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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노동과 과로 위에 만들어진 한국사회의 '마지막 일터'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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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노동과 과로 위에 만들어진 한국사회의 '마지막 일터' 쿠팡

[프레시안 books]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

쿠팡은 한국사회 직접고용 규모 3위 기업이다. 국민연금공단의 국민연금 가입자 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6만 5772명을 고용했다. 이보다 많은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은 삼성전자(11만 1289명), 현대자동차(6만 7656명)뿐이다. 증가세도 가파르다. 지난해 쿠팡의 신규 채용 인력은 1만 5900명이다. 그 뒤를 쫓는 삼성전자가 5659명, 한국철도공사가 2126명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압도적이다.

이 같은 통계를 볼 때마다 쿠팡 노동자들을 만났던 경험이 떠오른다. '전에 무슨 일을 했나요'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자영업자, 방과 후 학교 교사 등이었다. 대체로는 코로나로 타격을 입은 직종에서 일하던 이들이었다. 제한된 관측이지만 여기에 진실의 일면이 담겨있다면, 쿠팡은 재난이 가장 먼저 덮친 사회적 약자들을 광범위하게 흡수한 셈이다. 그것도 대다수는 일용직 혹은 계약직으로.

얼마 전 발간된 첫 쿠팡 비판서의 제목도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민중의 소리)다. 책에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1년 4개월여 간 야간노동을 하다 과로로 사망한 고 장덕준 씨의 어머니 박미숙 씨의 글과 쿠팡에 맞선 싸움을 기록하고 함께해온 언론인, 활동가 등의 글이 담겨있다.

▲ 쿠팡 배송 차량과 노동자. ⓒ연합뉴스

아들 장덕준 씨와 어머니 박미숙 씨의 이야기

책은 또 다른 의미에서 쿠팡이 "마지막 일터"가 된 이들의 사연과 함께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 빌라 계단에서 심야배송 중 사망한 캠프 배송기사, 인천물류센터에서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노동자, 조리실에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 쓰러진 천안물류센터 조리사 등 10명이다.

곧바로 유족인 박 씨의 글이 이어진다. 박 씨의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한 그날 장 씨는 일을 하고 돌아온 뒤 가슴을 움켜쥐고 욕조에 엎드린 채 숨졌다. 응급실에서 만난 의사에게서 "힘들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박 씨는 희망을 잃지 않았지만 아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만보기를 차고 일했더니 하루에 5만 보가 찍혀 있더라", "우리는 노예예요. 우리는 쿠팡을 이길 수 없어요", "어머니! 이게 우리 밥줄이에요." 아들이 남긴 말을 가슴에 가시처럼 품은 채 박 씨는 쿠팡을 사람이 죽지 않는 일터로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다.

아들 장 씨와 어머니 박 씨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기록하는 일은 희정 기록노동자가 맡았다. 이 글에서는 대학에서 로봇 공학을 전공했지만 코로나 취업난 때문에 쿠팡을 첫 일자리로 택한 장 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자꾸 눈이 간다.

손이 귀한 집안의 맏이로 태어났다. 덕분에 조부모 사랑을 듬뿍 받았다. 넘치는 애정에 자기만 알고 자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아쉬운 것 없이 자란 아들은 경쟁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컸다. 자기 손해를 따지지 않았다. 악의 없이 순한 성품에 힘든 일도 내색 없이 감당했다.(39P)

그 "악의 없이 순한 성품"은 쿠팡에서 "하루 5만 보"를 걸으며 "76킬로그램"이던 몸무게가 60킬로그램이 되도록 일하면서도 바뀌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덕준 씨는 쿠팡 일을 해보니 돈 귀한 줄 알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 귀한 돈을 아끼긴 커녕, 작은 것에도 금액을 지불했다. 게임 아이템마저 무료로 다운로드받는 일이 없었다. 이게 다 사람 쓰며 하는 일이라, 돈을 아끼면 그 일 하는 사람이 피해를 본다고 했다. 쿠팡에서 물건을 시킬 때도 꼭 한 개씩 따로 주문했다. 미숙 씨가 세제 두어 개 좀 사달라고 하면, 그걸 하나하나씩 주문하는 식이었다. 자기가 물건을 옮겨보니, 물건이 하나만 늘어도 체감하는 무게가 천지 차이라고 했다. "배달하는 사람도 힘들잖아요. 건당 수수료 받는 건데." 그러면서 따로 주문을 넣었다.(41p)

쿠팡은 장 씨와 같은 마음으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람, 배달하는 사람이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장 씨는 "우리는 그냥 도구예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장 씨가 숨진 사실을 알게 된 날도 쿠팡은 박 씨에게 '근무 취소하겠습니다. 다음에 근무 지원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일용직 자체가 '사람이 소중한지 알고 싶지 않아' 만든 고용 형태"이기도 하다.

장 씨가 쿠팡을 바꿔보려 시도한 적도 있었다.

장덕준 씨와 동료들은 집단행동을 감행한 적도 있다. '고인물'들끼리 관리자 갑질에 맞서 7층 근무지를 이탈한 것이다. 7층 관리자에겐 내일 안 나올 거라 하고, 다른 층에서 근무를 했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저항을 했고, 주어진 자리에서 협상의 여지를 넓혀보려고 했다. 놀란 관리자가 쫓아 내려왔다. 하지만 그때뿐. 소용없었다고 했다. 구조는 공고했고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47p)

벽에 부딪친 장 씨는 다른 길을 택했다. 정규직이 되어 목소리를 내는 길이었다.

성실하고 또 성실했다. 이런 자신이 직원으로 채용될 수 있는지 보고 싶다고 했다. 이 회사의 끝을 보고 싶다는 오기, 한편으로는 자신이 일해 온 것을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한낱 알바라 이렇게 푸대접을 받는 거라면 인정을 받은 후에는 달라질까.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수많은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생기는 걸까.

"혼자만의 싸움을 했다고 생각해요."(48p)

하지만 장 씨의 말처럼 어떤 노력으로도 쿠팡을 이길 수 없었다.

차츰 덕준 씨의 마음에 오기가 생겼다. "다른 사람 잘라도 넌 꼭 출근시키라고 할걸." 동료들은 그에게 그런 말을 했다. 그러나 자신의 노동이 보상받을 길은 보이지 않았다. 회사가 유일하게 베푼 것은 3개월 단기 계약지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3개월, 9개월, 12개월 계약을 갱신하다 보면 정직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3개월, 9개월 계약을 마칠 때마다 탈락자들이 생겼다. 다음 계약을 하지 못하고 쿠팡에서 퇴출당했다. 무기계약직을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는 회사 속내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회사는 계약을 종료하며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다. 재계약의 기준을 말하지 않는 것마저 본사 지침이라 했다. 개인의 노력도, 성실함도, 능력도 '어떤 시스템'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47p)

결국 장 씨는 쿠팡이 만들어놓은 "어떤 시스템"에 짓눌려 세상을 떠났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그런 장 씨를 바라보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이다.

'힘들면 그만둬야지. 미련하게 계속 다니다가 목숨까지 잃냐.'

장덕준 씨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 '알바하는 사람이 무리하게 일한 것까지 회사가 책임져야 하냐.', '뭐가 모자라니까 저런 곳에서 일하는 거지.' 과로사로 밝혀졌다고 하지만, 논란과 공방 과정에서 가족들 가슴을 파헤친 말들은 여전히 남았다.(42p)

어쩌면 이 책은 장 씨를 두고 날선 말을 쏟아냈던 이들에게 띄우는 편지이기도 하다. 장 씨는 뭐가 모자란 사람이 아니다. 미련해서 세상을 떠난 것도 아니다. 이에 더해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장 씨의 사망이 야간 노동과 과로에서 비롯된 구조적 타살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알바하는 사람이 무리하게 일한 건 그런 구조를 만들어놓고 이득을 취하는 회사 책임이 맞다.

결과적으로 야간근무를 지속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무려 13년 빨리 사망하게 된다는 보도도 있다.(158p)

쿠팡의 경우는 중량물 작업을 고려하면 최소 30% 이상의 여유율이 제공되어야 한다. 30%만 적용하더라도 1시간 일하는 중 18분은 물 한 잔 마시고 화장실 한 번 가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집어들다 떨어진 옆의 상품 제자리에 올려두는 등의 시간으로 활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 이 잠깐의 여유란 존재하지 않는다.(168p)

▲  박미숙 씨가 아들 고 장덕준 씨의 얼굴이 새겨진 목판 액자를 들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래도 남아있는 희망과 저자들이 시민에게 보내는 제언

다행히 희망은 있다. 장 씨와 같은 쿠팡 노동자를 다르게 보는 이들이 있다.

야간노동의 위험에 빠져진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소비자들의 생각은 바뀔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2020년)의 국민의견조사 결과에 따르면 택배 종사자 처우가 개선된다면 배송 지연을 감내할 수 잇다고 응답한 국민이 87.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160p)

KBS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2021년 1월 23일~1월 25일까지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 참여자의 80.6%가 택배기사 근로 시간 단축에 동의했고, 70.8%가 배송지연도 감수하겠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43.6%는 요금인상에 동의한다고 밝혔으며, 51%는 500원까지 요금인상을 수용하겠다고 답했다.(212p)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의 이희종 정책실장과 정하나 정책국장은 시민들을 늘려가며 프랑스 등과 마찬가지로 근로기준법에 야간노동 원칙적 금지 조항을 신설하고 쿠팡에 노동자들이 과로하지 않을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들자고 제언한다.

책을 덮으며 어슐러 르 귄의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오멜라스는 가상의 유토피아 도시다. 이유가 밝혀져 있진 않지만 이 도시의 행복과 번영은 지하실에 갇혀 고통 받는 한 아이의 희생으로 성립한다. 누구라도 그 아이를 도와주면 오멜라스의 행복과 번영은 끝난다. 오멜라스 주민들은 어릴 때 그 사실을 듣는다. 대부분은 아이의 고통을 받아들인다. 일부는 어디론가 떠난다. 우리는 어느 쪽일까.

▲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박미숙·희정·이승훈·전주희·한인임·이희종·정하나 지음)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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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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