방을 고집한다.
내 이런 불면의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일에 대한 욕심이나 불안감,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범위가 좁혀진다. 원인을 찾았다고 해도 그 자체가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서 당연히 불면의 밤은 계속된다.
긴장을 풀고 마음의 평안을 찾으라고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럴 때 냉동고를 뒤져 대추와 생강을 꺼내 차를 끓인다. 주전자의 꼭지에서 김이 솔솔 나기 시작하고 김을 따라 대추의 달큰한 향과 생강의 매운 향이 공기를 떠다니기 시작하면 목을 조이는 것 같던 팽팽한 기운이 사라지면서 몸도 마음도 이완이 되는 걸 느낀다. 아직 차가 완성되지 않았으나 이미 편안한 잠을 예약해둔 것 같다.
잠자리에 들면 된다. 대추차 한 잔 마시고.
<재료>
대추 400g, , 생강 40g, 물 2L, 꿀 약간
<만드는 법>
1. 대추를 깨끗하게 씻어 씨를 발라 놓는다.
2. 생강의 껍질을 까서 깨끗하게 씻는다.
3. 주전자에 물과 함께 대추와 생강을 넣고 센 불로 끓인다.
4.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1시간 정도 뭉근하게 달인다.
5. 끓인 대추생강차를 체에 걸러 다시 한번 끓여 취향에 따라 농도를 맞춘다.
6. 먹을 때 단맛이 부족하면 꿀을 넣어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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