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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청소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퇴근할 수 있는 대학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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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청소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퇴근할 수 있는 대학을 원한다

[노동자 휴게실에 찾아간 학생들] ①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 앞장서는 학생들이 있다. 대학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 문제해결을 위한 청년학생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청년학생 공대위)다. 청년학생 공대위는 8월 18일 휴게실 설치 의무화 법안이 시행되자마자 '대학이 노동자들의 휴게실을 개선하라'는 목소리를 릴레이 성명서를 통해 담았다.

노동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려는 학생들은 계속 움직인다. 서울대학교를 시작으로 매주 청년학생 공대위 학생들이 각 학교 노동자들의 휴게실에 방문한다. 학생의 관점에서 솔직하게 써내려간 대학 청소·경비·주차·시설 노동자들의 휴식 환경과 단순히 면적이나 온도 수치를 통해 지정한 휴게공간이 아닌, 학생들의 눈을 통해 보는 '휴게공간'의 문제점을 글로 담는다. (필자)

2019년 8월 9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물의 휴게공간에서 한 청소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냉방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계단 아래 휴게실이 고인의 '쉼터'였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학생들은 같은 학교의 구성원이 이토록 열악한 공간에 머무르고 있었음에 놀랐고, 이때까지 그러한 현실을 잘 모르고 지나쳤던 스스로에게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당시 학생들이 진행했던 '학내 노동자 휴게실 및 노동 환경 개선, 책임 인정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노동자들의 쉴 권리 보장을 위해 함께하겠다는 연대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그사이 우리는 또 한 명의 청소노동자를 학교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2019년의 사망사건으로부터 2년이 채 되지 않은 2021년 6월의 일이었다. 2022년 상반기부터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이하 비서공) 학생들은 학내 단과대 및 기관의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을 방문하여 점검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직접 돌아본 휴게공간들은 2019년에 비해 분명 많이 나아져 있었다. 이전에는 지하에 있었던 휴게실이 지상으로 옮겨지고, 낙후된 벽이나 시설이 보수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기 어려워 보이는 공간들도 있었다. 학교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중앙도서관 휴게실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직접 방문해 살펴본 휴게실의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중앙도서관을 청소하는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이 모여있는 본관 1층 복도의 모습이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익숙한 도서관, 낯선 휴게실

우리가 중앙도서관의 청소 노동자분들이 머무르는 휴게실을 찾아갔던 것은 8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매일같이 들락거리던 도서관이었지만, 휴게실로 들어가는 입구는 이전에는 존재조차 잘 알지 못했던 곳이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 문 뒤쪽으로 들어가니, 앞으로 펼쳐진 복도를 중심으로 양옆에 여러 개의 문이 위치해 있었다. 명목상 층수는 1층이지만 건물 구조상 지하나 마찬가지인 곳이어서 창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복도 끝에 위치한 방에 들어가 청소노동자분들께 인사를 드리자마자, 덥고 습해 숨이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우리는 두 가지 문제 모두 휴게실의 위치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하에 위치해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고 습도가 높았으며, 습기 때문에 계속해서 보일러를 틀어놓아야 했던 것이다.

"보일러를 계속 틀어놓죠. (틀지 않으면) 여기가 축축하지. 여름인데도 에어컨을 켜 두고 바닥에 (보일러를) 약하게 틀어놓아야 해. 습기가 있으니까."

창문 하나 없는 답답한 공간

업무 순환 배치가 있는 날이었기에 인터뷰를 짤막하게 진행했음에도, 바닥에 틀어져 있는 보일러 탓에 엉덩이가 금세 뜨거워졌다. 방 안에는 학교에서 제공한 공기청정기와 열교환기가 있었지만 환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듯했다. 작은 창문 하나 없어 시각적으로도 답답했다. 학생 한 명은 방문을 마친 후에 휴게실이 너무 답답해 마치 갇혀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옷을 걸어 놓으면 곰팡이가 슬고, 세탁한 옷이 잘 마르지도 않아요. 방 안에서도 곰팡이 냄새가 나고. (곰팡이와 환기 미흡으로 인해) 공기 자체가 안 좋으니까 사람에게도 좋지 않죠. 이 부분이 빨리 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하이고, 환기가 안 되는 게 가장 큰 문제지"

학교 측에 여러 차례 휴게공간을 빛이 들어오는 지상으로 옮겨줄 것을 요구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만약 휴게실 위치 자체를 옮기는 것이 어렵다면 환기가 잘 되도록 벽을 뚫어 환풍기를 설치해달라고 이야기했으나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복도에 위치한 5개의 휴게공간 중 단 한 곳에만 벽을 뚫고 설치한 환풍기가 존재했는데, 강제 환기가 이루어지는 만큼 비교적 습도가 낮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휴게실 방문을 끝내고 나가는 길에 살펴본 환풍기에는 검은 먼지가 많이 쌓여 있었다. 환기구에 저만큼 많은 먼지가 쌓였다면, 환기구가 없는 휴게실의 공기는 어떤 상황인 것일까. 이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의 건강을 우려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 복도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노동자들이 머무르는 휴게실 내부의 모습이 보인다. 창문이 없어 햇빛이 들어오지 않고 답답한 느낌을 준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변화와 한계, 그리고 미래

중앙도서관의 휴게실이 개선 사업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것은 아니다. 이전에 비해 휴게실과 샤워실이 많이 개선된 상태라고, 청소노동자분들은 입을 모아 말씀하셨다.

"(지금은 두 개로 나뉘어 있는 휴게실이) 원래는 하나로 연결된 큰 휴게실이었는데 코로나 후에 방을 분리했지. 그러면서 천장이나 벽도 공사하고."

"원래 샤워실이 있긴 했는데 공간이 하나라 오전에는 남자, 오후에는 여자 이렇게 썼거든. 근데 이제는 남녀가 분리되어 있죠."

실제로 휴게실 내부의 벽이나 바닥 자체는 굉장히 새것처럼 보였다. 방 안의 높은 습도에도 불구하고, 하얀 벽에는 곰팡이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전에는 휴게실 내부에 있었던 세탁기가 샤워실로 옮겨졌다는 점도 휴식에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입지 자체에 문제가 있기에 개선 사업에도 불구하고 환경의 열악함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위치적 문제가 잘 나아지지 않으니까… (위치를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분을) 계속 수정한다고 해서 실효성이 있지는 않은 거 같아요."

휴게공간의 공기는 휴식의 질, 그리고 그곳에서 머무르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걸어 놓은 옷에 곰팡이가 생기곤 하는 환경에서는 누구라도 건강하게 휴식을 취할 수 없다. 우리가 들렀던 방 중에서 한 곳은, 노동자 한 분이 식사를 하고 나가신 터라 음식 냄새가 강하게 났다. 환기가 잘 되지 않으니 냄새가 방 안에 오래 머무는 것이다.

▲남성 청소노동자들은 경비노동자들과 함께 샤워실을 사용한다. 남성 노동자 샤워실로 들어가는 입구를 촬영한 사진이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샤워실 역시 미흡한 부분이 보였다. 원래는 두 칸을 오전, 오후로 나누어 남녀가 사용했던 것이 현재는 남성 샤워실 세 칸(남성 청소노동자들은 경비노동자와 함께 샤워실을 사용하신다고 한다.), 여성 샤워실 두 칸으로 바뀌었다. 여성 샤워실의 경우 총인원이 16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인원에 비해 부족해 보였다. 여성 샤워실 한켠에는 세탁기가 놓여 있었는데, 건조기가 따로 없는 탓에 세탁한 옷을 말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휴게실 자체의 습도가 높기에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는 지점이었다.

업무 중에 휴식을 취할 만한 공간을 찾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휴게실들은 오전이나 오후 업무가 완전히 끝났을 때 대기하고 옷을 세탁하는 공간이지, 위치상 현장에서 일하는 도중에 쉴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특히 중앙도서관 본관이 아닌 관정관의 경우, 휴게실을 다녀가기가 더욱 어려워 보였다. 관정관은 층수가 높고 면적이 넓은 건물임에도 업무 도중에 잠시 앉아서 숨을 돌릴 공간조차 거의 없는 것이다.

"원래는 현장에서 작업을 하다가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했는데, 그게 잘 안되었죠."

▲여성 샤워실 내부를 촬영한 사진이다. 이전에는 남성과 여성 노동자들이 오전/오후로 시간을 나누어 사용했지만, 지금은 여성 노동자들만 이 샤워실을 사용하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대학이라는 공간의 의미

휴게공간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수많은 장서로 유명한 학교의 도서관 뒤편에는 창문 하나 없는 청소노동자 휴게실들이 숨겨져 있었다. 현재의 모습이 이전보다는 그나마 많이 나아진 것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한층 더 무겁게 했다. 그래도 느리게나마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대학을 학문의 공간이라고 부른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대학은 노동의 공간이기도 하다. 대학에서의 배움과 가르침, 연구가 차질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매일같이 그 공간을 만들고 유지하는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노동자들은 그 공간에서 숨겨지고 배제되어 왔다. 휴게공간 개선 사업은 분명 여러 성과를 가져왔으나 아직 나아갈 길이 멀다. 우리가 방문했던 중앙도서관 휴게실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고, 휴게공간 탐방 사업을 통해 살펴본 다른 단과대나 기관의 휴게공간 중에서도 미흡한 부분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청소노동자들이 안전하게 퇴근할 수 있는 대학을 원한다. 제대로 된 개선은 학교가 노동자를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학교 공동체의 동등하고 존엄한 구성원으로서 바라볼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학문의 공간이자 노동의 공간인 대학이 그곳을 이루는 구성원 모두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중앙도서관의 청소노동자분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휴식을 취하실 수 있을 때까지, 학생과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목소리 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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