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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 도시' 부산, 어쩌면 세계 도시들의 미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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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 도시' 부산, 어쩌면 세계 도시들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좋은 도시를 위하여] 부산

지난 봄 2년 반 만에 한국을 찾아 두 달 넘게 머물며 부산을 몇 차례 방문했다. 그동안 자주 가보지 못하고, 2019년 출간한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에도 싣지는 못했지만 부산은 내게 늘 친숙한 도시다.

1982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을 때 도착한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부관 페리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한 나는 입국 절차를 거친 뒤 국제여객터미널 앞에서 택시로 부산역에 도착해 무궁화호를 타고 곧장 서울로 향했다. 당시 도쿄 근처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고 있던 터라 한국의 중심 도시 서울을 먼저 보고 싶었다. 서울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다시 부산으로 가서 이틀을 지낸 뒤 일본으로 돌아왔으니 머문 시간은 짧았지만 부산의 인상은 선명했다. 일본어가 비교적 쉽게 통한다는 것, 서울이 아닌 요코하마나 고베 같은 일본 도시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도시라는 것 등이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연배가 높은 이들 가운데 일본어에 유창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영어에 유창한 사람을 만날 가능성보다 훨씬 컸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내 입장에서 영어보다 일본어가 한결 잘 통했다.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로 인해 일본어의 공식 사용은 금지되었지만 외국인인 나에게 영어보다 일본어로 말을 거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관광업 종사자와 상인들 역시 영어보다 일본어에 훨씬 더 익숙했다. 당시 중앙동의 한 여관에서 숙박하면서 주로 남포동, 국제시장, 자갈치 시장 등을 구경했다. 교토처럼 오래된 일본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나가야 같은 일본식 건물도 꽤 있었고 거리와 골목의 폭도 일본과 비슷했다. 서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 전후로 개발된 곳이라 일본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부산 대청로, 1984년. ⓒ로버트 파우저

올해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지 40년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한국과의 인연의 첫 순간이었던 부산에 머물게 되니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부산이라는 도시의 특징을 흥미롭게 바라보게도 되었다.

부산은 역사적으로 개화기부터 오늘날까지 한국 도시 역사의 전시장 같은 곳이면서 또한 도시와 관련된 수많은 과제를 던져 주는 도시이기도 하다. 텍사스 대학교 도서관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1946년 미군이 작성한 지도는 부산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지도상으로는 내가 처음 만났던 남포동, 국제 시장 등은 당시 부산의 핵심 지역이었고 부산역은 중앙동 가까이에 있었다. 영도를 포함해 항구 주변에는 부두와 창고, 그리고 공장 같은 시설이 가득했고, 현재 부산역 근처 초량과 수정동은 거의 도시의 끝에 위치했다. 부전역은 주변의 공장과 군사 시설로 인해 주요 역 가운데 하나였지만, 서면은 길 표시만 되어 있을 뿐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온천으로 유명한 동래, 그리고 광안리와 해운대도 찾아볼 수 없다.

▲부산 지도, 1946년. ⓒ텍사스 대학교

인구 추이를 보면 해방 이후 부산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마지막 인구 조사인 1944년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인구는 98만8537명인데 비해 부산의 인구는 32만9215명이었다. 이 가운데 약 6만 명은 일본인이었는데, 해방이 되면서 이 숫자가 한 순간에 빠져나가 도시에 큰 공백이 생겼다. 그러나 곧 그 빈 자리에 한국인이 몰려와 1949년 부산 인구는 47만3048명에 달했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으로 임시 수도가 된 부산에 피난민이 몰려들면서 1951년에는 84만4000명, 1955년에는 104만5183명으로 급증했다. 이 당시 전쟁의 피해가 컸던 서울의 인구는 1955년 156만8746명에 달했다. 두 도시를 비교해보면 서울은 1944년에 비해 두 배 이하로 늘었지만 부산은 거의 네 배가 늘어난 셈이다.

그 결과 부산은 해방 직후 일제가 개발했을 당시보다 훨씬 규모가 커지면서 빠른 속도로 옛 중심지 바깥으로 확장되었다. 이후 1960년대 한국의 공업화와 맞물려 급속도로 확장되었고, 동서남부의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서면이 두 번째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로 인해 오늘날 서면과 인접한 지역을 걷다보면 일본 도시 같은 느낌보다는 급성장기 대한민국의 느낌이 훨씬 진하게 남아 있다. 그런 한편으로 촬영 장소로 유명해진 감천마을과 같은 달동네도 생겼다.

▲부산 서면 부전도서관, 2022년. ⓒ로버트 파우저

1970년대 들어서면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아파트다. 당시 서울에서 강남 개발을 시작했다면 부산에서는 서면 동쪽으로 아파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유층을 비롯해 화이트칼라 등의 전문직이 이곳으로 점차 이동하면서 부산의 심각한 양극화가 시작되었다. 1980년대 해운대는 부산 외곽의 바닷가 마을에 불과했지만 아파트 중심으로 개발되는 새로운 시가에 흡수되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날 해운대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신도시의 느낌이라기보다 바닷가에 즐비한 고층 건물로 유명한 홍콩이나 두바이 같은 느낌의 도시가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부산은 일제강점기부터 그 이후 이루어진 급격한 역사의 파고를 넘어오며 도시의 역사를 쌓아온 셈인데, 인구 구성 역시 다른 도시와는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몰려든 피난민은 북한에서뿐만 아니라 남한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유입되었다. 항구 도시라는 특성상 수많은 외국인이 오가면서 부산역 바로 앞에는 미군을 상대로 한 텍사스거리, 중국인들이 중심이 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었다. 2000년대 이후 외국인 인구의 구성이 다양해지면서 지역 전반에 다양한 문화권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자주 찾는 국제마을로 변신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총인구 가운데 부산의 외국인 비중은 경기도, 인천, 경남 등보다는 적지만, 다양한 국제마을이 한국인이 주로 다니지 않는, 즉 '음지'가 아닌 도시의 가장 중요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기차역 바로 앞에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이는 곧 부산에 머무는 수많은 외국인이 이 도시에서 느끼는 열린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도 될 듯하다.

▲부산 텍사스 거리와 차이나타운, 2022년. ⓒ로버트 파우저

부산을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도시뿐만 아니라 세계 도시의 미래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가장 큰 의문은 도시 동쪽과 서쪽의 양극화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원도심을 포함해 부산 서쪽 지역의 인구와 산업은 뚜렷한 공동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비해 부산의 동쪽은 센텀시티와 해운대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얼핏 보면 서울의 강북이나 강남 구도와 비슷해 보이지만, 부산의 원도심은 서울의 사대문보다 경쟁력이 훨씬 떨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오늘날 부산의 모습은 서울이 아닌 양극화가 더 심한 대전이나 광주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원도심, 즉 오래된 지역의 주거 환경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 장소로는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주택의 노후화, 편의 시설 부족, 경사와 계단 등으로 인해 다니기에 편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면적으로 모두 철거한 뒤 재개발하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2010년대 크게 유행했던 도시재생을 부분적으로 시도하긴 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주거 환경의 열악함은 여전하다.

▲부산 범일동, 2022년. ⓒ로버트 파우저

그런 맥락으로 볼 때 예전에 시도했던 도시재생 방식이 아닌 이전과 다른 새로운 도시재생 모델의 시도가 시급해 보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지켜보기만 해서는 대안이 없고, 해결은 요원하게만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이익의 주체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될까.

2020년 시작한 코로나19 팬데믹은 2023년인 내년 초에 이르면 만3년이 된다. 전 세계적으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만큼 변화 역시 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큼 다가온 미래, 즉 일상생활의 온라인화다. 인터넷 쇼핑과 배달 문화는 이전에 비해 더욱 깊게 뿌리를 내렸고,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던 재택 근무 형태도 기업들마다 적극 받아들여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땅값이 비싼 도시 중심부에 상가와 사무실 공간을 꼭 두어야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었고, 이제 모든 업무 공간은 도시 전역, 나아가 국가 전역으로 분산이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언제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이러한 업무 공간의 분산이라는 새로운 미래의 특징이 공교롭게도 부산과 잘 맞아떨어진다. 부산은 역사와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이미 주요 산업이 도시 곳곳으로 분산되어 있다. 따라서 도시 곳곳에 다양한 산업의 중심을 산재하여 분포시키는 도시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바다와 산 사이에 자리잡은 길쭉한 도시다 보니 어딜 가나 자연을 접할 수 있다. 이는 곧 주거 환경의 훌륭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인해 만원 지하철과 버스를 탄 채 출퇴근 길에 한 시간 이상씩을 쓰지 않아도 업무의 효율성에 큰 문제가 없다는 걸 우리는 모두 체감했다. 살기좋은 곳에서 재택으로 일하면서 사무실은 필요할 때만, 아주 가끔 들러도 되는 형태로 노동의 양식이 달라지고 있다. 이 지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이를 위한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에 집중한다면 이미 이에 맞는 역사와 공간의 특징을 갖춘 부산의 경쟁력은 극대화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 도시의 사례가 성공으로 드러난다면 부산의 미래는 곧 세계 수많은 도시의 미래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함께.

▲부산 이중섭거리 전경, 2022년. ⓒ로버트 파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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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독립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가 <프레시안>에 '좋은 도시를 위하여'라는 연재를 시작한다. 그는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 <외국어 전파담>과 <외국어 전파담 개정판>,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 <외국어 학습담> 등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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