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은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붉은 숲
"난 잘 몰러유. 그 난리 칠 적에 게우 열세 살이었응께. 원래 저 아랫말 살었는디, 일루 시집을 온 거여. 할아버지? 삼 년 전에 풍으루 돌아가셨어. 참 좋은 양반이었는데. 술은 많이 잡숴두, 계집질은 안 혔어. 저쪽 건너편에 산소가 있어유. 예서도 보이잖유?"
"얘긴 많이 들었지. 여기가 막골이잖어유. 쬐끔 더 올라가면 거개가 막골고개인디, 그건 옛날 얘기구, 지금은 질이 읎어졌슈. 거기서 사람 많이 죽었다지. 시집와서두, 첨엔 몰랐는디, 알음알음 얘기를 듣게 됐지. 영감탱이도 술 먹으면 술김에 얘기 허구. 많이 죽었지."
"김흥태 나와라, 한밤중에 군인 경찰들이 들이닥쳤댜. 그런데 인공 때 부역했던 이들이 남아 있었것슈? 벌써 도망쳤지. 내려갔던 국군이 다시 올라오니께, 우익으로 기를 못 펴던 이들이 눈이 벌개졌지. 김흥태가 읎으니, 그 늙은 부모와 젖먹이 모녀를 끌고 갔어요. 저쪽 우리 영감 무덤쯤 될 기야."
"그때가 9월 하순이었으니 날이 쌀쌀했지. 여기가 화전민 열 두어 채뿐인, 하늘 아래 첫 동네 아뉴. 옷이나 뭐 입혔것슈, 꼬챙이 꿰듯 끌고 간 거지. 아랫말부터 막골고개까정 한 십 리는 될 거유. 뭣하러 끌고 가느라 닦달을 혔나 몰러, 그냥 죽이지, 어차피 죽일 걸!"
"빨갱이라고 눈총 받은 옆집 가족까지 엮어서, 굴비 엮듯 엮어서 끌고 갔지. 고갯마루까진 한참 멀었구, 여기가 도랑도 깊고 나무도 우거졌응께, 여기서 죽인 기지. 작은 구덩이를 파고, 총으로 쐈다네. 총알이 아까운지, 나무 꼬챙이로 콱콱 쑤셨다네. 인간맹키로 잔인한 게 또 있을까 몰러."
"나두 들은 얘기니께, 저쪽 유봉리에서도 수십이 죽구, 원곡리에서도 수십이 죽구, 엄정면 다 치면 수백은 죽었을 규. 충주 제천까지 합치면 누가 알것슈. 선상님은 알어유? 다들 쉬쉬, 한 평생 말도 못 허고 살었는디. 이런 걸 물어보는 슨상님이 오셨으니, 세상 참 좋아지긴 혔네유."
"담배밭이유, 저긴. 그 윗질일거유.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 무슨 흔적이 남았것슈? 뼈 한 줌도 읎을규. 예전엔 산짐승 천지였는디, 다 읎어졌지. 혹시 흙이라도 한 줌 붉어졌을까, 나무가 눈물이래두 흘려, 붉은 숲이 되얐을까. 가을이면 단풍이 유난히 붉긴 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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